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한산, 전통시장 텅텅…제철·조선소는 ‘열과의 사투’
시장 상인 “생선 안 팔리면 버려야…다음달 더 더울텐데 걱정”
율촌 산단 조선소 작업시간 줄이고 방식 바꿔가며 겨우 버텨
폭염 기준 강화한 광양제철소 “고로 멈출수 없어 견딜수 밖에”


광양에는 지난 25일 오전 11시 전남광주 지역에서 유일하게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졌다. 이후부터 나흘 내리 폭염중대경보가 계속됐다. 평소 시민들로 붐비던 번화가는 인적이 줄었고, 전통시장은 손님 발길이 끊겼다. 산업현장에서는 ‘옥외 작업 중지 권고’가 내려졌지만 30분 작업하면 20분 휴식하는 등 ‘게릴라식’ 옥외 작업을 하는 풍경도 보였다.
이날 오후 2시께 광양시 중마동 중마시장 일대는 평소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시민들로 붐비는 곳이지만 이제는 학원에 가는 아이들을 비롯한 시민 몇 명만 오갔고, 도로 위 차량만 가득 차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한 시민은 따가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얇은 외투를 머리에 두르고 걷는가 하면, 잠깐 거리를 걷다가도 더위를 이기지 못해 냉방이 가동 중인 가까운 매장에 황급히 들어가는 시민도 있었다.
김서현(28)씨는 “안경점에 가려는데 너무 더워서 잠깐 들어왔다”며 “차가 있다면 조금 더 편하겠지만 차가 없는 경우에는 걸어다니기 힘든 지경이다”고 말했다.

청년다방 광양중동점 직원 배영서씨는 “여기가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인데, 휴가 받아서 놀러가는 시기이기도 하고 너무 더우니 아무도 밖에 걸어다니려고 하지를 않는다”며 “날이 좋을 때는 산책 나온 시민들이 간식을 먹으러 찾아오기도 하는데, 최근 며칠간은 그런 손님들이 거의 없다시피 한다”고 말했다.
전통시장은 상황이 더욱 나빴다. 이날 오후 3시께 찾은 중마시장에서는 상인들 뿐 손님을 찾아볼 수 없었다.
중마시장 내 남해수산을 운영하는 김부덕(60)씨는 “더워지니까 시장에 사람이 하나도 안 온다. 수산업은 생선이 안 팔리면 다 썩어서 버려야 되니까 걱정이 크다”며 “문을 닫자니 단골 장사라 닫아 놓으면 보기 싫어서 닫을 수도 없다. 8월이 되면 지금보다 더 더워질텐데 갑갑하다”고 토로했다.
산업 현장은 혼선이 이어지고 있었다. 정부는 긴급 조치를 제외한 옥외 작업을 전면 중지할 것을 권고했지만, 밀린 작업을 해야 한다며 ‘죽기살기’로 작업을 하는 곳들이 적지 않았다.
율촌산단 내 한 조선소에서는 500g짜리 두껍고 무거운 방염복을 입은 작업자들이 산소절단기에서 나오는 불꽃 열기까지 견뎌가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곳 업체는 원래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각각 20분씩 휴식시간을 운영했지만,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지면서 30분 작업한 뒤 10~20분씩 쉬는 ‘게릴라 작업’ 방식으로 근무시간을 조정했다. 출근 시간도 오전 7시에서 새벽 5시로 앞당기고, 퇴근 시간도 오후 4시께로 조정했다.
작업자 A(73)씨는 “방염복을 입고 산소절단기에서 나오는 불꽃이 내뿜는 열까지 맞으며 일하다 보면 죽을 것 같이 더워도, 먹고 살아야 되니 버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뜨거운 열기를 견디며 일하는 포스코 광양제철소 작업자들도 지독한 폭염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압연공장에 들어서니, 붉게 달궈진 철판이 지나갈 때마다 뜨거운 복사열이 훅 끼쳤다. 공장 내부로 햇빛이 직접 들지 않는 구조였음에도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열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곳 공장의 평균 내부 온도는 40도 안팎에 이른다.
제철소 작업자들은 열기를 피할 곳이 없어졌다. 폭염으로 외부 기온마저 크게 치솟으면서 공장 내부와 외부의 체감온도는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광양제철소는 제선공정 등 고열 작업장의 휴식시간을 최대한 늘리고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체감온도 35도 이상에서는 옥외작업을 중단하거나 작업시간을 조정하고, 체감온도 38도 이상에서는 온열질환 고위험 작업을 중단하는 등 폭염 대응 기준도 강화했다.
광양제철소 제1제선공장에서 근무하는 강모씨는 “고로 앞은 원래도 열기가 심한 곳인데 요즘은 작업장으로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금세 땀에 젖는다”며 “휴식시간이 예전보다 늘어나고 수분도 계속 보충하지만 폭염이 길어질수록 체력 소모가 큰 게 사실이다. 조금이라도 몸 상태가 이상하면 바로 쉬면서 동료들끼리 서로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2열연공장에서 근무하는 이모씨도 “폭염이 이어지면서 휴식시간도 늘어나고 작업시간도 조정되고 있지만 현장에 나가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더위는 어쩔 수 없다”며 “물을 자주 마시고 쉬는 시간을 지키는 것 말고는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기상청은 광양의 폭염이 유독 심한 배경으로 ‘분지 지형’과 ‘높은 해수면 온도’를 꼽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낮 동안 축적된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데다, 인접한 여자만의 높은 수온으로 밤사이 유입되는 해풍도 뜨거워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한편 광양 지역에 내려진 폭염중대경보는 이날 오후 4시께 폭염경보로 격하됐다.
/광양 글·사진=박준원 기자 jwpak2@kwangju.co.kr
/광양=윤주은 기자 yun@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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