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염에 폐사하는 벌, 헐떡이는 닭… “헛 기르는 셈” 축산 농가 한숨
급수·냉방시설 확충에도 피해 ↑
양계장도 폐사 잇따라 ‘비상사태’
‘고온 스트레스’에 소들도 피해
2개월 만에 가축 폐사 30만 마리
당분간 폭염 이어져 농민들 시름

28일 오전 10시 경기 남양주시 퇴계읍의 한 양봉장. 양봉장을 20년 넘게 운영해온 김선희(73) 씨가 35도를 웃도는 뙤약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벌통 위로 연신 물을 뿌리고 있었다. 벌통 안에서 활동해야 할 벌들은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입구에 빼곡히 달라붙어 있었다. 양봉장 한켠에는 벌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산에서 끌어온 물이 급수대를 따라 쉴새없이 흘렀다.
한국양봉협회 경기도지회장을 지낸 김 씨는 “예전에는 나무 벌통을 사용했지만 기후변화로 여름철 폭염이 잦아지면서 7년 전부터 단열 성능이 높은 EPP 벌통을 쓰고 있다”며 “직사광선을 막기 위해 스티로폼을 덮고, 수시로 벌통에 물을 뿌리며 온도를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폭염이 이어지면서 김 씨는 작년보다 스티로폼 가림막과 급수시설 등 기존 시설·자재 활용을 20%가량 늘렸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해를 거듭할수록 피해는 커지고 있다. 김 씨는 육각형 벌방에서 확인되는 알이 평년 3000개 안팎에서 올해는 1000~1500개 수준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내년에 활동할 벌을 키우는 중요한 시기”라며 “지금 알을 제대로 낳지 못하면 내년 생산량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전국에 폭염특보가 이어지면서 양봉, 목축, 낙농, 가금 등 축산 농가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고온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가축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거나 급기야는 체온을 넘어선 기온을 견디지 못하고 폐사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농가들이 냉방과 시설 관리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5월 15일 이후 닭과 돼지 등 가축 폐사는 이미 누적 30만2000여 마리를 넘어서는 등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이날 방문한 충남 천안시 서북구의 한 양계 농장도 쉴새 없이 선풍기와 쿨링박스 등 냉방 시설이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고온다습한 날씨에 수천 평 규모의 양계장 4개 동을 가득 채운 닭들도 힘겨워하고 있었다. 양계장은 기온에 따라 즉시 가동할 수 있도록 1~5단계 냉방 시설을 갖추고 있었지만 기온이 39도 이상 올라가면 이 또한 큰 효과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기온이 39도를 넘어선 경북과 전남 일부 지역의 양계장에서는 하루에 수백마리 씩 폐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양계장 주인인 60대 최 모 씨는 “지난 6월에는 평년 대비 날씨가 선선해 양계장들이 ‘행복한 여름’을 보냈었지만, 최근 들어 급격히 기온이 올라가면서 폐사하는 개체가 늘어나고 있다”며 “8월부터 본격적으로 폭염이 시작되면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20%까지 폐사할 것으로 예상돼 사실상 닭을 헛 기르는 셈이 된다”고 토로했다. 양계장들은 평상시 대비 2배가량 많은 월 약 300만 원의 전기세를 지불하며 냉방시설을 가동하고 있어 매출액도 올해 20~30%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인근 소 농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지붕이 드리운 그늘 아래 누워있는 소들도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소들은 머리 위에 돌아가는 선풍기에서 나오는 바람을 쐬며 더위를 식히기에 여념 없었다. 농장 관계자는 “폭염에 소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료 섭취를 잘 하지 않아 육질이 안 좋아진다”며 “날씨는 갈수록 더워지지만 소에게 억지로 사료를 먹일 수는 없어 별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우유와 달걀 등 낙농업계도 타격을 입고 있다. 산란계나 젖소의 경우 더운 날씨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산량과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젖소 농가들은 물을 뿌리거나 선풍기 등 냉방 장치를 24시간 가동하며 더위를 쫓고 있지만 습한 날씨까지 겹쳐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기온에 애를 먹고 있다. 경북 지역에서 축산 농가를 운영하고 있는 60대 김 모 씨는 “젖소의 경우 폭염으로 열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료를 먹는 양이 줄어들어 유량 자체가 감소하는데다 영양분 섭취가 제대로 되지 않아 품질도 떨어진다”라며 “소들은 비교적 다른 가축에 비해 더위를 덜 타긴 하지만 육우와 달리 젖소는 소 자체가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폭염에 더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당분간 폭염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미 전국 16개 시도 225개 구역에 폭염특보가 발령된 가운데 전남광주와 대구, 경북, 경남 일부에는 최고 단계인 ‘폭염 중대경보’가 발효 중이다. 기상청은 이번 주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최고체감온도가 33도 이상, 남부지방은 35도 이상까지 오르는 등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낮 최고기온도 33~39도로 평년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보했다. 기상청은 장마 종료 이후 북태평양고기압에 이어 상층의 티베트고기압까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면서 더위가 쉽게 식지 않는 기상 여건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양주=남소정 기자 nsj@sedaily.com천안=채민석 기자 vegem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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