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38도 폭염 속 의성 빙계계곡 가보니…바위 틈엔 ‘겨울’
물놀이·야영, 지정구역만 허용…호우 때 출입 통제

차 문을 열자마자 열기가 얼굴을 덮쳤다. 오후의 아스팔트는 이미 달궈질 대로 달궈져 있었고, 차량 보닛 위로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26일 오후, 경북 의성군 춘산면 빙계계곡 주차장. 계곡 입구 전광판은 34도를 웃도는 기온을 무심하게 표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몇 십 걸음 안쪽, 거대한 바위가 맞물린 좁은 틈 앞에서 공기는 돌변했다.
바위 틈 사이로 손을 내밀자 한여름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찬 기운이 닿았다.
구미 선산에서 방문한 오은주(49) 씨는 "오는 길에 차량 온도계가 38도를 가리켰다. 바위 틈에서 찬바람이 나온다고 해서 직접 보고 싶었다"면서 빙혈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바위가 맞물린 좁은 입구 앞에서 방문객들은 걸음을 늦췄다. 얼굴을 가까이 대거나 손을 뻗어 냉기를 확인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빙계계곡의 빙혈은 자연이 수천만 년에 걸쳐 설계한 냉방장치다. 약 7000만 년 전 금성산 화산활동이 만들어낸 암반 지형 위에, 겨울철 바위 내부에 갇혀 있던 차가운 공기가 여름이 되면 틈을 통해 밖으로 흘러나온다. 차가운 공기가 아래로 가라앉는 성질과 겹겹이 쌓인 암석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추정된다.
바위 틈에서 공기가 나오는 현상을 통틀어 풍혈이라 하고, 그 중 찬 공기가 나오면 빙혈, 따뜻한 공기가 나오면 온혈로 구분한다. 다만 계절에 따라 냉풍과 온풍이 뚜렷하게 교차하는 정확한 원인은 아직 과학적으로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자연은 여전히 설명보다 앞서 있다.

대구에서 들렀다는 60대 부부도 빙혈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와보니까 정말 좋다"고 남편이 말했다. "바위 틈에서 찬바람이 나오는 게 신기했고, 생각보다 훨씬 시원했어요." 겨울에는 반대로 따뜻한 공기가 나온다는 설명에 부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처음 알았네요." 웃음이 바위 틈 사이로 스며들었다. 부부는 빙혈을 나온 뒤 계곡 옆 돗자리로 조용히 돌아갔다.
빙혈 아래 무료 자동차야영장에는 승용차와 SUV가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차량 옆으로는 소형 텐트와 그늘막이 펼쳐졌고, 나무 아래에서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일부 빈자리가 남아 극심한 혼잡은 아니었지만, 물놀이장과 빙혈을 오가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맞은편 지정 물놀이 구역에서는 아이들이 튜브를 끌고 얕은 계곡물을 오갔다. 어른들은 물가나 나무 그늘에 앉아 아이들을 지켜봤다.
물놀이장 안전요원 강성열(68) 씨는 "빙혈만 시원한 게 아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바위 틈 곳곳에서 찬바람이 나온다"며 "금요일 저녁부터 방문객이 늘기 시작해서 주말에는 상류까지 사람들이 많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계곡 입구 안내도에는 빙혈과 풍혈, 빙계서원, 빙산사지 오층석탑이 탐방로를 따라 표시돼 있었다. 7000만 년의 지질과 수백 년의 역사가 같은 지도 위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물놀이장 입구에는 구명조끼 착용을 당부하는 현수막과 어린이 추락 위험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안전요원은 7·8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근무하며, 야간 물놀이는 금지된다. 빙혈 주변에는 음식물 반입과 취사·야영·음주를 금지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무료 야영장 세 곳은 선착순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야영과 물놀이는 지정구역에서만 허용된다. 화재 예방을 위해 숯과 장작도 쓸 수 없다.
강 안전요원은 "최근 이곳은 큰 비 피해는 없었지만, 집중호우로 수위가 급격히 높아지면 이용객을 대피시키고 출입을 통제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연의 서늘함을 찾아온 사람들 곁에서, 자연의 위험을 경계하는 눈이 하루 종일 계곡을 살피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물놀이를 마친 가족들은 텐트가 있는 그늘로 돌아갔다. 새로 도착한 방문객들은 안내도를 살핀 뒤 빙혈로 향했다. 38도의 여름 한복판에서, 사람들을 계곡 안쪽으로 이끈 것은 물만이 아니었다. 7000만 년 전 화산이 빚어낸 바위 속에서, 겨울이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