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닉스 블랙홀’에 갇힌 경제·사회…경고음 커진다


지난 7월20일 국회의원회관 작은 간담회실. 삼성 계열사들이 8년간 2조7800억원어치 사내급식 물량을 계열사인 삼성웰스토리에 몰아준 사건을 다루는 토론회가 열렸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기·삼성SDI 네 계열사는 사내급식 100%를 경쟁입찰 없이 수의계약으로 웰스토리에 맡겼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를 부당지원행위로 판단해 234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런데 지난 4월23일 서울고법은 이 처분을 전부 취소했다.
문제는 판결의 논리다. 법원은 이 지원행위가 위법하다는 것을 인정받으려면, 삼성전자 등이 웰스토리의 이익을 보전해주려는 ‘의도’를 가졌다는 사실이 직접적인 문서로 입증되어야 한다고 봤다. 미래전략실 회의자료도 나왔고, 경쟁입찰이 갑자기 전부 중단된 정황도 있었다. 웰스토리 직원들에게 ‘총수, 회장, 미전실, 일감 몰아주기, 이익률 보전’ 등의 키워드로 관련 문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이메일까지 나왔다. 그러나 법원은 이 중 어느 것도 ‘지원 의도를 명시한 직접 증거’가 아니라는 이유로 하나씩 배척했다. 법원이 행정제재 사건에 “형사판결보다 훨씬 엄격한 증명”을 요구했다. 정황과 간접증거를 종합해 판단하는 게 아니라, 개별 증거마다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식으로 하나씩 무너뜨린 것이다. 이런 방식이면 애초에 문서로 남지 않는 계열사 간 부당지원은 입증할 방법 자체가 사라진다. 거대기업을 견제해야 할 제도가 거대기업의 변호 논리 앞에서 무력화됐다.
그런데 그 소식을 다루는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세상의 관심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5월27일 국내 증시에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16종이 동시 상장됐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 주가를 하루 등락률의 2배로 추종하는 상품들이었다. 상장 첫날 거래대금만 10조원을 넘어섰다. 개인투자자 순매수만 2조원을 넘겼다. 거래에 필수인 사전교육 신청자가 폭증하며 금융투자협회 홈페이지가 한때 마비됐다. 6월 한 달간 두 회사 레버리지 상품 거래대금은 212조원에 달했다. 은퇴자의 노후자금과 청년의 종잣돈, 친권자 동의를 받은 미성년자까지 여기 뛰어들었다. 같은 회사를 둘러싼 두 장면이 이렇게 극명하게 갈렸다. 요즘 언론은 부쩍 ‘삼전닉스’라는 말을 쓴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를 하나로 묶어 부르는 이 신조어에는 심각한 사회적 의미가 담겨 있다. 두 회사가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한국 경제와 사회의 관심, 자본, 정책까지 통째로 빨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웰스토리와 레버리지 상품은 대비되는 두 장면이다. 이 둘을 나란히 놓고 보면 거대기업의 영향력이 임계점을 넘어설 때 사회 곳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가 보인다.
거대기업 영업이익 두고 노조-주주 충돌 격화
주주단체와 노조는 각자 그럴듯한 논리를 들고나온다. 하지만 합의와 재량의 영역에 있던 문제가 최근 소송, 살해 협박, 혐오의 문제로 끌어올려진 근본적 이유는 따로 있다. 나누어야 할 전체 파이가 커졌기 때문이다. 또, 초과이익 관련 제도는 이미 유구한 역사가 있다. 최근에 갑자기 공산주의 제도를 들고나온 게 아니라는 말이다. 삼성전자는 2001년 ‘PS’(초과이익분배금) 제도를 도입했다. 사업부가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 그 초과분의 20% 한도 내에서 임직원에게 나누는 방식이었다. 2014년엔 ‘OPI’(초과이익성과급)로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익’은 세후 영업이익에서 자본조달비용을 뺀 경제적 부가가치(EVA)다. 이 경제적 부가가치가 연초 설정한 목표를 넘어서면 그 초과분의 20%가 재원이 된다. 개인에게는 연봉의 최대 50%까지 지급되는 구조다.
이런 역사를 고려하면 지금의 충돌은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 제도를 둘러싼 협상과 타협의 관행이 무너졌다는 신호다. 이제 그 영역은 통째로 검찰, 경찰의 책상 위로 넘어가고 있다. 협상이 결렬되면 소송을 걸고, 마음에 안 드는 정책에는 직권남용 혐의를 씌운다. 이건 낯익은 풍경이다. 정치권은 국회에서 답을 찾는 능력을 스스로 포기했다. 대신 고소와 고발로 승부를 가르려 든다.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을 그대로 빼닮았다. 합의로 풀어야 할 문제를 습관적으로 사법의 영역에 떠넘기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거대기업 내부의 갈등이 한국 정치의 오래된 병리를 그대로 복제하고 있다는 증거다. 내부 이해관계자들이 서로를 그만큼 싫어한다는 이야기이다.
삼전닉스 성장에 여타 부문 잠식…‘네덜란드병’ 빠질 수도
견제 무너뜨린 법원, 분열하는 노조-주주, 변동성 키운 금융권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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