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장애인·이주민…진료실 문턱 못 넘는 산모들
창원의 한 국립대학교 병원에는 매년 3~5건의 재난적 의료비를 떠안는 산모 사례가 나온다. 2024년 베트남 국적 산모와 신생아에게 8000만 원이 넘는 비용이 발생했다. 산전진찰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결국 조산으로 아이가 태어났다. 신생아 중환자실 비용은 하루 100만 원 가까이 발생하지만, 건강보험이 있는 경우 100% 지원된다. 그러나 보험이 없으면 전액을 지불해야 하고, 보험수가의 1.5~2배인 일반수가, 3~10배인 국제수가를 적용하면 그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커지게 된다.
이 환자의 경우 여러 구호단체가 힘을 모아 약 1200만 원을 후원했지만 다 지불하지 못했고, 퇴원하고 나서도 매달 100만 원씩 병원에 비용을 보내고 있다. 같은 해, 다른 인도네시아 국적 산모도 비슷했다. 제왕절개 분만과 신생아 중환자실 입원료로 3000만 원이 넘는 비용이 발생했다. 이는 병원이 일반수가·국제수가 대신 보험수가로 변경해 준 덕분이며, 국제수가 적용시 1억 원이 넘는 청구서가 발생한다. 이들은 모아 놓았던 돈을 모두 써버리고 빚을 갚기 위해 다시 일터로 조기에 복귀해야 했다.
이러한 일은 새로운 일도, 창원만의 일도 아니다. 이미 2020년 9월 양산부산대학교병원에서는 산전진찰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출산이 임박해서야 병원을 찾은 이주여성이 선천적 건강문제를 가진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수술과 중환자실 치료 끝에 사망한 뒤 6천만 원이 넘는 치료비만 남은 일이 있었다. 그때도 부산·경남의 이주민 지원 단체와 공공의료 관계자들이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관련 글 바로가기).
왜 이러한 일이 벌어졌을까? 소개한 세 사례 모두 문제가 폭발한 시점은 분만과 신생아 치료였지만, 비용과 위험이 만들어진 시점은 출산 이전이다. 2022년 부산·경남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의 이주여성 건강권 실태조사는 이주여성이 산전진찰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짚었다. 진료시간에 맞춰 일터를 빠져나올 수 없고, 사는 지역에 진료기관이 없어 다른 지역으로 나가야 하며, 임신 사실이 알려지면 퇴사를 종용받고, 의사소통과 서류 작성이 어렵고, 보증인을 요구받는다. 산전진찰 한 번의 문턱이 이미 높은 사람에게, 이후의 문턱은 사실상 벽이다. 내국인이 임신과 동시에 100만 원이 들어있는 국민행복카드를 받고, 한 번의 산전진찰에 2~5만 원을 부담할 때, 보험이 없는 이주민은 국민행복카드는커녕 산전진찰 한번에 10~30만 원의 비용을 써야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산전진찰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이 사례가 이주민만의 예외적 일화가 아니라는 사실은 전국 데이터로 확인된다. 김새롬·김찬기·김진환 연구팀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된 분만 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논문 바로가기: 한국의 산전관리 불평등: 고자원, 고이용 국가인 한국의 건강보험 청구 데이터 분석(2013-2022))
연구진은 분만일로부터 270일을 거슬러 올라가며 산과 의료기관 방문 횟수를 세고, WHO 권고 기준인 8회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불충분한 산전진찰'로 정의했다. 총 341만 6517건의 분만 가운데 10만 4109명(3.0%)이 산전진찰을 8회도 받지 못했지만, 전국 평균이라는 표면적인 지표는 다르다. 2022년 한국 임산부의 평균 산전진찰 횟수는 18.7회로,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의 두 배를 넘는다.
자원도 이용량도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에서, 문제는 평균이 아니라 분포에 있었다. 청소년 산모는 28.1%로 열명 중 셋 가까이가 최소기준을 채우지 못한다. 의료급여 세대원은 15.2%로 전체의 5배, 장애여성은 6.4%로 전체의 2배다. 외국 국적 산모는 10.7%, 10명 중 1명 이상이 산전진찰 여덟 번을 채우지 못하는데, 앞서 소개한 창원의 두 산모가 여기에 든다. 게다가 이 수치는 건강보험이 있는 이주민 산모만을 센 것이고, 보험이 없는 이주민 산모는 통계조차 없다. 그리고 소득이 낮을수록 분만 취약지에 거주할수록 산전진찰을 불충분하게 받는 비율이 높아졌다.
연구진은 과소이용만이 아니라 과잉이용도 함께 분석했다. 한쪽에는 평균 18.7회로 여러 병원을 중복해 다니는 임산부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여덟 번의 진찰조차 받지 못한 채 분만실에 실려 오는 임산부가 있다. 자원이 부족해서 생긴 격차가 아니라, 넘치는 자원이 특정한 사람들을 비껴가면서 생긴 격차다. 논문의 결론은 간명하다. 잘 갖춰진 보건의료체계를 가진 한국에서도 산전진찰 불평등은 뚜렷하게 존재하며, 그 실체는 양적 지표만으로는 다 드러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지금 저출생과 고령화를 국가적 위기로 진단하며 막대한 예산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 예산의 언어는 대체로 '더 많이 낳게 하는 법'에 관한 것이지, '이미 임신한 사람이 안전하게 출산하고 태어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법'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산전진찰은 보건의료가 할 수 있는 가장 값싸고 가장 확실한 예방적 개입 중 하나다. 여덟 번의 진찰은 임신중독증과 임신성 당뇨를 미리 잡아내고, 태아의 이상을 조기에 발견해 준비된 분만을 가능하게 하며, 조산과 저체중 출생을 줄인다. 반대로 그 여덟 번을 놓치면 비용은 사후에 훨씬 더 큰 규모로 청구된다. 산전진찰 여덟 번의 비용과 신생아 중환자 진료비 8000만 원 사이의 간극이 바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비용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혜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1991년 비준한 'UN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서는 당사국이 산모를 위한 적절한 산전·산후 건강관리를 보장할 것을 직접 요구한다. 그리고 이 권리가 아동 또는 그 부모의 국적, 출생, 장애, 재산, 그 밖의 신분에 따라 어떤 차별도 없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못 박는다. 이 한 문장 안에 이 글이 다룬 모든 집단이 이미 들어 있다. 협약은 이들을 서로 다른 문제로 나누지 않는다.
우리도 나누지 말아야 한다. 이주여성이 산전진찰을 받지 못하는 이유와 18살 산모가 받지 못하는 이유는 겉보기에 다르다. 한쪽은 언어와 체류자격과 '국제수가'에, 다른 한쪽은 낙인과 보호자 동의와 비밀보장의 부재에 걸린다. 의료급여 수급 산모는 비용과 이동에, 장애 여성은 접근 가능한 진료 환경의 부재에, 분만취약지 산모는 왕복 두 시간의 거리에 걸린다. 그러나 다섯 개의 장벽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하나다. 여덟 번의 산전진찰을 채우지 못한 임신, 그리고 응급실에서 시작되는 출산이다. 원인이 다섯 가지라고 해서 다섯 개의 사업으로 쪼갤 일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으로 묶을 일이다. 우리 지역에서 산전진찰 여덟 번을 채우지 못하는 산모는 누구이며 왜인가.
그래서 대책도 두 층으로 가야 한다. 하나의 층에는 모든 산모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들이 놓인다. 공공의료기관의 산부인과 기능 강화와 분만 인프라 유지, 임신 초기 진입 시점과 진찰 횟수를 지역·집단별로 산출해 매년 공표하는 도달률 지표, 그리고 비용이 진찰을 가로막지 않게 하는 장치다. 다른 하나의 층에서는 집단별로 다른 개입을 해야 한다. 청소년 산모에게는 보호자 동의와 낙인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비밀보장 진료 경로가, 장애 여성에게는 접근 가능한 산과 진료 환경이, 의료급여·저소득 산모에게는 이동과 대기 비용까지 포함한 실질적 지원이, 분만취약지 산모에게는 순회 산전진찰과 이송 체계가, 이주 산모에게는 미보험자에 대한 '보험 100%' 수가 적용의 제도화와 통·번역 지원, 그리고 임신 사실을 알려도 해고되지 않을 노동조건이 필요하다.
평균 18.7회라는 숫자에 가려진 3.0%, 그리고 그 안의 28.1%, 15.2%, 10.7%, 6.4% 라는 수치들을 하나의 정책 목표로 삼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같은 회의실에 모여 같은 미해결을 주제로 대책회의를 하게 될 것이다. 저출생 고령화 시대에 우리가 진짜 놓치고 있는 것은 출생아 수가 아니라, 산모와 아동의 건강을 미리 지킬 수 있는 기회다. 태어날 아이가 귀하다고 말하는 사회라면, 그 귀함이 산모의 나이와 소득과 장애와 국적과 사는 곳에 따라 달라지지 않아야 한다. 산전진찰 불평등은 그 기회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지표다.
*서지정보
Kim S, Kim C, Kim JH. “Antenatal care inequalities in South Korea: An analysis of health insurance claims data (2013–2022) in a high-resource, high-use country.” Int J Gynecol Obstet, 2024. doi:10.1002/ijgo.15459
김혜원 외, <부산·경남 이주민 여성의 건강권 강화방안 모색연구 — 보건의료서비스 이용과정의 미충족 의료 사례 중심>, 경상남도공공보건의료지원단·부산광역시공공보건의료지원단, 2022.

[김영수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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