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국가 권력은 팽창하고, 국민은 위축되고
정부 기관, 잇따라 최고 수위 징벌
감시·단속 공무원도 파격 증원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볼 법한 일

“미국이 달라졌다는 걸 동맹이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한국도 달라졌다는 걸 미국은 모르는 것 같다. 쿠팡에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서는 역대 최고액인 6246억원의 과징금을 물린 것에 대해 백악관과 미 의회는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라고 주장한다. 이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국에서 벌어지는 국가와 개인, 정부와 민간의 관계 변화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선 최근 과징금 기록이 잇따라 경신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쿠팡에 과징금 처분을 내리기 22일 전 공정거래위원회는 제분업체 7개사에 담합 관련 과징금 처분으로는 역대 최고액인 6710억원을 부과했다. 그리고 2개월도 지나지 않은 지난 7일에는 전분·당업체 4개사에 담합 과징금 7476억원을 부과하며 그 기록을 또 갈아치웠다. 검찰은 한술 더 떴다. 4개 정유사가 26조원대 규모의 가격 담합을 했다고 지난 6일 밝혔다. 담합 규모를 감안하면 과징금이 2조원대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국가 기관들이 경쟁하듯 몽둥이를 휘두르고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해서 엄벌주의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걸리면 패가망신” “위반하면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영구 퇴출시키는 방안도 검토해야” 같은 표현으로 최고 수위 처벌을 주문했다. 공정위가 한 떡볶이 가맹점 본사의 부당 행위에 9억여 원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소식에 “법률이 허용하는 최대치로 부과한 게 맞느냐”고 확인까지 했을 정도다.
징벌 수위만 높이는 게 아니다. 단속을 담당할 조사관과 감독관을 파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공정위는 올해까지 404명을 증원하기로 했고, 노동부는 3000여 명인 근로감독관을 무려 800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국세청도 올 연말까지 체납관리단 인원을 1만명 뽑기로 했다. 애초 3년간 2000명 채용할 계획이었으나 이 대통령에게 “국세청장이 너무 소심하다”는 지적을 받고서다. 특별사법경찰관이 있는 기관은 특사경 규모와 권한을 속속 확대하고 있다.
담합, 개인정보 유출, 사업장 안전관리 부실, 체납을 단죄하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속 인력을 늘리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도 법 집행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개별 처분과 정책이 아니라 그것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다. 국가는 점점 더 많은 감시·단속 인력을 동원하고, 더 무거운 처벌을 내리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대해진 감시·감독기관은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민간을 더 자주, 더 심하게 들쑤셔 성과를 내려 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커진 권력은 원래 크기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징벌 만능, 엄벌주의는 사회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억누른다. ‘걸리면 망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과감한 도전을 하기는 어렵다. 기업은 혁신보다 법적 리스크를 먼저 따지고, 개인은 국가를 보호자가 아니라 감시자로 여기게 된다. 국가 권력의 눈치를 보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한국은 형벌 만능 국가라는 지적이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작년 8월 기준 우리나라 전체 법률 1686개 중 1069개에 형사처벌 규정이 있다. 처벌 조항은 1만1165개, 처벌 대상이 되는 행위는 무려 1만7355개에 달한다. 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온갖 행위를 빌미로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는 국가 권력을 법으로 제한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확대해온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는 변화는 이런 흐름에 역행한다. 국가 권력은 팽창하고 개인과 기업은 위축되고 있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불법 이민자 6만명 상륙’ 하루 만에 진정…스페인령 세우타 뒤흔든 난민 대란, 왜 벌어졌나
- 프로야구 부산·창원 경기, 폭염으로 취소
- “초고속 인터넷 쓰는데 다운로드 왜 느리지?”... 공유기 설정으로 속도 높이는 방법
- 경남 양산 ‘41.6도’ 찍었다... 사상 최고기온 기록, 하루 만에 재차 경신
- 국힘 “‘레버리지 ETF 참사’ 국정조사 추진… 김용범 경질해야”
- “사생활 보호 기능 빠져” “오히려 다행”... 갤폴드8 엇갈린 반응 왜?
- 양산 나흘째 40도 넘겨...사상 최고기온 또 경신할 듯
- “남대문시장 추억 새록새록”… 美대사, 발로 뛰며 ‘소프트 외교’
- 金 “명청대전 지옥문 닫아야” 鄭 “강력한 개혁” 宋 “유시민에 침묵 당대표 필요없어”
- 캣츠아이·코르티스, 빌보드 ‘21세 이하 리더’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