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가스터빈 앞세운 두산에너빌리티, 수주 잔고 26조 쌓여
지난 27일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 공장은 길이 340m, 높이 30m의 거대한 규모였다. 작업자가 신한울 원전 3·4호기에 들어갈 증기 발생기 표면에 연마기를 갖다 댈 때마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천장 크레인은 수십t 무게 기자재를 다음 공정으로 옮기고 있었다. 이 증기 발생기 제작이 끝나면, 체코로 보낼 원전 기자재 제작이 시작된다.

차로 3분 거리의 가스터빈 공장은 축구장 10개 규모였다. 미국 빅테크 데이터센터에 공급될 380MW(메가와트)급 가스터빈 2기가 한창 조립되고 있었다. 터빈 몸체에 시험용 센서 수백 개가 붙어 있었고, 기술자들은 모니터로 측정값을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김호정 두산에너빌리티 상무는 “가스터빈 주문이 향후 3년 치까지 밀려 있다”고 했다.
서울 여의도 면적과 맞먹는 두산에너빌리티 창원 공장 안에선 세계 전력 시장의 두 전선(戰線)이 압축적으로 펼쳐졌다. 한쪽에서는 최단 시간에 AI 데이터센터용 전기를 공급할 LNG(액화천연가스) 가스터빈이, 다른 쪽에서는 24시간 꺼지지 않는 기저 전원인 원전 설비가 만들어진다.
◇AI가 다시 그리는 세계 전력 지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지난해 485TWh(테라와트시)에서 2030년 950TWh로 두 배 가까이 늘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도 다르지 않다. 용인·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 프로젝트에만 원전 20기 분량인 27.7GW(기가와트)의 전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폭증하는 수요에 대한 세계 전력 시장의 해법은 두 갈래다. 김 상무는 “AI 전력 수요 급증으로 짧은 기간에 건설할 수 있는 LNG 복합화력발전소가 각광받고 있다”고 했다. 동시에 24시간 안정 공급이 가능한 원전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두 흐름 모두에 올라탄 세계적으로 드문 회사다. 2019년 미국·독일·일본·이탈리아에 이어 다섯째로 가스터빈 독자 개발에 성공했고, 원전 주기기 제작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실적이 이를 증명한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연결 기준)은 5478억원으로 전년보다 32.4% 늘었고, 2024년 16조2005억원이던 수주 잔고는 올 상반기 26조3509억원으로 10조원 넘게 증가했다.
◇3년치 일감에도 웃지 못하는 협력사 “정책이 걱정”
공장 한쪽엔 1만3000평 빈 부지가 있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곳에 8068억원을 들여 소형모듈원자로(SMR) 전용 공장을 짓는다. 대형 원전보다 건설 기간이 짧고 입지 제약이 덜한 SMR은 데이터센터 옆에 전용 전원을 두려는 빅테크들이 눈독을 들이는 설비다. 정연인 부회장은 “10월쯤 착공해 연간 20기의 SMR을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호황의 온기가 번지고 있지만 창원 협력업체 대표들의 표정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이 오락가락하며 고사 위기에 몰렸던 기억 때문이다. 협력업체들은 신규 원전·SMR 건설의 중장기 계획을 정부가 일관되게 유지하고, 제작에 수년이 걸리는 기자재는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미리 발주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동행한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형원전 최소 4기와 SMR 2기 이상을 추가 반영해 AI·반도체 산업의 전력 수요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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