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서촌에 강남 투자 부동산 뜨자 10년 상인들 떠나갔다

정원혁 기자 2026. 7. 2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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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늘며 상권 활성화되자 투자 전문 업소 나타나 건물주 ‘유혹’…상인들 “새 주인이 가게 비워달라 요구, 권리금도 못 받아”

[비즈한국] 서울 종로구 서촌이 ‘한국다움’을 체험하려는 외국인 관광객과 젊은 층의 방문으로 다시 활기를 띠며 주목받고 있다. 방문객이 늘자 상권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외부 자본 유입과 임대료 상승이 이어지면서 오랫동안 영업해온 상인들은 하나둘 서촌을 떠나고 있다.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촌 일대에는 관광객과 행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사진=정원혁 기자

27일 오후 1시께 찾은 서울 종로구 서촌 일대에는 궂은 날씨에도 행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관광객들은 거리를 오가며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카페를 찾았고, 일부 가게 앞에는 줄을 선 사람들도 보였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도 눈에 띄었다. 거리 곳곳에는 새로 들어선 의류 매장과 리모델링 중인 상가, 신규 입점을 알리는 안내문이 자리했다.

서촌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의 2026년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서촌 행정구역 중 하나인 청운효자동의 일평균 유동인구는 3만 7890명으로, 전 분기보다 242명, 전년 동기보다 342명 늘었다. 점포 수도 946개로 전년 동기보다 11개 증가했다.

방문객이 늘면서 서촌 상가와 건물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최근 1~2년 사이 건물 문의가 두세 배 늘었다”며 “상가 매물이 나오면 바로 나갈 정도로 공실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서촌에 문을 연 아디다스 매장.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은 아디다스와 같은 대형 브랜드 입점이 상권 변화의 신호라고 말한다. 사진=정원혁 기자

최근 서촌의 건물과 상가 거래를 주도하는 곳은 강남의 투자 전문 부동산들이다. 지역 공인중개업소들은 서촌 건물 대부분이 강남권 중개업체를 통해 매매되며, 자신들이 직접 중개하는 거래는 몇 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6년째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 중인 A 씨는 “최근 강남에 있는 중개법인들이 많이 들어와 건물주들에게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매물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A 씨에 따르면 이들은 매도 의사를 밝히지 않은 건물주에게도 전화나 우편으로 접근해 일정 금액 이상을 받아주겠다며 건물을 내놓도록 권유한다.

서촌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30대 건물주 B 씨는 실제로 최근 건물을 팔라는 연락을 자주 받았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한 건물주 C 씨도 비슷한 제안을 받았다. C 씨는 “대부분 강남에 있는 투자 전문 부동산으로 비싼 가격에 팔아주겠다며 전화를 하고 우편물도 계속 보낸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기존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사례도 등장했다. 지역 공인중개사에 따르면 1~2년 전 3.3㎡당 6000만 원 안팎에 거래되던 서촌 건물이 최근에는 1억 원을 넘겨 거래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50여 년간 운영돼온 식당 건물이 3.3㎡당 1억 5000만 원가량에 거래됐다. 

50여 년간 운영돼온 서촌의 한 식당은 지난 4월 문을 닫았다. 이 건물은 지난 4월 3.3㎡당 1억 5000만 원가량에 거래됐다. 불과 1, 2년 전보다 가격이 2배 이상 올랐다. 사진=정원혁 기자

이처럼 기존 시세보다 높아진 매매가는 새로운 기준이 된다. 고가 거래가 이어지면 인근 건물주들의 기대 매매가도 높아진다. 건물 가격 상승은 결국 임대료 인상 압력으로 이어져 기존 상인들의 이탈을 불러오기도 한다. 실제로 14년간 운영된 서촌의 한 카페는 올 3월 임대료 인상으로 인해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건물 거래 과정에서 신규 매수자가 기존 임차인의 명도(임차인이 점포를 비워 건물주에게 넘기는 것)를 요구한다는 점도 기존 상인들을 떠나게 하는 요소다. 강남권 투자 전문 중개법인 관계자는 “매수자가 건물을 직접 사용하거나 공사를 계획한 경우 잔금을 치르기 전에 명도와 공실 인도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수익률이 낮으면 임대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브랜드를 입점해달라고도 요구한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같은 자리에서 영업해온 상인이 적지 않은 서촌에서는 이 같은 명도 요구가 장기 임차인의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 현행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차인은 최초 임대차 기간을 포함해 전체 10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다. 10년이 지났다고 자동으로 퇴거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법이 보장하는 계약갱신요구권 행사 기간은 끝난다. 결국 이 기간이 끝나면서 어쩔 수 없이 나가는 임차인이 생기는 것이다.

2016년부터 서촌에서 식당을 운영한 60대 임차인 D 씨는 최근 건물주로부터 건물이 팔렸으니 가게를 정리해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올해로 영업 10년째인 D 씨는 “2년 정도 더 장사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인근의 다른 식당 주인도 “오랫동안 가게를 하던 사람들이 10년이 지나 권리금도 받지 못하고 떠나는 모습을 최근 보게 된다”며 “우리도 8년 차인데 10년이 되기 전에 가게를 내놓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학과 교수는 서촌 상권의 변화가 활성화와 가격 상승을 동시에 불러온다고 짚었다. 신 교수는 “상권이 활성화된다는 차원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외부 중개법인들이 투자 관점으로 접근하면 가격이 더 많이 뛰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촌의 골목과 한국적인 분위기 등 ‘서촌다움’을 유지하면서 성장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원혁 기자 garden7074@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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