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호프를 알아보자’⑤ 황정민은 왜 경찰서에 물고기 그림을 걸었나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222번째 레터는 ‘호프를 알아보자’ 5편입니다. 지난번 나홍진 감독님 인터뷰할 때 “‘호프’에 성경 요소를 보이지 않게 많이 넣었다”고 하셨거든요. 그거 찾아보려고 자꾸 보고, 자꾸 보다 그만 호며들고 말았습니다(호프에 스며들었다는 말씀). 뭘 많이 넣어놨을까, 영화 주제와 어떻게 연결될까 나름대로 찾아봤는데, 칼뱅, 황소, 물고기, 십자가, 베드로, 가롯 유다, 목수에 대한 제 해석을 말씀드려볼까 해요. 기독교 잘 몰라서, 학부에서 종교학 전공한 후배 원선우군(저희 신문 유럽특파원)과 베프 JH의 조언을 많이 받았습니다.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의 경찰서에는 왜 그렇게 물고기 그림이 많이 걸려있을까요. 이하 전부 제 생각이라 반박시 님말이 맞습니다. 스포 있습니다.

제가 앞서 ‘호프를 알아보자’ 4편 ‘쿠얼의 함선은 왜 침몰했나’에서 엔딩 대사에 갑작스럽게 언급되는 쿠얼이 곧 신(God, 神)이라고 말씀드렸는데(감독님 오피셜), 따라서 쿠얼의 아들인 칼리, 양배(음문석)의 총에 맞고 숨진 왕세자는 신의 아들이 됩니다. 신의 아들이 과연 부활할 수 있을지가 ‘호프’ 후속편의 중심이 될텐데(꼭 후속편을!) 인터뷰 때 감독님 워딩을 좀 더 말씀드리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그 순간엔 관객 여러분께서 찾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거예요. 이 영화가 관객 여러분들께서 정신없이 막 보다가 어느 순간 딱 끝나버렸어. 전함이 떨어져. 뭐야 이거.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는 너무 큰 비극을 어떻게 체험하느냐를 이 영화를 통해서 이런 느낌을 전달하려고 했던 목적도 있고요. 또 하나는 이 영화는 굉장히 기독교적인 영화라고 생각해요. 제가 실제로 너무나 단순화시키려고 했으니까 지당한 영화여야 하고, 되게 쉬운 이야기여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굉장히 성경 쪽에 있는 요소들을 많이 보이지 않게 넣었다라고 생각해요.”
감독님께서 “기독교적인 요소를 보이지 않게 많이 넣으셨다”고 하니 스치듯 들어간 것도 한 번 짚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칼뱅. 영화 오프닝에 범석(황정민)과 성기(조인성)가 함께 차를 타고 황소 사체가 널브러진 시골길에 도착합니다. 총 메고 있는 동네 청년들 보고 범석이 말을 걸어요. “총 멋있다. 너 이거 칼뱅이잖아?” “칼뱅총이에요. 신고한 거에요.” 많고 많은 총기 중에 칼뱅이 나오고, 굳이 그걸 언급하고. 저는 세계사 시간에 들었던 신학자 칼뱅이 생각났습니다. 칼뱅 신학의 상세한 교리는 모르겠으나 신학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니 “기독교적인 영화”라는 호프의 오프닝에 호명되기에 적절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냥 총기 중에 널리 알려져서 그럴 수도 있겠고요.
칼뱅은 스치듯 언급됐을 수 있겠으나 물고기는 정말 자주 등장합니다. 오프닝을 지나 마을에 온 범석은 초토화된 광경에 넋을 잃습니다. 쓰러진 주민, 그리고 옆에는 널브러진 물고기. 항구마을이다보니 물고기 있는 거야 자연스럽지만 물고기는 범석이 시신을 발견할 때마다 늘 옆에 나란히 있어요. 생선 파는 주민만 죽은 것도 아닐텐데 말이죠. 범석이 첫번째 외계인을 대면하기 직전에 그 어구 건물 앞에서 또 시신을 바라보는데 그 시신 옆에도 물고기가 있습니다. 이 컷을 굳이 넣고, 굳이 정성 들여 보여줍니다. 감독의 의도가 반영돼 있다고 보면, 그만큼 물고기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짐작이.
그리고 경찰서에 걸린 그림들. 외계인 시신 해부를 마치고 범석이 경찰서로 돌아오는데 가만히 보시면 경찰서에 그림이 참 많이 걸려있어요. 제가 세보니 물고기 그림이 4점이나 있었습니다. 이 역시 항구마을이라 물고기가 흔해서 그런 것이다 할 수도 있지만, 기독교적인 의미 부여를 하자면, 물고기는 구원받아야 할 세상 사람들로도 볼 수 있을테니까요. 그럼 우리의 황정민, 아니 범석이는? 물고기를 낚다 사람을 낚게 된 어부, 베드로가 아닐까요. 제가 생각하는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부인한’ 가장 나약하고, 어떻게 보면 가장 인간적인 사도입니다. 범석이는 괴물(사실은 불쌍한 외계인)의 눈, 그의 눈물을 보고 “마음이 짠하더라”라고 한, ‘호프’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물이고요. 범석이 베드로의 역할이라면, 후속편에서 범석이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물고기만큼이나 황소 역시 사방에서 등장합니다. 가장 처음 토막나 등장하기도 하지만 파괴된 마을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있고, 범석이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는 입구를 떡하니 지키고 있습니다. 맥락상 없어도 아무 상관없을 거 같은데도 곳곳에 불쑥불쑥 등장하는 황소.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희생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호프 오프닝에서도 희생물로 나오죠. 제가 조언을 받았다고 서두에 말씀드린 저희 신문사 유럽특파원 원선우군은 “황소는 새로운 계약을 위한 희생 제물로 봉헌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수난을 되새기게 해준다”고 합니다(원선우 특파원은 ‘빠와 까를 미치게 하는 남자 나홍진’에서 ‘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곡성’에 여전히 의문이 많다고 하네요). ‘곡성’ 시작에 누가복음 언급된 게 기억하시는지요. 그 누가복음을 만든 누가의 상징동물이 황소이기도 하다고 선우가 알려줬습니다. 그저 시골 마을에 흔한 가축이라서 들어갔을 수도 있으나, 범석이 가는 곳마다 황소를 만나니 한 번 더 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네요.
나 감독님은 미술 전공이셔서 그런지 장면 이미지에도 성화 모티브를 꽤 넣지 않으셨나 싶은데, 엔딩에서 쿠얼 함선이 침몰할 때 온 세상에 불비가 내리듯 폭발 잔해가 날리는 장면은 옛 성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미지입니다.
또 하나, 제가 추측해본 이미지는 외계인 시신 해부 장면에서, 그 외계인이 눕혀진 모습에서 연상되는 십자가 도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외계인이 예수다, 이건 아니고요, 기독교적인 이미지를 살린 게 아닐까라는 짐작이 들었습니다. 저는 여러 번 봐도 무척 비슷해 보였는데, 미술팀이 놓다보니 우연히 그렇게 보이도록 놓여진 걸지도 모르지요.
범석이가 베드로다, 말씀드렸는데, 범석이가 베드로는 아닐 수 있어도, 양배가 가롯 유다가 아니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얘는 너무 딱이잖아요. 유다가 예수를 은화 30냥에 팔아넘겼는데, 양배는 “서울 사람들이 그러는데 80만원”이라며 신의 아들 칼리를 냉동시켰다가 팔아넘기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양배가 쓰는 충청도 사투리가 내내 귀에 꽂혔어요. 호포항은 아마도 고씨 집성촌인 것 같습니다. 범석이는 고범석, 성기는 고성기고요. 둘이 육촌이라고 범석이가 말하기도 하고. 그리고 영화 초반 성기 일당이 찾아간 축사, 사람의 잘린 팔이 나무에 걸려있던 축사, 기억하세요? 성기가 그걸 보고 이거 큰일났다 싶어서 전화를 하는데, 이때 범석, 성애(정호연)와 삼자 대화를 할 때 잠시 언급되거든요. 거기가 고씨 아저씨 축사라고. 마을 사람들이 죄다 고씨인 거죠. 그런 마을에서 유달리 튀는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양배는 외지인이 분명해 보입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의 12사도 중 유일하게 갈릴리가 아닌 유대 출신이었다는 설이 있다고 하니, 외지인 양배는 출신에서도 유사성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제일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은 양배의 직업이 목수라고 언급된 점입니다. 양배네 집은 누가 봐도 절대 목수의 집이 아니죠. 돼지 사체를 인테리어용으로 주렁주렁 매달아둔 음산하기 짝이 없는 그 집이 어떻게 목수의 집일수 있겠어요. 연쇄살인범 중에서도 상급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목수는 예수의 양아버지 요셉의 직업이었으니, 오히려 정반대인데, 왜 유다 역할인 양배를 목수라고 했을까요.
제 결론은, 양배가 목수라고 알려진 것 역시, 실제 사실과 다른 사람들의 믿음, 마치 해술 아저씨의 믿을 수 없는 진술처럼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는’ 믿음의 하나로 제시된 게 아닐까 합니다. 목수가 아닌데도 예를 들어 해술 아저씨처럼 마을의 썰을 담당하고 있는 누군가가 넘겨짚어 말한 게 잘못 전해지면서 사실로 굳어진 거죠. 세상의 많은 믿음이 그렇듯이.
원선우 특파원은 저의 설명을 듣고 “그런 설정은 기독교적 역설이라 할 수 있겠다”고 합니다. 저희 신문사 유럽특파원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데, 파리에선 ‘호프’가 11월에야 개봉한다네요. 그래서 제가 “네가 지금 그렇게 거기서 한가하게 기사나 쓸 때가 아니고, 어서 한국 들어와서 ‘호프’를 봐야한다”고 했습니다. “조속히 귀국하라”고 종용 중입니다.
원작자의 의도가 영화를 완성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겠지요. 영화의 진정한 완성은 관객이 만들어가는 것일테고, 나 감독님도 그걸 기대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꼭 후속편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번 레터 중얼중얼 보내드립니다. 과연 마베이요는 조르의 명대로 운명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다 같이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호프를 알아보자’는 한두편 정도 더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이번주 개봉하는 ‘스파이더맨’은 아마도 저와 같이 레터 쓰는 백수진 기자가 보내드릴 것 같고, 놀란 감독 ‘오디세이’는 쏟아지는 찬사와 약간 다른 제 의견을 보내드릴 것 같고, 이런 대작 속에 묻히기에 아까운 ‘어떻게 해야 했을까’도 준비하려고요. 그전에 ‘호프’를 4DX로 꼭 한 번 더 보고(자리가 없어요. 흙) 다음 레터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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