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의 피아노, 하나의 영혼… 베르비에를 물들인 임윤찬과 손민수

아르떼 2026. 7. 2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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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섭의 음(音)미하다]
여기는 베르비에-②
눈빛과 몸짓, 감정조차 닮았다...임윤찬×손민수
모차르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하나의 피아노처럼 고전과 바로크 대화 이끌어내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2024년부터 매년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 무대를 찾았다. 2년 전 그는 이곳에서 차이콥스키 '사계(The seasons, Op. 37)'와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을, 이듬해에는 스승인 손민수와 함께 브람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Sonata for Two Pianos, Op. 34b)'를 연주했다.

전 세계를 누비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베르비에는 그저 연주하는 무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한적하고 고즈넉한 자연과 변화무쌍한 날씨의 베르비에가 임윤찬과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올해 그는 모차르트 탄생 270주년 의미를 되새기며, 스승과 함께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Concerto for Two Pianos in E-flat major K. 365)'을 들고 베르비에 페스티벌 무대에 섰다. 이 곡은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에서 궁정 음악가 활동을 마무리하고 빈으로 떠나기 전에 쓴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으로, 누이인 난네를(Nannerl)과 함께 연주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얼마 전 서울에서 연주한 프로그램과 동일하지만, 이번 베르비에 페스티벌 메인 스테이지에서 연주하는 사제의 모습은 어떻게 다를지 기대되었다. 약 10년 전 유자 왕과 함께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로 같은 곡을 연주했던 라하브 샤니가 이번엔 손민수와 임윤찬의 협력자로서 이 곡을 어떻게 표현할지도 궁금했다.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픈 리허설 중인 임윤찬과 손민수, 라하브 샤니. / 사진. © 이진섭

본 공연에 버금갔던 오픈 리허설

공연 당일 오전 10시, 운이 좋게도 공연 전 오픈 리허설을 관람할 수 있었다. 객석에는 일찍부터 임윤찬을 보기 위해 많은 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라하브 샤니와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VFO) 단원들의 '브루크너 교향곡 7번(Symphony No. 7 in E major, WAB 107)' 리허설이 끝난 후, 11시 32분 즈음 임윤찬과 손민수가 무대에 나타났다.

임윤찬은 객석의 수많은 시선에 개의치 않고 악보를 펼쳐, 스승과 지휘자와 몇 마디를 나누더니 곧바로 피아노를 향해 돌진했다. 임윤찬과 손민수의 연주는 곧 공연장을 청량한 모차르트로 채웠다. 리허설 도중 샤니는 1악장의 흔들렸던 관악기 파트를 바로잡고, 2악장의 서정적 무드를 피아노와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 이야기했다. 3악장에서도 아쉬운 몇 포인트를 짚어 다시 연습했다.

피아노로 대화하는 임윤찬과 손민수. / 사진. © 이진섭

두 대의 피아노, 하나의 영혼-고전과 바로크의 대화 이끈 연주

꿈같던 오픈 리허설을 되새기며, 저녁 6시 30분 실황을 보기 위해 다시 공연장을 찾았다. 전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큰 박수와 함께 검은 정장 차림의 라하브 샤니와 임윤찬, 손민수가 등장했다.

살레 드 콩뱅에서 본 공연 홍보 전광판. / 사진. © 이진섭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 / 사진. © 이진섭

1악장 Allegro에서 1분 40초의 서주가 흐르는 동안 손민수와 임윤찬은 동일한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고, 서로에게 눈빛을 던지며, 연주의 기운을 모으고 있었다. 둘의 타건과 함께 찬란한 햇빛 같은 1악장이 공연장에 퍼졌다. 활기차고 당당한 아티큘레이션, 우아하고 위트있는 프레이징, 임윤찬과 손민수가 주고받는 선율은 두 대의 피아노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듯했다.

손민수와 임윤찬이 연주한 두 대의 피아노. / 사진. © 이진섭

차분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의 2악장 Andante에서 사제는 같은 감정선을 타고 혼연일체가 되어 건반 위를 거닐었다. 임윤찬은 서서히 감정을 쓸어내려 갔고, 손민수는 농도 짙은 연주로 응수했다. 대부분 젊은 음악가들로 구성된 VFO의 연주가 너무 화사한 음색을 구사하여 이 둘의 연주를 포근하게 감싸 안지는 못했지만, 마냥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3악장 Rondo. Allegro에 들어 두 피아노는 경쾌하고 재치 넘치는 연주를 이끌었다. 손민수의 눈빛은 임윤찬의 소리가 되었고, 임윤찬의 제스처는 손민수의 타건이 되었다. 마치 모차르트의 곡을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경계 어딘가에 놓아둔 채 폭넓은 표현을 펼쳤다.

흐뭇한 표정으로 임윤찬을 바라보는 손민수. / 사진. © 이진섭

앵콜로 들려준 바흐의 '주의 시간은 최고의 시기(Gottes Zeit ist der Zeit allerbeste, BWV 106: 1. Sonatina)'에서, 임윤찬과 손민수는 하나의 피아노에 앉아 연주했다. 라하브 샤니는 흐뭇한 표정으로 사제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뒤에 앉아 있던 관객 중 한 명이 “저 정도면 전생에 부부였다” 하는 말에 공감이 됐다.

두 대의 피아노가 하나의 영혼처럼 어우러지며 고전과 바로크의 대화를 이끌어낸 공연이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세기의 록스타 같은 뮤지션이 한국에서 등장한 것과 어느 순간부터 임윤찬의 공연을 보는 것이 일종의 패션처럼 여겨지는 현상은 여전히 낯설지만,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시대를 넘나드는 레퍼토리를 들려준 임윤찬의 폭넓은 음악적 행보를 보면 이런 신드롬에 자연스레 수긍이 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위대한 제자 뒤에는 언제나 위대한 스승이 있다.

관객에게 인사하는 임윤찬과 손민수. / 사진. © 이진섭

베르비에(스위스)=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