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전 나를 만나다

아르떼 2026. 7. 2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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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지중배의 삶의 마리아주-맛있는 음악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또 한 번의 삶을 살아가는 경험

어른은 자신이 아기였을 때, 어린 시절 모습을 기억할까? 어른은 어느 시점부터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7살? 6살? 5살? 아니면 갓난아기 때부터? 꿈에서 만난 흑백의 기억 등이 진짜 나의 어렸을 적 광경들일까?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쿠퍼가 다른 차원을 통해 과거를 들여다보는 장면처럼 가끔은 하늘에 둥둥 떠서 흑백 세상 속에 있는 나의 과거 모습을 바라보는 꿈을 꿀 때가 있다. 마치 타임슬립을 한 것처럼. 때로는 과거에 대해 더욱 많은 생각들을 한다. 조금은 엉뚱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꿈속에서 보는 그 광경은 내 무의식 깊숙이 감춰져 있던 진짜 기억일까? 아니면 그저 여러 생각이 모여 만들어진 꿈인 것일까? 과거의 나의 모습이 아니라 전생이라면? 생은 정말 한 번일까? 아니면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의 등장인물들이 겪는 환생처럼 두 번째, 세 번째의 삶이 있을까? 과거를 들여다보는 소설, 드라마 그리고 영화들을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든, 특별한 시간대로 돌아가든, 환생을 하든, 사람들은 미래보다 과거를 더 궁금해한다.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 컷. / 출처. IMDb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 컷. / 출처. IMDb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나면 잘할 수 있을 텐데…’
‘과거로 가볼 수 있다면 어느 시점으로 가보고 싶으세요?, 누구를 만나고 싶으세요?’

마찬가지로 일상에서의 우리도 가끔은, 어쩌면 항상 과거를 동경하는 듯하다.

몇 해 전, 딸아이가 막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집안에서 그리고 차에서는 항상 ‘뽀로로와 노래해요’에서 흘러나오는 동요들이 틀어져 있었다. 그중 몇몇 노래는 아이의 마음에 꼭 맞는지 나올 때마다 큰소리로 따라 부르곤 했다.

‘난 찌루찌루의 파랑새를 알아요….’ <파란 나라>를 큰 소리로 부르며 TV 앞에 앉아 있는 딸아이의 모습에 문득 커다란 LP판이 돌아가는 전축 앞에 앉아 <파란 나라>를 흥얼거리는 어릴 적 나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현재의 나와 아내의 모습처럼 분명, 방 한쪽에서 아빠와 엄마가 흐뭇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가요였다고는 하지만 유치원, 학교, 놀이동산 어디에서나 항상 들려왔던 <파란 나라>와 <피노키오>. 40년이 지나 내 아이가 그때의 나의 모습처럼 흥얼거리고 있었고 나는 잠시나마 40년 전 그때로 돌아갔다.

본 이미지는 AI로 생성했습니다.

독일에 살고 있으니 아이가 지금이나 더 어렸을 때나 내가 한국에 연주하러 가게 되면 꼭 사 오라고 하는 과자가 있다. 내가 집에 돌아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 가방부터 받아서 가방을 열어 찾아내는 과자, 나 또한 어렸을 때 즐겨 먹었던 ‘바나나킥’이다. 성인이 되어서 먹을 일이 잘 없었는데 아이와 나란히 앉아 먹다 보니 문득 특별한 날 종합과자선물세트를 사 가지고 오셨던 나의 아빠가 생각났다. 어떤 과자가 들어있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봤던 상자. 나중에는 상자에 쓰여 있는 상표만 봐도 어떤 과자들이 들어있을지 예상을 하곤 했었다.

요즘 초등학교 입학을 한 달여 앞두고 있다. 손잡고 다니며 책가방도 사고, 학용품도 사고 딸아이는 매우 들떠 있다. 가방가게에서 아직은 자기 몸의 3분의 1 정도 되는 큰 가방을 메보고 흥분하는 모습을 보며 ‘아직 학교 간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잘 모를 텐데 그렇게 신이 날까?’라고 생각이 들었다가 이내 아이의 모습에서 수십 년 전 사각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산 날 집에서 그것들을 메고 흥분해 있는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지금 커가는 딸아이 나이대의 시간들은 보통 성인들이 얼마 전의 일들을 기억하듯 선명하게 기억나는 때는 아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고 함께하고 있으면 그때는 상상만 해왔던 과거로 여행을 하게 된다. 부모가 되어간다는 것, 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은 살아오며 부딪혔던 많은 일들로 인하여 기억을 잃었던 내 가장 순수했던 그 시기를 다시 경험하고, 아이를 통해 그때의 시절을 한 번 더 살게 해주는 뒤늦게 발견한 신의 선물인 듯하다. 딸아이와 함께하며 잊었던 그때로 돌아가 그때처럼 다시 살아가고, 성인이 되어가며 경험했던 온갖 시행착오들에서 받은 교훈을 잊지 않고 아이에게 알려준다.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나면 잘할 수 있을 텐데…’

어쩌면 불가능하다 여겼던 이 소망과 상상이, 아이와 함께하는 지금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지휘자 지중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