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밖 생존교양] 북중미 월드컵으로 읽는 국제정치
[EBS 뉴스]
서현아 앵커
학교 밖 세상을 읽는 힘을 키우는 '교실 밖 생존교양' 시간입니다.
전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은 스포츠를 넘어, 국가 간 보이지 않는 힘이 맞서는 외교 무대이기도 합니다.
사상 최대 규모로 열린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뜨거운 함성 뒤로 입국 장벽과 기후위기 같은 국제사회의 현실이 드러났는데요.
월드컵을 통해 읽는 국제정치의 이면, 승지홍 경기 풍산고등학교 선생님과 이야기 나눠봅니다.
네, 우리가 월드컵을 보면서 멋진 골과 승부에 집중을 하기 마련인데, 그런데 그라운드에 설 기회조차 선수의 실력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승지홍 교사 / 경기 풍산고등학교
네, 월드컵은 축구로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 축제를 넘어, 국가 간의 보이지 않는 힘과 국경의 벽이 작동하는 거대한 외교 무대이기도 합니다.
이번 대회는 사상 처음으로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개국이 공동으로 개최하고 본선 참가국도 48개국으로 늘리면서 '모두의 축제'를 내세웠죠.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습니다.
미국의 깐깐한 입국 규제 탓에 일부 국가의 팬들과 관계자들은 축제를 온전히 즐기기조차 어려웠거든요.
이란 대표팀은 미국 입국에 제한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멕시코 티후아나를 거점으로 삼아야 했고, 일부 지원 인력은 비자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라크의 핵심 공격수 아이멘 후세인은 시카고 공항에서 약 7시간 동안 별도의 조사를 받았고, 소말리아 출신 심판은 미국 입국이 거부돼 꿈에 그리던 월드컵 무대에 서지 못했습니다.
겉으로는 모두에게 열린 축제 같았지만, 사실상 그 문턱을 넘을 수 있는지는 개최국의 입국 정책과 정치적 판단에 따라 달라진 셈입니다.
서현아 앵커
네, 사실 사상 최대 규모로 '모두의 월드컵'을 표방했었는데 국경의 장벽이 여전히 높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인종과 또 이주 배경을 둘러싼 갈등도 있었죠?
승지홍 교사 / 경기 풍산고등학교
그렇습니다.
월드컵의 무대는 넓어졌지만, 역설적으로 '누가 진짜 국민인가'를 따지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프랑스 대표팀을 향해 선수들의 실력은 뛰어나지만 진정한 프랑스인은 없다는 취지로 깎아내린 마리아노 라호이 전 스페인 전 총리의 발언이 대표적입니다.
아프리카계나 카리브계 이민자 가정 출신 선수들을 프랑스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인종차별적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죠.
이에 프랑스와 스페인 정치권은 피부색이나 혈통으로 국적과 정체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선수들이 하나의 팀을 이루는 다양성이야말로 프랑스 공동체를 강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반박도 이어졌습니다.
이번 논란은 월드컵이 국가 대항전을 넘어, 혈통을 앞세운 배타적 민족주의와 다양성을 포용하려는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정치적 공간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서현아 앵커
이번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했던 굉장히 작은 섬나라들도 화제가 됐습니다.
이 선수들에게는 국가의 정체성을 알리는 무대이기도 했는데 동시에 이 나라들이 또 기후위기와도 싸우고 있다고요?
승지홍 교사 / 경기 풍산고등학교
저도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이 나라들을 제대로 처음 들여다보게 되었는데요.
지도를 펼쳐보면 퀴라소는 남미 베네수엘라 북쪽 카리브해에 자리한 작은 섬으로, 네덜란드 왕국을 구성하는 자치국입니다.
카보베르데는 서아프리카 세네갈 앞바다의 대서양에 위치한 여러 화산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고요.
이렇게 우리에게는 이름조차 낯선 두 나라는 이번 월드컵 본선에서는 세계적인 강호들과 당당히 맞섰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기후 위기로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생존의 문제와 맞서고 있습니다.
이들 섬 지역은 해수면 상승과 해안 침식은 물론, 가뭄과 물 부족, 집중호우와 홍수 같은 복합적인 기후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최근 방글라데시에서도 기록적인 폭우와 산사태로 100만 명이 넘는 주민이 고립되고, 로힝야 난민촌에서도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발생했죠.
우리가 여기서 꼭 눈여겨봐야 할 개념이 바로 '기후 부정의(Climate Injustice)'입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성장한 부유한 국가와 계층의 책임은 큰데, 정작 더 가혹한 피해는 탄소 배출 책임이 적고 대응 능력도 부족한 국가와 취약계층에 집중되는 불평등한 현상입니다.
기후 위기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닥쳐오는 자연재해가 아닙니다.
풍요와 편리함을 더 많이 누린 쪽에 책임이 쌓인 반면, 그 피해는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월드컵에 나선 작은 나라들의 눈부신 도전은 스포츠의 감동에 머물지 않습니다.
기후 위기에 더 큰 책임이 있는 나라가 탄소 배출을 더 많이 줄이고, 피해를 크게 입은 나라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절박한 외침이기도 합니다.
서현아 앵커
네, 기후위기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점이 있었네요.
그렇다면 우리 학생들은 월드컵을 보면서 승패와 국가 이름을 넘어서 국제 정치의 관점에서는 어떤 질문을 던져볼 수가 있을까요?
승지홍 교사 / 경기 풍산고등학교
지금 우리 아이들이 생활하는 교실은 다양한 문화와 배경이 만나는 작은 지구촌이자, 또 하나의 월드컵 무대입니다.
학생들에게 퀴라소나 카보베르데를 그저 '월드컵에서 만난 낯선 나라' 정도로 스쳐 보내지 말자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에 환호하는 것을 넘어,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는지 한 걸음 더 관심을 가져보자는 거죠.
우리가 매일 쓰는 전기나 무심코 누리는 편리함이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삶의 터전과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 일상의 선택이 세계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돌아보는 것, 그 지점에서 지식을 삶과 연결하는 공부가 시작됩니다.
왜 어떤 나라는 기후 재난에 더 취약한지, 이러한 불평등한 현실을 만든 원인과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를 차분히 짚어보아야 합니다.
경기의 승패만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라운드 뒤에 숨은 국제 정치의 힘겨루기와 구조적 불평등까지 읽어내는 '세상을 깊게 읽는 눈'을 키워갔으면 좋겠습니다.
서현아 앵커
네, 세계가 뚝뚝 떨어져 있는 게 아니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걸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고 말씀해 주신 건데요.
그렇다면 이런 안목을 길러주기 위해서 가정에서는 어떤 일을 할 수가 있을까요?
승지홍 교사 / 경기 풍산고등학교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가 불확실한 미래에서 뒤처지지 않기를 바라며 성적과 진학을 걱정하십니다.
물론 학업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시대는 지식을 채우는 것만큼이나, 나와 다른 사람과 기꺼이 소통하고 함께 살아가는 포용력이 아이의 미래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량이 될 것입니다.
저출생과 전 지구적 인구 이동이 계속되는 사회에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며 소통하는 능력은 우리 아이가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 한마디와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배웁니다.
이주민이나 다른 문화를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앞으로 우리와 함께 일상을 가꾸어 갈 이웃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합니다.
뉴스 속 낯선 나라와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한 번 더 헤아려 보는 부모님의 사려 깊은 태도 자체만으로도 아이는 타인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법을 배웁니다.
아이의 삶에 가장 깊이 자리 잡는 생존교양은, 부모가 일상에서 들려주고 보여주는 따뜻한 존중의 언어와 태도입니다.
서현아 앵커
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 수용하는 것.
그것이 아마도 이 같은 글로벌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생존 교양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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