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순칼럼]‘감자도’ vs ‘첨단도’

권혁순 기자 2026. 7. 29.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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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하지만 정겨운 땅, 오랫동안 강원을 수식하던 단어는 '감자도'라는 정감 어린 웃음표였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그 품 안에서 첨단의 지성을 식히는 고도화된 패러다임의 전환, 강원자치도는 비로소 자연과 기술이 가장 아름답게 결합하는 그린 데이터센터의 성지가 되어 가는 분위기다. 이제는 지역에서 태어난 청정 에너지를 강원자치도의 첨단 산단이 직접 숨 쉬듯 소비하는 분산에너지의 기적을 일궈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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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순 논설주간
감자는 오랫동안 강원자치도를 수식하는 단어
AI데이터센터 구축 봇물, 실핏줄을 연결해야

투박하지만 정겨운 땅, 오랫동안 강원을 수식하던 단어는 ‘감자도’라는 정감 어린 웃음표였다. 빽빽한 빌딩 숲에 지친 이들이 잠시 숨을 고르는 청정의 쉼터, 영서와 영동의 산하(山河)는 늘 그렇게 아련한 풍경으로 대중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지금, 오랜 시간 정체돼 있던 강원특별자치도(이하 강원자치도)의 시간표가 요동치고 있다. 춘천의 산자락에 삼성SDS의 모듈러 AI데이터센터가 뿌리를 내리고, 동해 북평에는 2.4GW라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GS그룹 AI데이터센터가 대지의 숨 고르기를 시작했다. 강릉 역시 SK의 AI데이터센터 유치와 함께 CEO 직속 ‘AIDC통합추진단’의 깃발을 내걸었다. 감자밭과 울창한 수림이 전부인 줄 알았던 이 땅이, 대한민국 AI 대전환 시대를 이끄는 가장 뜨겁고도 날카로운 심장부로 재조명받고 있는 것이다.

이 역동적인 변신의 중심에는 역설적이게도 강원자치도가 간직해 온 ‘자연 그 자체’의 순수한 가치가 서 있다. AI 시대의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정보의 창고가 아니다. 수만 대의 GPU가 밤낮없이 연산의 불꽃을 뿜어내는 초거대 열의 용광로다. 이 열기를 식히기 위해 천문학적인 전력과 수자원이 소모되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강원자치도의 차가운 바람과 소양강의 깊고 푸른 수자원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강렬히 탐내는 독보적인 ‘친환경 냉각 인프라’로 변모했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그 품 안에서 첨단의 지성을 식히는 고도화된 패러다임의 전환, 강원자치도는 비로소 자연과 기술이 가장 아름답게 결합하는 그린 데이터센터의 성지가 되어 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웅장한 조감도의 화려함에 취해 있기엔, 강원자치도 앞에 놓인 현실의 벽이 결코 녹록지 않다. ‘감자도’의 가슴 뛰는 변신이 일시적인 바람으로 흩어지지 않고, 이 땅에 깊이 뿌리내리는 자력 성장의 토양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냉철한 각오가 전제돼야 한다.

첫째, ‘거대한 유령 건물’이라는 고용의 착시를 깨고, 청년들의 삶이 호흡하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데이터센터는 웅장한 외형에 비해 상주 인력이 적다는 명확한 한계를 깨뜨려야 할 때다. 동해와 춘천, 강릉의 도전이 참된 결실을 맺으려면 단순한 관리를 넘어 빅테크 기업과 클라우드 사업자, 그리고 젊은 AI 스타트업들이 사계절 내내 몰려드는 판을 짜야 한다. 데이터센터라는 달콤한 꿀단지를 매개로, 청년들이 지역에서 꿈을 펼치고 정착할 수 있는 산학협력과 소프트웨어의 실핏줄을 연결해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둘째, 오랜 시간 가슴에 담아둔 ‘지역의 박탈감’을 치유하는 상생과 자립의 전력망 구축이 중요하다. 동해안 발전소에서 피어난 전기가 정작 지역을 외면한 채 수도권으로만 흘러가던 송전탑의 아픈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 이제는 지역에서 태어난 청정 에너지를 강원자치도의 첨단 산단이 직접 숨 쉬듯 소비하는 분산에너지의 기적을 일궈내야 한다. 데이터센터의 불빛이 주민들의 막연한 불안을 밝은 확신으로 바꾸고, 대기업 유치의 과실이 골목상권과 지역 복지의 온기로 스며들 때 사업은 단단한 추진력을 얻게 된다.

마지막으로, 시·군의 작은 경계를 넘어 강원자치도 전체를 하나로 묶는 ‘AX(AI 전환) 벨트’의 거대한 시스템 구축이다. 춘천의 수도권 접근성, 동해·강릉의 광활한 부지와 해양 에너지라는 각 지역의 독창적인 ‘악기’를 도 차원의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하나의 정교한 화음으로 지휘할 때 강원자치도는 ‘첨단도’가 된다. 소모적인 경쟁을 끝내고 전략적 분업을 이룰 때, 강원자치도의 경쟁력은 마침내 완벽해진다.

지금 도를 감싸안은 AI데이터센터의 열풍은 단순한 치적을 넘어, ‘지방 소멸’이라는 오랜 슬픈 굴레를 끊어낼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다. 푸른 자연을 온전히 보존하면서도 미래 기술의 메카로 거듭나는 이 아름다운 실험이 성공할 때, 도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청량하고 매혹적인 ‘젊은 미래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투박하고 따뜻한 감자의 정서 위에, 날카롭고 지혜로운 첨단의 지성이 얹어져야 한다. 그래야 ‘감자도’에서 ‘첨단도’로의 위대한 전환은 ‘희망고문’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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