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한 모금 하고 음악 듣는다… 향기로 매혹하는 '힉엣눙크' 축제

이주현 2026. 7. 2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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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원 세종솔로이스츠 총감독 서면 인터뷰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 오는 25일 개막
'살롱콘서트'로 프루스트 소설 속 분위기 구현
"MIT 미디어랩과 협업 중인 교향곡 내년 초연"

길을 걷다 스쳐 지나간 사람의 머릿결에서 익숙한 향기가 난다. 불현듯 옛 인연의 샴푸 향기가 떠오른다. 향기가 뭐라고, 사람을 과거로 생생하게 돌려놓는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만한 이 경험을 파고드는 음악제가 있다. 매년 늦여름의 열기를 시원하게 식혀준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이 올해 9회를 맞아 기억을 파헤치는 일상 속 감각을 조명한다.

지난해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세종솔로이스츠와 길 샤함, 아델 앤서니의 협연. /사진출처. 세종솔로이스츠.

라틴어로 '여기 그리고 지금'라는 뜻의 힉엣눙크는 현악 앙상블인 세종솔로이스츠가 “살아있는 21세기 클래식 음악의 현장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음악제다. 올해엔 다음달 25일부터 9월 3일까지 열 차례의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만난다. 축제 기획을 총괄하는 강경원 세종솔로이스츠 총감독은 아르떼와의 인터뷰에서 “시간과 기억을 통해 인간의 깊은 내면과 감각을 탐구하는 작품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며 “AI와 예술 장르의 연결에서도 세종솔로이스츠가 할 수 있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벨 에포크 시대 파리 살롱을 재현

올해 힉엣눙크의 핵심 공연은 다음달 30일 열리는 ‘살롱콘서트’다. 이 공연은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벨 에포크 시대 프랑스 파리의 살롱을 구현한다. 벨 에포크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말로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이 누렸던 풍요롭고 평화로웠던 황금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연주곡은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로 꼽히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영감을 받은 곡들로 추렸다. 이 소설에선 주인공이 우연히 맡은 마들렌 과자 향기가 어릴 적 기억들을 소환하는 촉매가 된다. 힉엣눙크는 공연 전 관객에게 샴페인 한 잔을 제공해 소설 내용처럼 관객의 감각을 자극하기로 했다.

강경원 세종솔로이스츠 총감독. /사진출처. 세종솔로이스츠.

강 감독은 “살롱 콘서트와 살롱 문화는 오래전부터 공연으로 구현해보고 싶었던 장면”이라며 “소설 속 인물의 사랑과 집착은 살롱 음악회라는 공간에서 고도로 증폭돼 음악의 힘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다음달 27일엔 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쿠르탁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쿠르탁: 카프카-프라그멘테’를 선보인다. 비주얼 아티스트인 데이비드 샤우더와 연출가 캐롤 아미티지가 AI를 융합시킨 공연이다.

“프루스트가 마들렌 조각의 감각에서 출발해 잃어버린 기억의 우주를 열었다면, 쿠르탁은 카프카의 일기와 편지에 담긴 짧은 문장들에서 출발합니다. 그렇게 현대인이 겪는 소외와 실존적 부조리를 음악으로 길어 올리죠.”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사진출처. 세종솔로이스츠. ⓒKalpesh Lathigra

8월 26일엔 세종솔로이스츠가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와 3년 만에 재회해 말러의 가곡 두 작품을 선보인다. ‘소년의 이상한 뿔피리’와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의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을 윤한결 지휘로 들려준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11번 ‘세리오소’를 말러가 편곡한 버전과 슈만의 현악사중주 1번의 3악장을 제프리 로프가 편곡한 버전도 연주한다. 강 감독은 “말러의 가곡은 삶과 죽음, 끝없는 방황, 자연과 고독이란 무거운 주제들을 직접 마주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내년 10회 축제 주제는 ‘한국’

힉엣눙크는 예술과 기술의 접점을 해마다 탐구해왔다. 지난해 대체불가능토큰(NFT)을 활용한 살롱을 보여줬다면 올해엔 다음달 25일 주한 리스트 헝가리 문화원에서 ‘AI 살롱’을 열기로 했다. 샤우더가 꾸리는 무대다. 강 감독은 최근 뉴욕에서 혼합현실(MR)을 활용한 연극인 ‘언 아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MR 글래스를 쓰면 배우들이 자신의 얼굴 앞에서 직접 말을 건네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아방가르드로 불리던 시도들이 이젠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고 있어요. 음악, 미술, 연극, 무용, 영상, 기술 등의 경계가 유연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관객이 작품 안에 들어가는 몰입형 체험도 넓어지고 있는 거죠.”

지난해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베르나르 베르베르 협연. /사진출처. 세종솔로이스츠.

9월엔 힉엣눙크가 초대한 아티스트들이 관객을 만난다. 1일 데이비드 버넷과 니나 버넷 듀오가 한국 데뷔 리사이틀을 연다. 둘은 더블베이시스트인 폴란드계 아버지와 뇌과학자인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남매다. 줄리어드 음대의 첫 아시아계 여성 피아니스트 교수인 이소연이 선보이는 2일 공연도 있다. 힉엣눙크의 인기 프로그램인 영유아를 위한 콘서트, 스쿨 콘서트 등도 관객을 기다린다.

힉엣눙크는 내년 10회를 맞는다. 강 감독은 “한국을 주제로 2년 전부터 10회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MIT 미디어랩과 협업하고 있는 ‘서울 시티 심포니’의 초연이 있을 겁니다. 작곡가 토드 마코버에게 위촉한 작품으로 서울의 음악적 초상화를 보여주죠. 시민들의 인터뷰, 서울의 소리와 움직임, 도시 빅데이터 등을 음악 재료로 변환한 새로운 교향곡입니다. 여기에 2년 전 뉴욕 카네기홀에서 초연을 했던 어거스타 리드 토마스의 ‘하늘을 나는 해모수의 마차여행’ 아시아 초연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시조 6편에 근거한 곡으로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작품입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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