타악기처럼 거친 피아노 소리… 죽음의 선율이 춤을 춘다[박찬이의 올댓클래식]

2026. 7. 3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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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이의 올댓클래식 - 리스트 ‘토텐탄츠’
獨뤼베크 교회 벽화 ‘죽음의 춤’
여러 계층 인물과 춤추는 해골
14세기 흑사병이후 ‘죽음’ 그려
라틴성가 ‘진노의날’ 선율 차용
죽음에 대한 공포·경외심 표현

여름의 한가운데다. 휴가를 뜻하는 프랑스어 ‘바캉스(vacances)’는 본래 비어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머리를 비우러 야외로 떠나고, 도시는 미묘하게 텅 빈 느낌을 준다. 한낮의 열기가 가라앉은 뒤 인적 드문 거리는 평소와는 꽤 다르다. 이런 계절에 으스스한 음악을 한 곡 들어봐도 좋지 않을까.

독일 북부 뤼베크의 성모마리아교회에는 한때 기묘한 행렬이 이어져 있었다. 교황과 황제, 주교와 제후, 시장과 상인, 수도자, 젊은 남녀, 요람 속 아이 곁에 해골이 하나씩 붙어 춤을 춘다. 산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데, 해골들은 팔다리를 휘저으며 신이 났다.

1463년에 제작된 ‘죽음의 춤(Totentanz)’, 일명 ‘토텐탄츠’다. 화가 베른트 노트케(1435∼1509) 작품으로 알려진 그림은 길이가 30m에 가까웠다. 당시 유럽에서는 이런 ‘죽음의 춤’ 이미지가 흔했다. 14세기 이후 흑사병과 전쟁이 일상화되면서 죽음은 무용의 파트너같이 늘 사람들과 함께하는 존재가 되었고, 화가들은 죽음을 춤추는 해골의 모습으로 그렸다. 누구도 죽음과의 춤을 피할 수 없었다. 권세와 부귀영화, 젊음도 그 앞에서 철저하게 평등했다.

베른트 노트케, ‘죽음의 춤(Totentanz)’, 탈린 성 니콜라스 교회, 15세기 말, 캔버스에 유채, 현재 에스토니아 미술관(Art Museum of Estonia) 소장.

‘토텐탄츠’가 만들어진 이듬해인 1464년에는 실제로 페스트가 뤼베크에 닥쳤다. 사람들에게 벽 위 죽음의 행진은 그저 상징으로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현실의 이야기였다.

이 낯선 춤은 19세기 음악에서도 형상화됐다. 프란츠 리스트(1811∼1886·사진)가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해 쓴 ‘토텐탄츠’다. 부제는 ‘진노의 날에 의한 패러프레이즈(Paraphrase uber Dies irae)’다.

‘디에스 이레(Dies irae)’는 죽은 이를 위한 미사와 연계되었던 라틴어 성가다. 첫 구절은 “Dies irae, dies illa” “진노의 날, 바로 그날”이라는 뜻이다. 이는 마지막 심판의 날, 모든 인간이 신의 심판대 앞에 선다는 두려움과 경외를 노래한다. 어둡고 엄숙한 기운이 지배적인 이 주제는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을 비롯한 많은 작품에서 죽음을 암시하는 모티프로 반복되었다.

리스트는 이를 거대한 변주곡으로 확장했다. 시작부터 피아노가 거칠게 화음을 내려치고 관현악이 ‘디에스 이레’를 제시한다. 건반이 두드려지듯 울리고, 옥타브 화음이 무수히 쏟아질 때는 피아노가 거대한 타악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건반 전체를 훑는 글리산도 패시지, 반음계적 상행·하행 음형은 비르투오소로 유명했던 리스트의 기교를 연상하게 한다. 저음역과 고음역을 순간적으로 오가는 대도약 부분에서 독주자는 거의 곡예에 가까운 연주를 펼쳐야 한다.

이를 따라가다 보면 뤼배크의 오랜 그림이 떠오른다. 교황과 황제와 주교, 끝내 아름다운 남녀와 아이마저 무자비하게 끌고 가는 해골들. 리스트의 ‘디에스 이레’ 주제 역시 끊임없이 변모하며 곡 전체를 지배한다. 한번 나타난 죽음의 선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으며 광포하게 춤춘다.

안타깝게도 뤼베크 성모마리아교회의 ‘토텐탄츠’는 살아남지 못했다. 원작은 세월이 흐르며 훼손돼 1701년 모사본으로 교체되었고, 그마저도 1942년 3월 영국군의 폭격으로 교회가 불타면서 사라졌다. 죽음을 경고하던 그림도 시간과 전쟁을 이겨내진 못했다.

폭염 속에서 리스트의 ‘죽음의 춤’을 들어본다. 옛 뤼베크 성모마리아교회와 여러 토텐탄츠 속 해골들이 되살아나 일제히 움직이는 느낌이다. 무더운 한여름 밤에 듣기에는 제법 서늘한 춤이다.

음악 칼럼니스트 ‘음악과 이미지’ 저자

QR코드를 찍으면 ‘프란츠 리스트의 토텐탄츠’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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