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갈 집 없다"… 경기 하남·의정부로 전세 찾아 삼만리[정비사업의 명과 암]
인근 대단지·빌라 전세매물 바닥
갈 곳 못 찾은 800여가구 발동동
외곽 떠밀리거나 반전세·월세행
세입자는 울며 겨자먹기식 영끌
5년내 서울 이주 18만가구 달해
전월세 대란에 임대차 대책 필요

(강동구 공인중개사 A씨)
26일 최근 이주를 시작한 서울 강동구 길동삼익파크아파트. 입구에 '이주 및 신탁 접수 안내' 표지판이 붙어 있지만 아직 이사를 간 조합원은 많지 않다. 단지에는 주차된 차들이 가득하고 입구 근처에 있는 1층 어린이집도 운영되는 모습이다. 단지에 붙어 있는 '임대 물건'을 자세히 보는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월세난에 임차인 일산 집 '영끌'
길동삼익파크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대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고 지하 4층~지상 35층 15개 동 아파트 1384가구로 탈바꿈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자진 이주기간은 11월 30일까지로 지난 1일부터 본격적인 이주를 시작했다.
이주가 시작됐지만 임차인과 소유주 모두 표정이 밝지는 않다. 올해 서울 전월세 물량이 크게 줄어든 데다 임차 가격이 급격히 오른 탓에 들어갈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1092가구 중 지금까지 집을 구해서 나간 사람은 200여가구로, 나머지 800가구가 살 집을 못 찾았거나 찾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인근 중개업소 설명이다.
실제로 네이버부동산 매물조회에 따르면 인근 대단지인 고덕주공9단지(1320가구)의 전세 매물은 한건도 없고, 더 큰 단지인 삼익그린맨션2차(2400가구)는 단 2건에 불과하다. 삼익그린맨션 2차의 전세 매물은 모두 전용 67㎡인데 각각 6억8000만원, 7억원을 제시했다. 길동삼익파크에서 이 금액을 맞출 수 있는 임차인은 지난 6월 30일 7억원에 전용 137㎡ 세입자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기도 일산, 의정부 등으로 아예 주택을 매수해서 나가는 세입자들도 있다. 강동구 한 공인중개사는 "강동구 빌라도 모아타운 선정 소문이 돌며 매매가가 1억~1억5000만원 가까이 올랐다"며 "그나마도 매물이 많지 않아 거주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유주들도 서울 외곽으로, 경기도로
소유주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인근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현재 길동삼익파크아파트 이주비 대출 규모는 대부분 가구별 2억~3억원가량 나온다. 하지만 이 금액으로는 주변 아파트는커녕 빌라도 겨우 들어가는 실정이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이주비 대출 규모에 맞춰 지역을 옮기는 사람이 많다"며 "서울 외곽은 물론 하남 등 경기도 지역까지도 수요가 높다"고 귀띔했다.
전세금, 보증금, 이사비 등 자금 자체가 없어 아예 이주 엄두를 못 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처음에는 전세 매물만 찾던 사람들도 이제 반전세, 월세 등까지 눈을 돌린다고 한다.
문제는 길동삼익파크아파트뿐 아니라 향후 이주를 앞두고 있는 대단지가 많이 남았다는 점이다. 2028년부터는 이주물량 규모가 말 그대로 '폭증'한다.
1000가구 이상 단지도 크게 늘어난다. 2028~2030년 이주를 앞둔 단지들 가운데 1000가구 이상인 곳은 각각 12곳, 15곳, 26곳으로 올해 7단지 대비 2~3배 이상 증가한다. 2028년 한 해에만 47년 된 강남구 '은마아파트'(4424가구), 관악구 '신림1'(4410가구), '잠실주공5단지'(3930가구) 등 3000가구가 넘는 '초대단지' 3곳의 이주가 예정돼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정비사업을 진행하는 곳 주변은 전월세난이 심각한 곳들이라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신축, 공급을 늘리는 정비사업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없도록 사각지대를 잘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kjh0109@fnnews.com 권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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