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大記者의 西村브리핑] 빚 지우는 정책 성공할까

이정희 기자 2026. 7.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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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대기자.

"빚은 임금님도 책임 못 진다"는 속담이 있다. 한번 불어난 빚은 누구도 대신 해결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빚은 당장의 어려움을 넘기는 수단이지만 소득 감소나 예상하지 못한 지출이 겹치면 쉽게 족쇄가 된다. 원금을 갚으려 또 빚을 내고, 이자를 막으려 고금리 대출을 받는 악순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서민 채무 정책이 등장했다. 이명박 정부의 '신용회복기금',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기금', 문재인 정부의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윤석열 정부의 '새출발기금과 신용사면', 이재명 정부의 '새도약기금'까지 명분은 '서민의 재기와 경제활동 복귀'였다. 정책도 연체기록 삭제와 이자 조정에서 원금 감면, 장기연체채권 소각으로 확대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15일 "갚을 수 없는 사람은 빨리 탕감해줘야 정상 경제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회수 불가능한 장기채권을 계속 추심하는 것이 채무자뿐 아니라 금융기관과 경제에도 손해라는 논리다.

이재명 정부의 새도약기금은 7년 이상 연체된 원금 5000만원 이하 개인 무담보채권을 대상으로 한다. 추정 대상은 113만4000명, 채권 명목금액은 16조4000억원이다. 정부가 이를 모두 세금으로 대신 갚는 것은 아니다. 채권을 할인 매입한 뒤 상환능력이 없으면 전액 소각하고, 여력이 있으면 일부 감면 뒤 분할상환한다.

서민 채무 정책은 선의만으로 좋은 정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2025년 말 연체기록이 삭제된 292만8000명 가운데 2026년 1분기 48만3000명, 16.5%가 다시 연체했다. 다만 이들은 원금을 탕감받은 사람이 아니라 연체금을 모두 갚은 뒤 기록 삭제를 받은 차주다. 재연체율이 높다고 정책을 실패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재연체율 16.5%를 가볍게 볼 수도 없다. 연체기록을 일괄 삭제하면 일시적 충격으로 연체한 사람과 반복적으로 감당 못 할 빚을 진 사람을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그 비용은 성실 상환자의 금리와 금융회사의 충당금, 세금으로 돌아올 수 있다. 사면이 반복되면 '버티면 또 구제받는다'는 '도덕적 해이'가 생길 수 있다.

신용점수를 회복시킨다고 소득과 매출이 자동으로 늘지는 않는다. 생활비를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로 메우던 사람이 다시 대출받게 되면 금융 복귀가 재기의 통로가 아니라 부채 재충전이 될 수 있다. 신용사면을 고용·복지·주거 지원, 저금리 전환대출, 소상공인 경영 개선과 묶어야 한다.

해법은 탕감과 추심의 양자 택일이 아니다. 신용사면 뒤 '재기 관찰기간'을 두고 소득 흐름과 공공요금 납부, 임대료와 매출 회복 등을 반영한 평가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초기 대출한도와 금리는 보수적으로 적용하고, 성실 상환 실적이 쌓이면 조건을 개선하는 '신용 복원 사다리'도 필요하다.

반복 수혜에는 차등을 둬야 한다. 질병·실직·폐업·재난 등 불가피한 사유와 과도한 차입·상습 연체를 구분해 전자에는 재조정 기회를 주되 후자에는 감면율을 낮추거나 지원을 제한해야 한다. 금융회사에도 책임을 물어 부실률이 높은 회사에는 기금 분담률을 높이고, 무리한 대출이 확인되면 채권 매입가격을 낮춰야 한다.

모든 신용사면과 채무감면 정책에는 성과표가 붙어야 한다. 지원 인원과 탕감액뿐 아니라 1년·3년 뒤 재연체율, 취업률, 사업 유지율, 소득 증가율을 공개해 효과를 검증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없애줬느냐가 아니라 다시 빚의 굴레로 돌아가지 않게 했느냐다.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 탕감도 냉혹한 추심도 아닌 '조건 있는 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