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 영·최재림, 서로의 프라임 세포…“우린 모두 우주의 주인” [인터뷰]

고승희 2026. 7. 29.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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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의 세포들’ 티파니 영·최재림 인터뷰
누적 35억 뷰 웹툰에서 드라마, 뮤지컬로
“혼자 같지만 혼자가 아니야” 위로와 응원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 티파니 영 [샘컴퍼니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나는 하나의 우주.”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 중)

최소 38만 9211개. ‘유미 마을’엔 무수히 많은 세포가 살고 있다. 세포의 세계에도 계급은 있다. 매일 매 순간 영향을 미치는 이성과 감성 세포, 달달한 봄날이기도 지독한 전쟁 같기도 한 사랑 세포, 식욕 갈망을 통제하는 다이어트 세포, ‘남친(구웅)’과 싸울 때면 어김없이 나서는 구질구질 세포, 성적 욕망까지 좌우하는 ‘응큼’ 세포. 이 세포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유미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중 최고(프라임 세포)는 따로 있다.

35억뷰를 기록한 웹툰, 배우 김고은을 만나 ‘완벽한 실사화’라는 극찬을 얻은 드라마에도 없었던 세포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 이름도 요상한 109. 견습 세포 109라 ‘백구’라고 불리며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EBS TV 프로그램까지 언급하니, 이쯤 하면 ‘견습’의 견은 개 견 자가 틀림없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유미가 아닌 ‘유미의 세포들’ 시점으로 다시 쓴 뮤지컬(8월 23일까지, 예술의전당)은 틀림없이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연습실과 무대 위에서 서로의 ‘프라임 세포’이자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며 백지 위에 새로운 우주를 세운 최재림, 티파니 영을 만났다. 두 사람은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건네는 이 이야기를 통해 자기 내면을 다정하게 보듬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건넸다.

백지 위에서 함께 쓴 창작의 고통

“연습 파일 속에 ‘5월 11일 버전’, ‘6월 23일 버전’으로 각기 저장된 무수히 많은 파일이 있어요. 키 체인지와 가사, 대사 수정이 개막 직전까지 이어졌어요.” (티파니 영)

무려 5년이 걸렸다. ‘유미의 세포들’이 뮤지컬로 태어나기까지의 시간이다. 다양하게 변주된 ‘슈퍼 IP(지식재산권)’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창작 초연’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뮤지컬 무대라면 더 어려운 여정이다. 창작진은 물론 배우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뮤지컬로는 세 번째. 특히 팬데믹의 기세가 걷힐 때쯤 출연한 ‘시카고’를 통해 ‘뮤지컬 배우’로 연착륙한 티파니에게 창작 뮤지컬 도전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수개월의 작업 과정을 돌아보며 “크리에이티브 팀이 ‘경력직 티파니는 해낼 수 있다’고 믿어준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티파니 영은 소녀시대에서 배우로, 뮤지컬 배우로 다방면에서 활동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좋은 스토리에 있다”며 “좋은 스토리가 있는 곳에 좋은 사람이 있어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 [샘컴퍼니 제공]

무대 위 유미는 화려한 K-팝 스타의 삶을 살아온 티파니와는 영 딴판이다. 사랑에 무너지고, 해내야 하는 일에 ‘일희일비’하는 평범한 30대 직장인이다. 티파니 영은 “유미는 춤을 잘 춰도 안 되고, 하이힐에도 익숙하지 않은 뚝딱거리는 평범한 인물”이라며 “차분하고 여리여리한 보컬 톤을 만들기 위해 기초부터 레슨을 받으며 캐릭터의 결을 다졌다”고 했다.

최재림의 109는 뮤지컬만의 ‘오리지널 세포’다. 그는 이 작품에서 더블 캐스팅된 정택운과 함께 109 캐릭터의 아이디어를 다듬는 리더 역할을 자처했다. 최재림은 “양정웅 연출님이 배우들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을 주시는 편이라, 한 신에 11개의 아이디어가 쏟아지곤 했다”며 “물리적 시간 한계 속에서 이를 취합하고 무대 위에서 가장 효과적인 동선과 대사를 선택하도록 모으는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109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무대 위에서 사라지지 않고 세포 마을의 선배들을 지켜보며 ‘자신의 이름’을 찾아간다. 체력 고충이 만만치 않다. 그는 “1막 엔딩곡 ‘109 리프라이즈(Reprise)’를 부르고 무지의 세계로 뛰어내린 뒤 분장실로 오면 옷이 다 젖어 있을 정도로 땀이 쏟아진다”며 “2막에 다시 입어야 하기에 가장 먼저 재킷을 뒤집어 걸어주고 모자를 말릴 정도로 에너지 소비가 크다”고 했다.

‘극과 극’ 캐릭터 접근법

두 사람의 캐릭터 분석법은 극과극이다. 티파니가 집요한 ‘딥다이브’ 형이라면, 최재림은 ‘설계형’이다.

‘유미의 세포들’의 출연 확정 이후 티파니 영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자료 조사’였다. 그는 “‘끝까지 파보자’는 스타일”이라며 “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탐구했고 웹툰도 다시 봤다”며 “심지어 ‘유미의 세포들’ 굿즈, 댓글까지 섭렵했다”고 했다. 원작 팬덤의 정서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그는 “유미의 사랑스러운 뚝딱거림, 집에 있는 모습, 간식 먹는 소소한 일상에 깊이 빠져들었다”고 했다.

뮤지컬 배우 최재림이 ‘유미의 세포들’에서 109 세포 역을 맡아 또 한 번 인생캐릭터를 만들고 있다. [샘컴퍼니 제공]

분석은 철저했지만, 캐릭터를 조각하고 작품에 숨결을 불어 넣기 위한 자기주장이 많았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연기할 때는 하나의 악기가 되고 싶어 창작진 의견에 따랐다”며 “양정웅 연출님께선 제가 하도 말이 없으니 ‘얘기하고 싶으면 말해도 된다’고 했을 정도”라며 웃었다. 대신 전공 분야에선 달랐다. K-팝 그룹으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음악적으론 다양한 의견을 냈다”고 귀띔했다. 첫 솔로곡 ‘째깍째깍’의 코드가 바뀌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도 티파니다.

“원래 ‘째깍째깍’은 마이너 코드로 시작해 유미가 너무 우울하게 묘사됐어요. 하지만 여기서 유미가 어두워지면 뒤의 피날레 서사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작곡가님께 메이저 코드로 전환해달라고 제안했어요.” (티파니 영)

유미의 생일인 1월 9일을 따온 ‘109 세포’를 만들기 위해 최재림은 ‘철부지’ 견습 세포에서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한 ‘자존감’을 깨닫는 성장 궤적을 촘촘히 설계했다.

최재림은 “자존감이란 근거 없는 망상이 아니라,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눈을 유지하면서 부족함을 채워나갈 때 완성되는 것”이라며 “1막에선 무작정 행동하는 천진난만한 아이였다면, 2막에서는 타인을 설득하고 깊이 고민하며 포용하는 자존감 세포로 변모하도록 단계별 연기를 다졌다”고 말했다.

두 배우의 해석이 만나 무대 위 유미의 이별 신은 상실의 아픔에 침몰하지 않고, 자존감을 선언하는 주체적 결단으로 완성된다. 최재림은 “티파니의 유미는 자존감을 되찾고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고 나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당당하고 확신에 찬 이별을 보여준다”고 귀띔했다.

서로의 ‘프라임 세포’이자 지원군

‘유미의 세포들’의 ‘실질적’ 주인공은 109. 그간 ‘시카고’,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등 숱한 작품을 해왔지만, 이 작품에서 최재림은 또 다르다. 세포 마을과 함께 무대의 막이 오른 뒤, 몇 개의 넘버를 지나 그가 등장하면 무대의 공기는 확연히 달라진다. 티파니 영은 “최재림의 109 세포는 이상하게 깜찍하다”며 “발랄한 해피 바이러스를 가졌다”고 했다. 이번에도 그는 완벽한 ‘109의 옷’을 입었다.

최재림의 명불허전 보컬과 연기, 무대 장악력 뒤엔 피나는 노력이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뮤지컬계 ‘다작의 아이콘’으로 꼽히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그는 ‘겹치기 출연’이 이어지며 컨디션 난조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안 일어났으면 좋았겠지만 일어났다”고 돌아보며 지난 2월부터 보컬 레슨을 다시 받고 있다고 했다.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 109 역할의 최재림 [샘컴퍼니 제공]

“20대 후반~30대 초반엔 피지컬 하나만으로 밀어붙였던 소리내기 방식에서 벗어나 노화로 인해 부족해지는 부분을 채우고 싶었어요. 연차가 쌓이며 주변에서도 ‘잘한다, 잘한다’ 하던 것과 비교해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고요.” (최재림)

이전은 물론, 뮤지컬 배우로 최정상에 선 지금도 최재림은 여전히 자기를 단련하는 배우다. 심지어 석사 논문으로 ‘뮤지컬 배우의 목조임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신체 훈련’까지 발표했다.

티파니 영 역시 자신을 끊임없이 재정비하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의 원동력은 ‘좋은 콘텐츠’다. 티파니 영은 “소녀시대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부터 태티서의 ‘트윙클’,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 대본에 이르기까지 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스토리를 찾고 분석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가장 큰 동력”이라고 했다.

“좋은 스토리를 좇아가다 보면 늘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그는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함께 좋은 스토리를 완성해 내는 작업 환경에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 뮤지컬 배우 최정원, 정영주, 아이비는 물론 ‘시카고’에 이어 또 한 번 파트너로 만난 최재림이 바로 그중 한 명이다.

티파니 영은 “재림 오빠는 나의 실제 ‘109 세포’”라며 “오빠의 보컬적 선택과 커리어 빌딩 과정은 제게 엄청난 귀감이 된다. 음악이 바뀔 때마다 오빠에게 제 넘버를 직접 불러달라고 부탁해 녹음본을 들으며 가창 톤을 연습하곤 했다”고 말했다.

최재림 역시 티파니가 뮤지컬 배우로 성장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유심히 봐왔다. 그는 “티파니는 어린 나이부터 글로벌 커리어를 리드하며 쌓아온 쇼맨십과 사업가적 통찰력을 갖춘 배우”라며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유미)를 아주 깔끔하고 명확하게 디자인해 내는 능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집요함에 동료로서 감탄하곤 한다”고 했다.

‘유미의 세포들’은 웹툰, 드라마에 이어 무대까지 확장, 원소스 멀티 유스 사례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제작사 샘컴퍼니에 따르면 일본 최대 엔터테인먼트사 토호(TOHO)와 NHK 관계자들이 직접 관람하며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최재림은 “‘유미의 세포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해외 진출작으로도 손색 없다”고 했다.

“치열한 일상에서 외롭다고 느껴질 때가 많지만, 사실 우리 안에는 나 자신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애쓰는 수많은 세포가 살고 있어요. 혼자 같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깊은 위로가 찾아올 거예요.” (최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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