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았어, 계속 나아가자”…신지은, 3737일 땀방울의 결실
9언더로 2위 김아림 2타차 제쳐
한국 선수 3개 대회 연속 우승컵
2016년 첫 우승 후 중위권 맴돌아
긴 슬럼프에도 포기 않고 훈련만
“잊혀지기 싫다” 되뇌며 정상 탈환

신지은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선수다. 2011년 데뷔해 한 번도 시즌 상금 랭킹 20위 이내에 들지 못했다. 대부분 30~60위권을 맴돌았다. 하지만 16년 동안 한 번도 투어 카드를 잃은 적은 없다. 그 꾸준함에 대한 보상을 ‘골프의 고향’ 스코틀랜드에서 받았다.
신지은은 26일(현지 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노스 에어셔의 던도널드 링크스(파72)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ISPS 한다 스코틀랜드 여자오픈(총상금 200만 달러)에서 합계 9언더파 281타로 정상에 올랐다. 2위 김아림을 2타 차로 따돌렸다. 우승 상금은 30만 달러(약 4억 4000만 원).
2016년 5월 볼론티어스 오브 아메리카 텍사스 슛아웃에서 LPGA 투어 생애 첫 우승을 거둔 이후 10년 2개월 25일, 날짜로는 3737일 만에 통산 2승째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80년 이후 LPGA 투어에서 10년 이상 격차를 두고 우승한 선수는 12년 3개월 만에 우승한 미국의 비키 퍼건(1984년 4월 S&H 골프 클래식~1996년 7월 미켈롭 라이트 허트랜드 클래식)과 더불어 신지은이 두 번째다.
신지은의 우승으로 올 시즌 한국 여자 선수들은 LPGA 투어에서 이미향 1승(블루베이 LPGA), 김효주 2승(포티넷 파운더스컵, 포드 챔피언십), 유해란 2승(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을 합쳐 6승을 합작했다. 유해란의 메이저 2연승에 이은 3개 대회 연속 우승이다. 올해 남녀 스코틀랜드 오픈에서 한국 선수가 모두 우승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앞서 2주 전 김주형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제네시스 스코틀랜드 오픈을 제패했다.

신지은은 199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9세 때인 2001년 가족과 함께 아버지 친척이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 있던 8세 때 처음 골프채를 잡았지만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 건 미국으로 건너간 후부터였다. 2006년 US 걸스 주니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낸 신지은은 2010년 LPGA 2부 투어를 거쳐 2011년부터 LPGA 투어에 합류했다. 한때 라면을 워낙 좋아해 스스로 ‘라면 킬러’라고 부르기도 했다.
첫 우승까지도 5년이 걸렸다. 2016년 LPGA 우승 두 달 전 미국의 한 대회장에서 기자와 만난 신지은은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미끄러지다 결국 팬들에게서 잊혀지는 선수들을 많이 봐 왔다”면서 “나는 그렇게 잊히기는 게 정말 싫다”고 했다. 그리고 두 달 후에 기어코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또 다시 긴 침묵의 시간, 무려 10년이 흘렀다. 신지은은 이번 여자 스코틀랜드 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투어 8~12년 차쯤 무척 힘들었다. 목표나 동기가 뭔지 알 수 없어 슬럼프를 겪었다”고 속마음을 전했다.
신지은은 우승 갈증이 이어진 10년을 되돌아보며 코로나19 시기를 중요한 변화 시점으로 꼽았다. 당시 인스타그램에서 ‘취중 라이브 방송’도 해봤다는 신지은은 “6개월 동안 직업이 없는 상태로 지내면서 프로 골퍼가 아닌 삶이 어떤 건지 느꼈다. 내가 잘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지 못하는 건 괴로웠다”면서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이후 그 불꽃을 다시 찾아서 정말 다행”이라며 “다시 우승하고자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했는데, 이번 주에 그 일이 일어나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이날 우승을 확정한 후 신지은은 김효주, 이미향, 전인지를 비롯한 동료들의 축하를 받은 뒤 만감이 교차하는 눈물을 쏟았다. 이미향의 아버지는 “실컷 울어도 돼”라고 했다. 신지은은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묵묵히 나를 기다리고 믿어줬는지 실감 나 눈물이 났다”고 했다.
신지은은 ‘힘들 때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라는 질문엔 “계속 나아가라. 세상이 끝난 건 아니니까”라고 했다.
김세영 기자 sygolf@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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