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본회의장에 걸려 온 전화

올해 6월께, 국회 본회의장에 있는데 아이가 전화했다. 밤 9시 가까운 시간, 다행히 잠깐 휴식 중이어서 받을 수 있었다. 아이는 다급히 말했다. “엄마, 문제집이 없어.” 학원 숙제를 못 해 혼날까 봐 겁이 난 모양이다. 책꽂이와 안방을 찾아보라고 했다. 없다고 했다. “그럼 팬트리 한번 봐.” 아이는 팬트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현관에서 들어와 오른쪽, 식탁 뒤에 있는 문 있잖아.” 끝내 문제집은 나오지 않았고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국정을 논의하는 공간인 본회의장이 여느 가정집처럼 됐다. “괜찮아. 아무도 혼내지 않아. 없으면 더 찾아보면 되고, 정 안 되면 다시 사면 돼.” 전화를 끊고 보니 주변 의원님들이 웃음을 참고 있었다. 민망했지만 곧 깨달았다. 답답해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통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하는 엄마의 하루는 그렇게 두 세계를 오간다. 국회에서 법안과 예산을 검토하다가도 아이의 문제집과 저녁밥을 챙긴다. 밤늦게까지 회의가 길어지면 아이 얼굴조차 못 보고 잠자리에 든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쉽지 않다. 아이 공부나 수행평가 활동을 꼼꼼하게 챙겨주는 다른 부모들을 볼 때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그래도 믿는 구석은 있다. 육아는 함께 보내는 시간의 양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아이와의 연결성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집에 돌아와 아이가 깨어 있으면 가급적 그 앞에 앉는다.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주말에 시간이 나면 함께 영화를 보거나 도서관에 간다. 대단한 교육법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이 서로의 삶을 나누는 방식이다.
아이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그 대신 곁에서 응원하고, 경계를 세워주고, 스스로 해낼 수 있다고 믿어주려 한다. 무엇보다 부모가 자기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왜 바쁘고 늦는지 안다. 때로는 서운해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워한다.
그날 아이는 끝내 문제집을 찾지 못했지만 나는 생각한다. 일·가정 양립이 ‘슈퍼맘’, ‘슈퍼대디’가 되라는 말이어서는 안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가족이 무너지지 않고, 일하면서도 아이와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사회가 받쳐줄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을 허락하는 일터, 부모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돌봄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또 국회의원으로서 앞으로 내가 놓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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