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계에는 권력 있는 여자들이 더 필요해요” 이랑의 돌직구 [플랫]

플랫팀 기자 2026. 7. 2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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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창작자들이 양적으로 많아졌지만, 여전히 음악산업을 이끄는 ‘아저씨’ 무리가 너무 큰 힘을 가지고 있어요. 음악계에는 권력 있는 여자들이 더 필요해요.

지난달 29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이랑은 “여성 창작자는 희소한 존재가 아니다. 남성 중심 음악판이 여성을 (공연) 라인업에 희소하게 배치할 뿐이다”라며 음악 산업의 권력 구조를 지적했다. 이어 “다채로운 창작자들에 맞춰 설 무대를 제공하는 산업 관계자들의 발맞춤이 필요하다”며 “중년 이후에는 음악 산업 관계자로서 자리매김해 어려움을 겪는 아티스트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가수 이랑이 6월2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랑은 다채로운 창작자들이 더 많은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김정근선임기자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 영화인으로 활동하는 이랑에게는 별명이 많다. 집회 현장에서는 민중 가수, 공연장에서는 포크 가수, 세상에 저항하는 태도를 견지한다는 점에서 펑크 가수라 불리기도 한다. 이랑은 자신을 장르보다 “글을 기반으로 창작해나가는 사람”이라 정의했다. “어떤 멜로디를 만들지보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가 먼저”라며 “할 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노래하고, 낭독하고 토크도 다니고 있다”고 말이다.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 그는 생각이 많아질 때면 기타를 잡았다. 한때는 창작을 하려면 책상과 작업실 같은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분노와 결핍도 그 자체로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날 ‘돈이 없어서 어떡해’라든지 ‘집이 없어서 미칠 것 같아’라든지, ‘가족들은 다 쓰레기 같아’ 라는 것도 말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때부터 작업을 시작했어요.”

본격적인 음악작업을 하기 전 그는 노래에 넣고 싶은 단어와 쓰지 않을 단어를 정리했다. 가난, 죽음, 배고픔, 고독, 자살 등 평범한 노래에서 듣기 힘들었던 단어들이 음악의 재료가 됐고, 분노와 외로움을 숨기지 않은 그의 노랫말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2021년 발매한 3집의 타이틀곡 ‘늑대가 나타났다’는 세상에 분노한 민중들이 일어서는 이야기가, 수록곡 ‘빵을 먹었어’는 하루의 행복이 빵 한 조각뿐인 삶이 담겼다.

[플랫]이랑이 나타났다

지난 1월 대만 가오슝 공연 무대에 선 이랑의 모습. 본인 제공 ⓒMitamura Ryo

이랑은 “제가 20살 21살 때 외친 것들을 지금도 들어주시는 걸 보면 ‘아직도 세상은 살기 힘든가 보다’ 생각한다”며 “제 노래가 더는 재미도 없고 쓸모가 없는 때가 와야 좋은 나라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세상에 대한 불만을 가감없이 담아낸 그의 목소리를 누군가는 ‘공격’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시절인 지난 2022년 10월에 열린 부마민주항쟁 기념식 행사에서, 행정안전부로부터 ‘늑대가 나타났다’를 검열당했던 것이 그 예다. 당시 이랑은 공연 3주전 재단 측의 곡 변경 요구를 거절한 끝에 무대에 서지 못했다.

이에 그는 “명백한 검열”이라며 정부와 부마항쟁기념재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약 4년만인 지난달 소송에서 승리했다. 이랑은 “행안부에서 항소하지 않겠다는건 현명한 판단”이라며 “몇 년간 미지급된 돈과 사과를 받고싶다”고 했다.

이랑은 광장과 거리에서 차별금지와 여성 권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해 온 아티스트다. 페미니스트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여성 창작자로서 강한 목소리를 내게 된 이유를 묻자 그는 “스스로 ‘명예 한남’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제가 영화과에서 공부하던 시절 모든 교보재는 남성 감독 작품이었어요. ‘남자들이 잘하나보다 나는 여자인데 어쩌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요. 그러다 음악판에 왔는데 같은 상황이더라고요. 남자가 대다수인 커뮤니티에 한 명 낀 여자 자리밖에 없었어요. 저는 그 안에서 성격이 드센 특이한 여자애 포지션이었죠. 저는 그때를 ‘명예 한남’ 시기라고 불러요. 남성처럼 굴면서 그 한 자리를 지키려고 애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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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가수 이랑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정근기자

2015년 시작된 ‘페미니즘 리부트’는 그를 달라지게 한 계기가 됐다. 당시 온라인을 중심으로 여성들이 일상 속 차별과 성폭력 경험을 공유하며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 담론이 확산됐다. 이랑 역시 그동안 여성으로서 그간 겪은 수많은 차별과 성적 수치심,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서 남성중심 세계에 맞추려했던 시간들을 돌아보게 됐다. 이랑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여성 아티스트들을 찾았고 오지은, 슬릭, 신승은 등 여성 창작자들과 함께 의지하며 자신의 길을 닦아나갔다.

그는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뒤 잃는 것도 생겼다고 했다. 주요 언론, 기업과의 협업이다. 거절을 마주할 때면 ‘돈과 권력이 앞다퉈 날 꺼리는구나. 내가 시한폭탄도 아닌데 뭐가 그리 무섭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뭔가를 바꿀 수 있는 이들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사람을 기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좀 더 나이가 들어 음악계에서 자리매김을 하면 어려움을 겪는 아티스트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은 이 같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랑은 다음 음반 작업으로 ‘민요’를 준비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민요는 ‘아리랑’이나 국악 같은 전통 음악의 형식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이다.

“3집 <늑대가 나타났다>처럼 민중가요가 저항의 현장에서 불리는 노래라면 민요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툭툭 던지는 말 같아요.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을 단순한 멜로디에 얹어서 누구라도 부를 수 있는 노래요.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과 약자들의 한 마디씩을 엮어 현대의 민요를 만들고 싶습니다.”

▼ 서현희 기자 h2@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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