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는 덜고 소부장은 담고'…외국인 반도체 리밸런싱 시작
LG이노텍·DB하이텍·ISC·리노공업 집중 매수…AI 공급망으로 투자 이동
빅테크 실적이 다음 변수…AI 투자 지속 땐 대형주 수급 재유입 가능성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반도체 투자 전략이 달라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대형주 비중을 줄이는 대신 인공지능(AI) 반도체 공급망을 구성하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으로 자금을 옮기는 '반도체 리밸런싱'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 삼성전자·하이닉스 11조원 넘게 순매도
27일 한국거래소와 넥스트레이드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달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12조8897억원을 순매도했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만 10조9000억원이 넘는 매도 물량이 나왔다. SK하이닉스는 약 6조478억원으로 순매도 1위에 올랐고 삼성전자도 4조8790억원이 순매도됐다.
시장에서는 외국인의 매도세를 반도체 업황 악화보다 차익실현과 포트폴리오 재조정 성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메모리 반도체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 데다 역대급 실적 기대가 상당 부분 주가에 선반영됐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이익을 실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메모리 업황이 올해를 정점으로 둔화할 수 있다는 '피크아웃' 우려도 대형주 비중 축소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 반도체 버린 게 아니라 AI 공급망으로 이동
반면 외국인 자금은 반도체 업종을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 AI 공급망으로 이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종목이 LG이노텍과 DB하이텍이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LG이노텍을 7859억원어치 순매수했고 DB하이텍도 3296억원을 사들였다. 반도체 테스트 소켓 업체인 리노공업(2590억원)과 ISC(2384억원) 역시 순매수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기업은 AI 서버와 고성능 반도체 수요 확대의 직접적인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LG이노텍은 AI 반도체용 FC-BGA 기판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DB하이텍은 데이터센터 전력 효율을 높이는 전력반도체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리노공업과 ISC는 AI 반도체 성능 검증에 필요한 테스트 소켓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업체들이다.
◆ 낙폭은 컸지만 실적은 개선
외국인이 소부장 종목으로 눈을 돌린 가장 큰 이유는 밸류에이션 매력이다.
주가 조정폭만 보면 소부장 기업들의 낙폭이 메모리 대형주보다 훨씬 컸다. 삼성전자는 고점 대비 약 32%, SK하이닉스는 39% 하락한 반면 LG이노텍은 52주 최고가 대비 65% 넘게 떨어졌다. DB하이텍은 57%, ISC는 46%, 리노공업은 44%가량 하락하며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크게 낮아졌다.
반면 실적 전망은 개선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LG이노텍의 올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약 78%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ISC는 69%, DB하이텍은 32%, 리노공업은 23% 안팎의 이익 증가가 전망된다. AI 투자 확대가 이어지는 가운데 실적 개선과 주가 조정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외국인들이 저가 매수 기회로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 빅테크 실적이 향후 수급 좌우
다만 반도체 투자의 무게중심이 다시 메모리 대형주로 이동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번 주 예정된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애플,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 실적과 AI 설비투자(CAPEX) 계획이 핵심 변수다. 글로벌 AI 투자 확대 기조가 재확인될 경우 낙폭이 컸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외국인 자금이 다시 유입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외국인 수급은 반도체를 떠나는 움직임이라기보다 업종 내부에서 투자 축을 메모리에서 AI 공급망으로 옮기는 과정"이라며 "빅테크 투자 기조가 유지된다면 메모리와 소부장을 오가는 순환매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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