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현장]장윤기 사건의 경찰, ‘유구무언’ 사과 반복 않으려면

"조직의 명운을 걸고 수사하겠다."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23) 사건에 대한 홍석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의 공언이다. 부실수사 및 유착 의혹이 한꺼번에 불거지자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수본부장이 엄정 수사 의지를 밝힌 것이다.
경찰의 움직임은 빨랐다. 곧바로 경무관을 단장으로 하는 41명 규모의 특별수사단을 꾸려 진상 규명에 착수했다. 조직의 신뢰가 걸린 사안인 만큼 성역 없는 수사도 이어가고 있다.
처음 이 사건을 접했을 때만 해도 현직 경찰 아들의 끔찍한 범죄를 동료 경찰이 감싸준 사건으로 보였다. 책임은 몇몇 경찰관의 일탈과 유착에서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수사가 계속될수록 사건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의혹의 끝이 일선 수사팀을 넘어 경찰 수사의 사령탑인 국가수사본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윤기는 별다른 배경이 있는 범죄자가 아니었다. 경찰 지휘부가 개인적인 친분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보호해야 할 이유도 뚜렷하지 않다.
최근 제기되는 의혹의 핵심은 장윤기 개인을 지키려 했다는 데 있지 않다. 남양주 스토킹 살해 사건 이후 여성 대상 강력범죄에 대한 경찰의 부실 대응이 거센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같은 상황의 수사 실패가 드러나는 것을 조직 차원에서 부담스러워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사건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는 일부 경찰관의 일탈을 넘어 조직 운영 방식의 문제다.
경찰이 내놓은 재발 방지 대책도 이런 의혹 앞에서는 한계를 드러낸다. 친인척 사건 관리 강화와 순환인사, 감찰은 모두 개인적 유착을 막기 위한 처방이다.
순환인사만으로는 조직 보호 논리를 막을 수 없다. 친인척 사건을 별도로 관리한다고 해서 상급기관의 부당한 개입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누가 어떤 이유로 수사 방향에 영향을 미쳤는지 끝까지 추적할 수 있는 제도다.
수사를 국수본이 맡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국수본 관계자의 개입 여부가 수사 대상에 오른 상황에서 국수본이 스스로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하면 '셀프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수사 결과만큼이나 수사의 독립성과 투명성이 중요한 이유다.
물론 현재 제기된 모든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윗선의 지시가 실제로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목적과 판단에서 내려졌는지는 수사를 통해 규명돼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일부 수사관의 비위로 서둘러 마무리해서는 안 된다. 일선 수사팀의 부실수사와 정보 유출, 증거 미확보뿐 아니라 수사 방향이 바뀐 과정과 상급기관의 보고·지시 체계까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 조직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확인을 주저하는 순간, 특별수사팀을 출범시키며 내건 다짐은 공허한 구호로 남게 된다.
조직의 명운은 선언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조직에 가장 불리한 진실까지도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신뢰는 회복된다.
지금 국민이 기다리는 것은 장윤기 사건의 결론만이 아니다. 경찰 조직이 자기 자신도 예외 없이 수사할 수 있는 조직인지, 그 답을 기다리고 있다.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며 사과하는 일이 다시는 없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