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닉스 블랙홀’에 갇힌 경제·사회…경고음 커진다

한겨레 2026. 7. 2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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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리포트
28일 서울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20일 국회의원회관 작은 간담회실. 삼성 계열사들이 8년간 2조7800억원어치 사내급식 물량을 계열사인 삼성웰스토리에 몰아준 사건을 다루는 토론회가 열렸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기·삼성SDI 네 계열사는 사내급식 100%를 경쟁입찰 없이 수의계약으로 웰스토리에 맡겼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를 부당지원행위로 판단해 234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런데 지난 4월23일 서울고법은 이 처분을 전부 취소했다.

문제는 판결의 논리다. 법원은 이 지원행위가 위법하다는 것을 인정받으려면, 삼성전자 등이 웰스토리의 이익을 보전해주려는 ‘의도’를 가졌다는 사실이 직접적인 문서로 입증되어야 한다고 봤다. 미래전략실 회의자료도 나왔고, 경쟁입찰이 갑자기 전부 중단된 정황도 있었다. 웰스토리 직원들에게 ‘총수, 회장, 미전실, 일감 몰아주기, 이익률 보전’ 등의 키워드로 관련 문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이메일까지 나왔다. 그러나 법원은 이 중 어느 것도 ‘지원 의도를 명시한 직접 증거’가 아니라는 이유로 하나씩 배척했다. 법원이 행정제재 사건에 “형사판결보다 훨씬 엄격한 증명”을 요구했다. 정황과 간접증거를 종합해 판단하는 게 아니라, 개별 증거마다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식으로 하나씩 무너뜨린 것이다. 이런 방식이면 애초에 문서로 남지 않는 계열사 간 부당지원은 입증할 방법 자체가 사라진다. 거대기업을 견제해야 할 제도가 거대기업의 변호 논리 앞에서 무력화됐다.

그런데 그 소식을 다루는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세상의 관심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5월27일 국내 증시에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16종이 동시 상장됐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 주가를 하루 등락률의 2배로 추종하는 상품들이었다. 상장 첫날 거래대금만 10조원을 넘어섰다. 개인투자자 순매수만 2조원을 넘겼다. 거래에 필수인 사전교육 신청자가 폭증하며 금융투자협회 홈페이지가 한때 마비됐다. 6월 한 달간 두 회사 레버리지 상품 거래대금은 212조원에 달했다. 은퇴자의 노후자금과 청년의 종잣돈, 친권자 동의를 받은 미성년자까지 여기 뛰어들었다. 같은 회사를 둘러싼 두 장면이 이렇게 극명하게 갈렸다. 요즘 언론은 부쩍 ‘삼전닉스’라는 말을 쓴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를 하나로 묶어 부르는 이 신조어에는 심각한 사회적 의미가 담겨 있다. 두 회사가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한국 경제와 사회의 관심, 자본, 정책까지 통째로 빨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웰스토리와 레버리지 상품은 대비되는 두 장면이다. 이 둘을 나란히 놓고 보면 거대기업의 영향력이 임계점을 넘어설 때 사회 곳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가 보인다.

거대기업 영업이익 두고 노조-주주 충돌 격화

거대기업의 엄청난 이익을 둘러싼 이해관계자 욕망의 충돌도 계속 이어졌다. 4월 삼성전자 노조는 평택캠퍼스에서 4만명이 모인 집회를 열었다. 영업이익의 15%에 이르는 성과급을 요구했다. 맞은편에선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가 맞불집회를 열었다. 노조의 요구를 “악덕 채권자”에 비유했다. 5월엔 참여연대가 토론회를 준비했다. 반도체 초과이윤을 노동자·하청업체·사회로 어떻게 나눌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한 온라인 게시판에 토론회 참석자를 “죽이겠다”는 협박과 지역 혐오 발언이 뒤섞인 글이 올라와 경찰이 출동했다. 5월 노사는 반도체(DS)부문 특별성과급을 신설해 사업성과의 약 12%를 재원으로 삼는 데 잠정 합의했다. 그러자 주주운동본부는 즉각 소송을 예고했다. 실제로 지난 22일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 대표이사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협상을 중재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함께 고발됐다. 노사가 어렵게 도출한 합의가 형사 고발장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7월엔 정부가 400조원 규모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그러자 초기업노조는 내부 설문에서 84%가 반대했다며 이를 2027년 임단협 의제로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주주단체와 노조는 각자 그럴듯한 논리를 들고나온다. 하지만 합의와 재량의 영역에 있던 문제가 최근 소송, 살해 협박, 혐오의 문제로 끌어올려진 근본적 이유는 따로 있다. 나누어야 할 전체 파이가 커졌기 때문이다. 또, 초과이익 관련 제도는 이미 유구한 역사가 있다. 최근에 갑자기 공산주의 제도를 들고나온 게 아니라는 말이다. 삼성전자는 2001년 ‘PS’(초과이익분배금) 제도를 도입했다. 사업부가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 그 초과분의 20% 한도 내에서 임직원에게 나누는 방식이었다. 2014년엔 ‘OPI’(초과이익성과급)로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익’은 세후 영업이익에서 자본조달비용을 뺀 경제적 부가가치(EVA)다. 이 경제적 부가가치가 연초 설정한 목표를 넘어서면 그 초과분의 20%가 재원이 된다. 개인에게는 연봉의 최대 50%까지 지급되는 구조다.

이런 역사를 고려하면 지금의 충돌은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 제도를 둘러싼 협상과 타협의 관행이 무너졌다는 신호다. 이제 그 영역은 통째로 검찰, 경찰의 책상 위로 넘어가고 있다. 협상이 결렬되면 소송을 걸고, 마음에 안 드는 정책에는 직권남용 혐의를 씌운다. 이건 낯익은 풍경이다. 정치권은 국회에서 답을 찾는 능력을 스스로 포기했다. 대신 고소와 고발로 승부를 가르려 든다.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을 그대로 빼닮았다. 합의로 풀어야 할 문제를 습관적으로 사법의 영역에 떠넘기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거대기업 내부의 갈등이 한국 정치의 오래된 병리를 그대로 복제하고 있다는 증거다. 내부 이해관계자들이 서로를 그만큼 싫어한다는 이야기이다.

삼전닉스 성장에 여타 부문 잠식…‘네덜란드병’ 빠질 수도

최근 한 보고서는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기 대비 3.8% 늘어난 반면,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13.2%나 증가해 두 지표의 격차가 9.4%포인트까지 벌어졌다고 밝혔다. 그 배경으로 반도체 가격이 1년 만에 92.5% 뛰면서 전체 수출물가 상승분의 73.4%를 반도체 혼자 만들어냈다는 점을 지목했다. 인공지능(AI)발 구조적 수요 확대가 배경이라 호황이 더 오래갈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이 호황의 온기가 골고루 퍼지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짚었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자본지출만 지난해 75조원에서 올해 120조원, 내년엔 150조원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반면 반도체를 제외한 여타 업종의 투자는 그간의 업황 부진과 고유가 충격 여파로 여전히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상장기업 영업이익 증가분의 대부분도 이 두 회사에 쏠려 있다. 이런 편중이 장기화될 경우 이른바 네덜란드병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정 부문의 높은 임금과 투자수익률이 여타 부문의 인력·투자를 흡수하여 성장기반을 잠식하는” 현상이다. 게다가 국내 반도체 산업은 제조장비의 6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두 회사의 해외직접투자도 늘고 있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돈이 국내 다른 산업으로 흘러들어 가는 통로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 초호황으로 불어난 소득과 자산은 아이티(IT) 업종과 고소득·고자산층에 집중된다. 소비 성향이 낮은 계층에 돈이 몰리면서 내수 파급 효과는 제한적이다. 비아이티 업종의 투자도 여전히 부진하다. 두 가지 리스크도 경고했다. 하나는 반도체 호황으로 유입된 자금이 생산적 투자보다 부동산 등으로 흘러가며 금융 불균형을 키울 위험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력과 자본 등 생산요소가 아이티 부문으로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여타 핵심산업의 생태계 붕괴와 계층 간 불균형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중장기적 우려다.

견제 무너뜨린 법원, 분열하는 노조-주주, 변동성 키운 금융권

거대기업이 모든 관심과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때 나타나는 부작용은 크게 세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 견제의 무력화다. 웰스토리 판결은 하나의 선례를 남겼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내부거래를 심사할 때 사실상 ‘검찰급 입증’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삼전닉스 광풍에 116만명이 레버리지 거래를 위한 교육을 이수했다. 그 사이 이 판결의 함의를 따지는 자리는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감시장치가 무력해지는 순간은 이렇게, 아무도 지켜보지 않을 때 조용히 찾아온다. 둘째, 해결 방식의 폭력화다.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은 대화가 아니라 소송으로 되돌아왔다. 초과이윤 분배를 논의하려던 토론회에는 논리적 반박이 아니라 살해 협박이 날아들었다. 이해관계자들은 서로 말을 섞는 대신 힘과 위협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든다. 이 자체가 거대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얼마나 첨예하고 비대해졌는지를 보여준다. 셋째, 집중으로 인한 변동성 증폭이다. 코스피 시총의 절반이 두 종목에 쏠렸다. 여기에 레버리지 자금까지 얹히자 코스피 변동성은 레버리지 상품 상장 전보다 2배 정도 뛰었다. 국가 경제의 성장기반 자체가 특정 부문으로 쏠리는 ‘네덜란드병’ 경고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자원이 한곳으로 몰릴수록 그 시스템 전체가 작은 충격에도 크게 흔들리게 된다. 달걀이 한 바구니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세 부작용 하나하나에 각기 다른 주체가 가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견제를 무력화한 것은 법원의 판결이었고, 갈등을 폭력으로 되돌린 것은 노조와 주주단체였으며, 변동성을 키운 것은 금융권이었다. 문제를 만든 주체가 이렇게 흩어져 있는 한, 정부 혼자서는 이 블랙홀을 멈춰 세울 수 없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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