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에서 사회관계망으로]문화예술로 세대 초월한 교류…함께 살아가는 방법 배워

석현주 기자 2026. 7. 27. 00:2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울산 新노인복지정책 제언 - (1)독일 함부르크 KH2 프로젝트
노인복지·청소년 자원봉사·문화복지·세대 통합을 하나로 엮은 모델
노인-청년 문화예술 관람 매개 연결…2016년 이후 노인 1800명 참여
청소년봉사자 고령층 안전위해 노년층 이해 사전 이론·실습 등 훈련
150여 문화기관 무료입장권…학생엔 참여 증명서 대학 진학 가산점
▲ 독일 함부르크에서 펼쳐지는 KH2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소규모 그룹으로 연결돼 문화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울산은 한때 전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였다. 1980년대 급격한 산업화 속에 전국 각지의 청년 노동자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이 울산의 성장을 떠받쳤다. 그러나 40여년이 흐른 지금, 울산은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도시가 됐다. 당시 울산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베이비부머와 2차 베이비부머가 차례로 은퇴 연령에 진입하면서 울산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문제는 고령화의 속도와 성격이다. 울산은 제조업 중심의 압축성장을 겪었고, 현재는 압축고령화에 직면했다. 생산현장을 떠나는 인구는 빠르게 늘고, 이들을 돌보고 지원할 중장년층은 줄어드는 구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60~70대를 단순히 돌봄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도 한계가 있다. 지금의 신노년 세대는 산업 현장에서 숙련과 경험을 쌓고 지역 성장을 이끌어 온 세대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보호와 지원만이 아니라 관계, 역할, 배움, 참여의 기회다. 여가시설 확충과 공공형 노인일자리 중심의 정책만으로는 다양한 욕구를 담아내기 어렵다. 이에 본보는 국내외 우수사례를 통해 은퇴 세대가 지역사회 안에서 새로운 관계망을 만들고, 인생 2막을 주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울산형 신노년 정책의 방향을 모색한다.
 
▲ 조끼와 귀마개, 고글 등 '노화 체험' 훈련에 쓰이는 물품들.
▲ KH2 프로젝트에 참여할 청소년들이 '노화체험' 훈련을 하고 있다.

◇문화예술이 만든 세대 간 연결고리

지난 6월 독일 함부르크의 KH2(Kulturisten Hoch 2) 사무실 앞. 30℃를 훌쩍 넘긴 무더위 속에서 함부르크 고등학생 20여명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학생들은 10㎏에 달하는 조끼를 걸치고, 청력을 떨어뜨리는 귀마개와 시야를 흐리게 하는 고글을 착용했다. 평소라면 가볍게 오갔을 길이지만, 이날만큼은 휠체어와 지팡이에 의지해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노인의 신체 조건을 직접 체험하는 '노화 체험' 훈련 현장이었다.

이날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KH2 프로젝트에 참여할 청소년들의 워크숍이 열리는 날이었다. 2016년 함부르크에서 시작된 KH2는 고령층과 청소년을 문화예술 관람이라는 매개로 연결하는 사회문화 프로젝트다. 노인복지와 청소년 자원봉사, 문화복지, 세대통합을 하나로 엮은 모델로, 지역사회에서 고립되기 쉬운 고령층 곁에 같은 지역 청소년을 '동행자'로 세운 것이 핵심이다.

운영 방식은 단순하다. 경제적 여건이 어렵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쉬운 고령층과 16세 이상 고등학생을 1대1 또는 소규모 그룹으로 연결해 연극, 콘서트, 오페라, 영화, 전시 등 문화행사에 함께 참여하도록 한다. 공연장과 전시장으로 향하는 길, 객석에 나란히 앉아 작품을 보는 시간, 관람 후 나누는 짧은 대화가 자연스럽게 세대 간 관계를 만든다.

KH2는 함부르크에 거주하는 63세 이상 저소득 노인을 주요 참여 대상으로 안내하고 있으며, 현재 150개가 넘는 문화기관이 무료 입장권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1800명의 노인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 학생들이 노화 체험복을 착용한 채 거리로 나와 실습하고 있다.
▲ 고령층과 청소년을 문화예술 관람을 매개로 연결하는 KH2 프로젝트.

◇동행 전 먼저 배운 '노인의 속도'

청소년들은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지 않는다. KH2는 고령층의 안전과 신뢰를 위해 사전 교육과 노년 이해 훈련을 필수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교육은 이론 과정과 실습 과정으로 나뉘며, 훈련은 1년에 두 차례 진행된다. 마침 취재진이 방문한 날이 실습 교육일이었다.

학생들은 무거운 노화 체험복(Alterssimulationsanzug)을 착용한 채 실제 공공장소에 마련된 코스로 이동했다. 보행 보조기와 휠체어를 이용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경사로와 인도 턱, 좁은 통로를 지나며 노인의 이동이 얼마나 많은 제약을 받는지 직접 경험했다. 33℃를 넘는 폭염 속에서 몇 걸음 걷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실습에 참여한 학생 펠릭스(Felex)군은 "너무 덥고 힘들지만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 흥미롭다"며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하고 계속 신경 써야 하는 점이 어렵지만, 좋은 경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훈련을 마친 학생들은 앞으로 3차례에 걸쳐 노인과 함께 문화 관람에 참여할 예정이다. KH2가 참여 노인에게 공연·전시 티켓을 제공하면, 노인들은 단체 채팅방을 통해 동행할 청소년을 연결받을 수 있다.

모든 활동을 마친 학생들에게는 참여 증명서가 발급된다. 이 증명서는 대학 진학 과정에서 가산점 등으로 활용될 수 있어 청소년들의 참여를 이끄는 동력이 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에게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봉사 실적 이상의 의미였다. 낯선 세대의 몸과 속도, 불편을 직접 경험하고, 같은 도시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독일=석현주기자 hyunju021@ksilbo.co.kr

사진=송희영기자 nnshy@ksilbo.co.kr
 
▲ Silke busse 프로젝트 총괄

Silke busse 프로젝트 총괄 인터뷰
예술 관람후 공통 관심사로 소통
문화가 세대 연결하는 통로 역할

-문화예술을 세대 간 교류의 매개로 선택한 이유는.

"평소 젊은 세대와 노인이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두 세대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공통의 관심사를 찾기도 어렵다. 문화예술 관람은 이들에게 공통의 경험을 만들어준다. 같은 공연이나 전시를 본 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다. 문화가 세대를 연결하는 통로가 되는 셈이다."

-프로젝트 운영에서 학교와 문화기관, 자원봉사자, 지자체는 각각 어떤 역할을 하나.

"지자체로부터 일부 운영 지원금을 받고 있다. 파트너 문화기관들은 초청 티켓을 제공하고, KH2는 이를 노인 한 명당 2장씩 전달한다. 학교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청소년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운영은 정규직원과 파트타임 직원,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맡고 있다."

-고령층과 청소년 참여자는 어떤 절차를 거쳐 모집되나.

"청소년은 협력 학교를 통해 신청을 받는다. 참여경쟁이 아주 치열한 편은 아니며, 노인 참여 수요에 맞춰 학생 수를 조정해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해마다 새롭게 모집된다."

-고령층 참여자들이 KH2를 통해 얻는 변화는.

"노인들이 평소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교류할 기회를 얻기 쉽지 않다. KH2를 통해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이야기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또 공연이나 전시를 보고 싶어도 함께 갈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동행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