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당' 다음 수순은…인도 청년들, 이번엔 연료값 겨눈다
성공 사례에 모방 운동 확산…'E20국민당' 등장
이번엔 교통장관…아들 에탄올 사업 이해충돌 의혹
여당 내부도 술렁…아삼주 장관 딸까지 시위 동참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인도 청년들의 반정부 운동이 시험제도에서 연료로 옮겨붙고 있다. 대학생들이 주축이 돼 만든 ‘바퀴벌레국민당’(CJP)이 36일 만에 교육부 장관을 물러나도록 만들면서 같은 방식을 따라 한 운동이 곧바로 등장했다. 한 번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데 성공한 만큼 시민들도 자신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연비가 나빠지고 오래된 엔진이 손상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발의 배경이다. E20국민당은 모든 주유소가 순수 휘발유를 부담 없는 값에 팔아야 한다고 요구하며 담당 장관의 사퇴도 촉구했다. 이 조직은 스스로를 ‘국민의 목소리’라고 소개하며 정의와 투명성, 책임, 국민의 권리를 내걸고 있다.
표적은 니틴 가드카리 교통부 장관이다. 그의 아들들이 에탄올을 생산하는 가족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서다. 가드카리 장관은 이해충돌이 없다고 부인하며 아들들의 몫이 인도 에탄올 시장의 0.5%에도 못 미친다고 주장했다.
행동도 이미 시작됐다. 새 연료에 반대해온 정치분석가 테세인 푸나왈라는 오는 31일 가드카리 장관의 자택으로 향하는 ‘차량 행진’을 제안했다. 델리의 택시 기사들은 지난주 연료 문제를 이유로 다음달 4일 의회로 행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선 CJP의 성과가 이런 흐름을 만들었다. CJP는 시험제도의 허점을 문제 삼아 36일 만에 수십만 명의 학생을 거리로 불러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좀처럼 하지 않던 후퇴를 택했고, 다르멘드라 프라단 교육부 장관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정부는 시험제도를 손보겠다고 약속했고, 전국 의대 입학시험이 취소된 뒤 세상을 떠난 학생들의 가족을 보상하기로 했다. 그동안 인도에서 시위는 대체로 무시되거나 억눌렸고, 모디 총리가 정치 담론을 주도해왔다.
사우라브 다스 CJP 수석대변인은 “정부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며 “토론이나 협의 없이 정책과 법을 밀어붙이는 것을 국민이 더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CJP 지도부는 연료 시위를 지지할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
프라탑 바누 메타 프린스턴대 강사는 이번 운동이 “국가에 요구를 제기하는 새로운 방식의 본보기”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사람들은 제도권 통로를 통해 요구를 전달할 수 있다는 데 회의적”이라며 “중요한 요구가 생길 때마다 거리의 운동을 만들려는 시도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 청년운동을 연구하는 샤쿤탈라 바나지 런던정경대 교수는 “델리뿐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쟁점을 둘러싼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연료 시위가 번질 가능성이 크다며 “중산층 여당 지지자와 그 자녀에게 실제로 영향을 주는 사안이 힘을 받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집권 인도국민당(BJP) 내부도 술렁이고 있다. 특히 자녀가 시위에 참여한 당원들이 그렇다. 북동부 아삼주 여당 정부의 한 장관 딸이 CJP 시위 현장에서 모디 총리를 비판하는 모습이 소셜미디어 영상으로 퍼지기도 했다. 이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일부 당원은 대체로 평화롭던 집회에서 학생들이 경찰에 맞고 최루탄을 맞는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고 사석에서 토로했다.
BJP는 2024년 의회 과반 의석을 잃고도 주 선거에서 잇따라 이기고 야당 의원들을 끌어오며 세를 유지해왔다. 비판론자들은 지난 10년간 여당의 힘이 커지면서 법원과 선거관리기구, 주류 언론이 점점 여당의 뜻에 기울었고 그만큼 반대의 공간이 좁아졌다고 지적한다.
다스 대변인은 “다음 총선까지 남은 3년 동안 정부가 국민의 말을 듣기 시작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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