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시사실이 30석 극장으로 변신…‘라라랜드’ 그 배급사가 서촌에 극장 연 이유

전지현 기자 2026. 7. 2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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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문화공간 ‘품’ 연 백명선 판씨네마 대표 인터뷰
직원 시사실, 30석 극장 겸 무대로 개조
영화·소규모 모임·공연·전시 등 다양한 무대 만들것
백명선 판씨네마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복합문화공간 ‘품’(POOM)에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서울 종로구 서촌에 새 문화공간이 들어서는 건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서촌에 지난 15일 정식 개관한 복합문화공간 ‘품’(POOM)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품은 <라라랜드>, <비긴 어게인>, <미나리> 등으로도 잘 알려진 수입배급사 판씨네마가 직원들의 내부 시사실로 쓰던 공간을 개조해 만든 곳이다. 30석으로 규모는 작지만, 판씨네마는 관객을 직접 만나는 영화관 겸 무대를 갖게 됐다.

“한때는 놀랍기만 했던 가상공간과 AI(인공지능)가 일상이 됐잖아요. 사람의 손길이 묻은 물리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이 지금의 제게 오히려 재미와 보람을 주더라고요.” 지난 20일 품에서 경향신문과 만난 백명선 판씨네마 대표가 말했다. 백 대표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개발자 출신으로 90년대 중반 국내 최초의 영화 정보 전문 웹사이트 ‘씨네서울’을 만들었다. 2003년 판씨네마를 창업한 초반에는 한국 영화 투자·제작에 관심을 가졌지만, 점차 외화 수입·배급 일을 전문으로 하게 됐다.

인터넷 공간에서 영화사로, 더 나아가 극장으로, 백 대표를 나아가게 한 이곳은 현실적인 사정에 낭만이 섞여 탄생했다. 한 층 아래 나뉘어 있던 사무실이 4층 시사실 옆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기왕 하는 공사, 공간을 더 잘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백 대표는 시사실에 방문해본 적 있는 이들이 “공간이 예쁘다”고 감탄하던 것에서 착안해 “손님을 초대하는 마음으로 공간을 운영해 보자”고 결심했다. 극장처럼 단을 나누고, 빨간 영화관 좌석을 시야각을 고려해 배치했다.

판씨네마 사무실과 복합문화공간 ‘품’이 위치한 서울 종로구 한 벽돌 건물의 전경. 이 건물 4층에 있는 품까지 안내하는 입간판이 서 있다. 전지현 기자
판씨네마 사무실과 같은 층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품’의 내부 전경. 김정근 선임기자

수입 외화가 멀티플렉스 극장에 오래 걸려 있지 못하는 시장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판씨네마가 20여 년간 한국에 들여온 외화는 총 180여 편. 매년 10편 내외를 국내에 선보이며 잘 버텨왔지만, “개봉까지 드는 비용은 그대로인데 크고 괜찮은 영화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사들이고, TVOD(건별 결제형) 시장은 거의 죽었다. 극장에서 첫 주 반응이 미진하면 그 후부터는 (관이 잡히지 않아) 흔적 없이 사라져 손해를 보는 상황”은 판씨네마를 비롯한 수입배급사들이 당면한 문제다.

백 대표는 “물론 고작 30석으로 멀티플렉스 좌석을 충당할 수는 없겠지만,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를 더 붙들어둘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공간을 알려야 하는 초반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판씨네마스러운’ 영화를 상영하겠지만, 다양성을 늘려갈 계획이다. 백 대표는 개봉관에 오래 걸리지 못해 ‘아까운 영화’로 지난 6월 개봉한 <리브 원 데이>와 2015년 개봉한 <청춘의 증언>을 꼽았다.

백명선 판씨네마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복합문화공간 품에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판씨네마는 영화팬들에게 “음악 영화를 많이 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다음 달 2일까지(수~토요일 운영) 대표 수입작 <라라랜드>·<비긴 어게인>과 재즈를 소재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 <블루 자이언트>, 록 밴드 퀸의 콘서트 실황 영화 <퀸 락 몬트리올> 등을 상영한다. 실험적인 일본 애니메이션 <천사의 알>(1985년작·오시이 마모루 감독) 4K 복원판을 올 하반기 개봉할 때에는 품과 사무실 사이 복도를 활용해 원화 전시회를 열 구상도 하고 있다. 상영 정보와 예매 안내는 자체 SNS 계정을 통해 알리고 있다.

백 대표는 “어디서든 영화를 보기 쉬워지면서, 요즘 관객들은 단순히 영화만 보는 게 아니라 ‘극장에 오는 것’까지도 특별한 경험이 될 때 만족하는 듯하다”고 봤다. 공간을 예쁘게 꾸미고, 상영작과 연계한 굿즈 패키지를 마련해 방문 자체가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신경 쓴 건 그래서다.

서울 종로구 복합문화공간 품에 마련된 대기공간의 모습. 김정근 선임기자

그는 “이전에는 관객이 익명의 집단처럼 여겨졌다면, 찾아오는 이들을 직접 보게 되니 ‘저마다의 즐거움과 슬픔을 지닌 개인’으로서의 관객을 실감하게 되더라”고 했다. “방문객들도 ‘<라라랜드>를 들여온 곳’이라는 막연한 감상보다는 ‘이런 사람들이 판씨네마에 있구나’라며 더 가깝게 느끼게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있다.

영화가 큰 축을 이루고 있지만, 소규모 모임과 공연 등 다목적 문화활동에도 열려 있다. 백 대표는 “무용 공연도 가능하도록 바닥 공간을 크게 두고 마루를 깔았다”며 “최근에는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열었다”고 했다. 미혼인 솔로들이 <라라랜드>를 본 이후 대화를 나누는 느슨한 이성 찾기 프로그램이나, 독서 모임과 영화 관람을 연계한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품이 판씨네마와 연계한 공간으로서만이 아닌, 복합문화공간으로 잘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백 대표는 “안 쓰던 공간이라고 치고, 너무 부담갖지는 않으려고 한다”면서도 “품만의 색깔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 공간에서 봤던 영화(나 무대)가 10년, 20년 후에 멋진 사진 속 한 장면처럼 기억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이상 기쁜 일은 없을 겁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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