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두·송정인과 함께 예술로 풀어낸 대한민국 근현대사

류민기 기자 2026. 7. 2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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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도립미술관 11월 1일까지 두 가지 전시
정 작가 ‘고려인 디아스포라’ 기억 조명
‘알루미늄 오이’ 등 신작 4점 포함해
사진·영상·조각·설치 등 36점 선보여
송 작가 현대 자수 예술 세계 조명
전통 자수에서 추상 자수까지 약 130점
미술사적 가치·예술적 성취 살펴봐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남도립미술관 1·2층에서 기획전 <알루미늄 오이: 정연두>가 열린다. 제1전시실 모습. /류민기 기자

경남 출신 작가 두 명의 작품을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이주와 삶, 기억의 서사를 만나는 전시가 열린다. 경남도립미술관은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알루미늄 오이: 정연두>와 <송정인: 실로 만든 메아리>를 개최한다.

<알루미늄 오이: 정연두>

"나는 알루미늄 오이를 심잖아- 아~ 방수포 밭 위에서. 나는 여전히 알루미늄 오이를 심고 있잖아- 아~ 방수포 밭 위에서. // 세 명의 추코트가 현자들이 말하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외치네: '쇠에서는 열매가 자라지 않아, 그 수고는 다 헛된 거야!', '금속은 열매를 맺지 않아. 노력해도 얻는 건 아무것도 없어!' // 그래도 나는 여전히 알루미늄 오이를 심잖아- 아~ 방수포 밭 위에서. 나는 여전히 알루미늄 오이를 심고 있잖아- 아~ 방수포 밭 위에서."<키노 '알루미늄 오이' 가사 중>

전시실에 들어서면 한가운데 자리 잡은 대형 설치 작품 '알루미늄 오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흰 천이 드리워진 공간 안쪽에서는 고려인들의 영상이 상영된다. 이들이 함께 노래 '친구여'를 부르는 순간 전시실은 울림으로 채워지고, 강제이주와 정착의 시간을 견뎌온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기억을 환기한다.

전시 <알루미늄 오이: 정연두>는 진주 출신 동시대 미술가 정연두(57)의 신작을 중심으로 1·2층에서 열린다. 전시 제목은 1980년대 소련에서 활동한 고려인 출신 록뮤지션 빅토르 최(Viktor Tsoi)​가 이끈 그룹 키노(KINO)​의 노래 '알루미늄 오이(1982)'​에서 가져왔다.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금속 오이는 강제이주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삶을 이어간 고려인의 생존과 회복력을 상징하는 은유다.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남도립미술관 1·2층에서 기획전 <알루미늄 오이: 정연두>가 열린다. 제3전시실 모습. /류민기 기자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남도립미술관 1·2층에서 기획전 <알루미늄 오이: 정연두>가 열린다. 특별전시실 모습. /류민기 기자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남도립미술관 1·2층에서 기획전 <알루미늄 오이: 정연두>가 열린다. 제2전시실 모습. /류민기 기자

전시는 1937년 스탈린 정권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연해주를 떠나 중앙아시아에 정착해야 했던 고려인들의 역사를 출발점으로 하며, 신규 제작(커미션) 작품 4점을 비롯해 사진·영상·조각·설치·사운드·드로잉 등 36점을 선보인다. 새로운 터전을 일군 고려인의 삶과 소련 해체 이후 한국으로 재이주한 후손들의 현재까지 하나의 서사로 연결된다. 이주와 이동, 정착과 공존의 문제를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제1전시실에 선보이는 '알루미늄 오이'는 알루미늄으로 주조한 501개의 오이 조각과 영상, 사운드가 결합된 설치작이다.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금속 오이를 통해 극한의 환경에서도 삶을 이어온 고려인의 시간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2층에서는 발효의 이미지와 가야금 산조가 결합한 사운드 설치 '발효 산조', 그을음으로 제작한 '연기 드로잉-균형', 블루스의 즉흥성을 통해 고려인의 삶을 풀어낸 '피치 못할 블루스' 연작 등을 선보인다.

로비 설치작 '상상곡'은 오늘날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민들의 목소리와 1905년 멕시코로 향했던 한인 이주 노동자의 역사를 교차시키며 이주를 둘러싼 기억과 감정을 환기한다. 영상전시실의 작품 '산조 열차: 1937'은 강제이주 열차 풍경과 가야금 산조를 결합해 고려인의 이동과 시간을 시청각적으로 재구성한다.

야외에서는 '알루미늄 텃밭' 프로젝트도 운영된다. 작가가 직접 오이를 재배하는 과정을 전시의 일부로 확장한 프로그램으로, 노동과 기다림, 생명의 시간을 관람객과 공유하며 전시 주제를 일상의 경험으로 확장한다.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남도립미술관 3층에서 <송정인: 실로 만든 메아리>가 열린다. 송정인 작가가 제5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류민기 기자

<송정인: 실로 만든 메아리>

"미술과 자수의 차이는 사용하는 재료가 다를 뿐이며, 만들어진 작품은 훌륭한 예술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즉 다른 예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자수의 장르도 뚜렷한 주제 의식 아래 화면 구성의 적절한 처리, 그리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 또한 참신한 소재의 선택, 정교한 테크닉 등을 지닌다면 예술품으로 정연한 이론을 지닐 수 있다."(송정인, <자수가 지닌 예술적인 위치와 실생활 면에 있어서의 효용성>, 새시대, 1966)

전통 자수가 현대적 감각과 조형 언어를 만나 새로운 예술 표현의 가능성을 넓혔다. <송정인: 실로 만든 메아리>에서는 통영 출신의 현대 자수 작가 송정인(89)의 예술 세계를 조명한다. 작가는 전통 자수의 고전적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추상 자수를 실험했으며, 미술계에서 공예에 머물던 자수를 독자적인 예술 매체로 확장했다.

작가는 어머니와 언니에게 자수의 기초를 배웠으며, 성년이 되기까지 독학으로 전통 자수 기법을 익혔다. 1960년 부산으로 이주한 작가는 이후 추상화가 전혁림(1915~2010)의 작품을 접하며 그의 예술적 태도에 감명받았으며, 서양화가 송혜수(1913~2005)의 작업실에서 회화의 기본과 대형 추상 자수 작업을 위한 밑그림 지도를 받아 새 자수 어법을 모색했다.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남도립미술관 3층에서 <송정인: 실로 만든 메아리>가 열린다. 제5전시실 모습. /류민기 기자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남도립미술관 3층에서 <송정인: 실로 만든 메아리>가 열린다. 관람객들이 제5전시실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류민기 기자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남도립미술관 3층에서 <송정인: 실로 만든 메아리>가 열린다. 제4전시실 모습. /류민기 기자

작가가 전통 자수의 대가 권복해(1903~?)의 자수연구소에서 약 1년간 수학할 때 권복해는 "현대미술과 회화를 공부해보라"고 조언했다. 전시 제목인 '실로 만든 메아리'는 작품 '메아리'(1970)에서 비롯됐다. 자수 작업을 이어오면서 기존 틀을 넘어 예술 세계를 개척한 작가의 도전 정신을 상징한다.

전시는 두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제4전시실 '1부. 꽃가마-전통을 잇다'에서는 전통 자수 병풍과 의복·노리개·보자기 등 생활 자수를, 제5전시실 '2부. 메아리-순수미술의 경지로 엮다'에서는 현대 추상 자수와 사진 기록, 아카이브 자료를 포함한 약 130점의 작품과 자료를 선보인다. 60여 년간 자수라는 매체를 탐구해온 작가의 예술 여정과 성취를 조명한다.

경남도립미술관 관계자는 "정연두와 송정인은 서로 다른 세대와 작업 방식을 지녔지만, 모두 역사 속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예술로 복원해 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며 "이번 두 전시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공동체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와 함께 연계 프로그램과 도슨트 투어도 진행된다. 자세한 사항은 미술관 운영과(055-254-4637)로 문의하거나 미술관 누리집(gyeongnam.go.kr/gam)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류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