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은 작가, 몸은 약사… 둘 다 ‘측은지심’ 필수”

원주/황지윤 기자 2026. 7. 30.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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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쓰는 직장인]
<6> 등단 15년 차 소설가 김희선
소설가 김희선 은 약사이기도 하다. 그가 매주 수요일 근무하는 강원 원주 구도심의 한 약국을 찾았다. /고운호 기자

8일 오후 3시 강원 원주시 평원동 한 약국. 카운터 뒤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흰 가운을 입은 소설가 김희선(54)이 차분한 목소리로 복약 안내를 하고 있었다. “약이 일주일 분이거든요. 하루 두 번 아침, 저녁 식사하고 드시면 되세요.”

소설가라면 쓰지 않을 문법에 어긋나는 ‘되세요’체를 쓴 것은 그가 이날은 약사로 일하며 손님을 상대하는 중이었기 때문. 수시로 손님이 들락거리는 가운데 인터뷰가 진행됐다. 김희선은 약사였다가, 소설가였다가, 다시 약사가 됐다. 평소 약국에는 소설가 자아를 들이지 않지만, 이날만큼은 약국에서 두 자아를 바삐 오갔다.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강원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약사로 일하다가 방송통신대 국문과에 편입했다. 공부에 재미를 붙여 동국대 국문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소설을 쓸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등단하면 장학금을 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대학원 재학 중이던 2011년 습작 수업에서 완성한 소설을 문예지에 투고했고, 단편 ‘교육의 탄생’으로 등단했다.

그는 문단에 갓 발을 내디딘 때를 떠올리며 “등단이 얼마나 어려운지, 등단한 뒤에 계속 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미리 알았으면 겁나서 원고를 못 보냈을 것 같다”며 “아무것도 모르던 백지 상태였다. 아예 모르니까 시작할 수 있었던 일인 것 같다”고 했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원주에서 약국을 운영하다가 이후 관리 약사로 풀타임 근무했다. 대학원에 다니고 등단하면서부터는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겸업은 성공적이었다. 등단 15년 차인 그는 어느덧 소설집 세 권, 장편소설 세 권, 짧은 소설 두 권을 펴냈다. 에세이, 서평집, 선집 등을 포함하면 열 권을 훌쩍 넘는다. 2024년 발표한 장편소설 ‘247의 모든 것’(은행나무)은 본지 동인문학상 최종 심사에 올랐고, 대산문학상을 받는 등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지금은 병원 조제실에서 주 이틀 근무하고, 수요일 하루는 지인의 약국에서 일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소설을 쓴다. 저녁 먹고, 강아지 산책을 시킨 다음 밤 10시쯤 자리에 앉아서 새벽 2~3시까지 글을 쓴다. 매일 밤 글쓰기 전에 꼭 지키는 의식도 있다. 박카스 한 병 마시기. 약사 소설가답다. “고순도 무수 카페인에 액상이라 반짝하는 효과가 훨씬 빠르다”고 효능을 설명할 때 신나 보였다. 문단 관계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그에게 건강 상담을 해오는 이가 많고, 그도 흔쾌히 응한다.

로봇이 좋아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싶었던 김희선은 약사가 됐고, SF적 발상을 담은 소설을 쓴다. 그가 신일숙 작가의 명작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한 문장을 읊었다. “미래는 언제나 예측 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다.” 그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것 같다”며 “이제는 약사가 아닌 나를 상상하기 힘들고, 글을 안 쓰는 나도 상상하기 힘들다”고 했다. / 고운호 기자

김희선은 약사와 소설가 자아가 “딱 반반인 것 같다”며 “정신은 작가이고 몸은 약사인 것 같다”며 웃었다. “이 자리(약국)에서 나가면 약사 일은 굳이 더 생각할 건 없어요. 그런데 소설에는 계속 사로잡혀 있는 거니까.... 물론 사람이 정신으로만 사는 건 아니니 전인적으로 봤을 때 반반인 것 같습니다.”

두 자아가 포개지는 순간은 없을까. 김희선은 오히려 둘을 분리하려 했다. 그에겐 “환자의 이야기를 소설에 절대 쓰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약사로서 또 소설가로서 지키는 직업 윤리다. “환자분들이 한 이야기라든지, 약국에 와서 있었던 일을 허구적으로 각색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의 진실을 각색하거나 제 입맛에 바꾸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소설가와 약사의 공통점이 있다면 이는 “측은지심일 것”이라고 김희선은 답했다. “알베르 카뮈가 소설 ‘티보가의 사람들’ 서문에 쓴 말인데요. 위대한 작가는 작중 인물을 용서한다고 해요. 인간을 단면적으로 판단하면 작가는 절대 좋은 글을 쓸 수 없어요. 그 사람은 왜 그렇게 됐을까 접근하면서 파고들어야만 소설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약사도 ‘아파서 힘들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을 대하는 것이 괴로운 일이 된다”며 결국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김희선 소설가가 마음을 다잡을 때 읽는 문장

“모든 진정한 예술가들처럼 마르탱 뒤 가르도 모든 작중 인물들을 용서한다. 그 삶이 무엇보다도 투쟁이고 싸움이라 해도, 진정한 예술가는 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알베르 카뮈가 마르탱 뒤 가르의 소설 ‘티보가의 사람들’ 서문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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