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칼럼] 숫자보다 더 중요한 가치

"○○평가 1등급 획득!" "○○지역 ○○평가 1등"
의료기관이나 공공기관들 앞을 지나다 보면 자주 볼 수 있는 문구다. 우리 기관은 이 분야에서는 국가에서 인정받은 기관임을 홍보하는 내용인데, 가끔 필자는 우리가 너무 수치와 등수에 강박돼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어릴 적 필자는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한자를 접하게 됐다. 당시 주변 친구들 중에는 천자문을 어디까지 외워 본인이 한자를 몇 글자를 안다거나 천자문을 이미 다 외웠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필자 역시 그런 친구들에게 뒤지고 싶지 않아 글자를 빨리 더 많이 알고 싶어 천자문을 먼저 배우고 싶었지만 할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한자 하나 더 아는 것보다 한자를 통해 효와 예를 배우고 삶의 가치를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한자라고는 하늘 천, 땅 지밖에 모르던 나에게 명심보감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등교 전 새벽에 일어나 할아버지와 함께 명심보감을 읊고 그 구절의 뜻을 생각하며 필사를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싫고 힘든 날도 많았지만, 그 덕에 학창 시절 동안 한문 과목만은 자신이 있었다. 당시에는 할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중년이 된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한자는 글자마다 뜻을 가지고 있는 표의문자로 짧은 한 문장에도 많은 뜻이 표현될 수 있다. 결국 할아버지는 '한자'가 아니라 한자로 이루어진 텍스트, '한문'을 가르치신 것이다. 글의 의미와 가치를 깨우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할아버지의 교육 철학이었다. 덕분에 다른 친구들처럼 빠른 기간 동안 많은 글자를 깨우치지는 못했지만 문맥을 알고 뜻을 해석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서두에 언급했듯 의료기관은 실로 많은 평가 속에 살고 있다. 필자도 평가가 매우 중요하고 그 안에서 최고의 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평가를 한다는 것은 그 행위의 질을 관리하는 것이고 수준을 향상시키거나 또는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등위와 수치에만 연연하다 혹시 우리가 하는 일이 속이 빈 대나무처럼 내실 없이 위로만 뻗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반추해 봐야 한다. 평가 기준에 맞추기 위해 의미 없이 숫자만 충족시키다 보면 그 프로세스를 유지하기 어렵고, 결국 숫자 맞추기에만 급급해질 수 있다.
따라서 평가의 기준을 맞추기에 앞서 그것을 진행하는 이유와 의미를 생각하고 업무에 적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알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내실화 하는 데 있다. 1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견고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구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등위나 수치는 그 이후에 자연스레 도출될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아는 것, 그것이 우선이다.이소라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진료협력팀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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