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일론 머스크의 '로봇 유토피아'

최근 신진서 9단과 바둑 인공지능(AI) 카타고의 대국은 신 9단의 승리로 끝났다. 10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기념한 이번 이벤트는 AI와 대등한 호선 형식이 아니라 신 9단이 두 점을 미리 얹고 시작하는 2점 접바둑으로 치러졌다. 신 9단은 카타고의 수를 철저하게 분석해 값진 승리를 이끌어냈다. 10년 전 인간에게 도전한 AI가 정면 승부를 펼쳤다면 지금은 AI와의 공존을 인정하면서 인간의 창의성을 더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이런 시너지 효과가 노동시장에서도 발휘될 수 있을까. 효율화와 생산성 제고로 대표되는 AI 시대에 가장 우려되는 것이 바로 일자리 문제다. 세계경제포럼은 향후 5년 내 전체 일자리 중 9200만 개가 소멸하고 1억7000만 개가 새로 창출된다는 비교적 긍정적인 예측을 내놨다. 하지만 늘어나는 일자리를 반드시 사람이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향후 10년간 전문가, 사무직 등 중·고숙련 직종에서 26만6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뺏어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AI와 로봇의 발달은 인간이 생계를 위해 노동해야 하는 단계를 넘어 직업이 하나의 취미가 되는 ‘포스트 워크 소사이어티’를 가져온다”는 주장도 있다. 이 같은 긍정론의 정점에 있는 이가 바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이다. 그는 이미 몇 년 전부터 AI와 로봇의 발전으로 생산성이 급증하면서 필요한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무한대로 공급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사람은 보편적 기본소득이 아니라 ‘보편적 고소득(UHI·Universal High Income)’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AI가 창출하는 막대한 부에 기반해 모든 사람에게 높은 수준의 생활이 무상으로 보장된다는 논리다. 그야말로 ‘AI 유토피아’다. 그것이 실현 가능할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과연 이런 사회가 바람직한 것인지조차 의문이 든다. 머스크가 말한 포스트 워크 소사이어티에서 노동의 주체는 AI와 로봇이고 인간은 그 과실을 향유하기만 하면 된다. 인간이 수행하는 일의 가치를 지나치게 평가절하한 게 아닌가 싶다.
오직 사람만이 상상하고 꿈꿀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고, 산업이 형성된다. 또 창의성을 바탕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결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일의 영역이 있다. 그 영역을 더 넓히는 것 역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노동을 통해 소득을 창출하고 세금을 내야만 국민의 주권이 보장된다. UHI는 국가와 자본이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이 될 우려도 작지 않다. 재집권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 초반 국가효율부 수장을 맡아 공무원을 대량 해고한 머스크의 전력을 고려하면 그가 말하는 포스트 워크 소사이어티는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그래서 도래하지 말아야 할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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