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와 9500억달러 협력… 샌프란시스코 묘한 계산법

류재민 기자 2026. 7. 2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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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GPU 구매액까지 포함해 협력 규모 키웠나
‘파운드리 성과’ 낸 삼성도 세부 내용 공개 못해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더 램프 레스토랑에서 열린 글로벌 AI리더 만찬에서 참석자들이 다같이 건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최태원 SK그룹회장, 라니 보르카르 마이크로소프트 하드웨어 사장,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이재명 대통령, 혹 탄 브로드컴 CEO,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뉴스1

삼성전자와 SK그룹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글로벌 빅테크들과 향후 5년간 총 9500억달러(약 1390조원) 규모의 인공지능(AI) 반도체·인프라 협력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한국이 글로벌 AI 공급망의 핵심 국가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발표된 금액에는 한국 기업이 미국 빅테크에 반도체를 팔아 벌어들이는 돈과 반대로 미국산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을 사기 위해 지출하는 돈이 함께 집계됐다. 그리고 브로드컴·엔비디아를 제외하고는 기업별 공급·투자 규모도 공개되지 않아 “9500억달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산출됐느냐”는 의문은 여전하다.

정부가 발표한 9500억달러는 삼성전자와 브로드컴의 2000억달러, SK와 엔비디아의 5000억달러, SK와 마이크로소프트(MS)·앤트로픽·아마존웹서비스(AWS) 등 다른 빅테크의 약 2500억달러를 합친 금액이다. 현대차그룹도 엔비디아·웨이모·구글 딥마인드 등과 피지컬 AI 분야 협력 계획을 내놨지만 구체적인 금액은 발표하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브로드컴은 2030년까지 메모리와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 분야에서 2000억달러 이상 규모로 협력한다는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삼성전자가 브로드컴의 차세대 AI 가속기에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메모리를 공급하고, 브로드컴의 통신용 반도체 등 주요 제품을 2나노 이하 공정으로 생산해 패키징까지 맡는 내용이다. 삼성과 브로드컴이 기존에 해오던 메모리 거래를 파운드리(위탁 생산)와 패키징까지 확대해 장기 협력 체계로 격상한 것이다.

삼성이 메모리 중심에서 파운드리 사업으로 한층 더 확장한다는 뚜렷한 성과가 이번 딜에 반영됐다. 다만 삼성은 2000억달러 가운데 메모리 공급액과 파운드리·패키징 수주액이 각각 얼마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협약은 포괄적인 MOU여서 메모리와 파운드리 등의 세부 규모를 구체적으로 나눠 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브로드컴이 삼성에 2000억달러어치를 확정 발주했다기보다, 양사가 5년간 추진할 사업의 예상 규모를 하나의 숫자로 제시한 셈이다.

SK가 자체 발표한 엔비디아와의 협력 규모는 5000억달러 이상이다. SK텔레콤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와 AI 팩토리 플랫폼을 도입해 2027년부터 최대 2GW(기가와트) 규모의 AI 팩토리를 구축한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HBM 등 차세대 AI 메모리를 장기 공급하고, 양사가 메모리를 공동 개발·최적화하기로 했다. 두 회사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5000억달러 규모의 협력에는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메모리를 공급해 얻는 매출뿐 아니라, SK텔레콤이 엔비디아의 GPU와 시스템을 도입해 AI 팩토리를 짓는 SK의 투자도 포함됐다. 재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메모리를 엔비디아에 팔고, 또 엔비디아의 GPU와 시스템을 사오면서 전체 규모를 불려 발표하는 것은 최근 AI 업계의 부풀리기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나머지 2500억달러는 SK와 다른 글로벌 빅테크들의 협력을 묶어 제시된 금액으로, SK가 자체적으로 발표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대략적인 규모를 산정해 공개한 것이다. SK 측도 전체 규모가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고 확인했지만, 구체적인 기업별 자료는 공개하지 않았다.

SK하이닉스는 마이크로소프트(MS) 데이터센터에 AI 서버용 메모리를 중장기 공급하는 협력을 추진하고, SK텔레콤은 앤트로픽과 국내 GW급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 위한 MOU를 체결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와는 울산에서 진행 중인 AI 데이터센터 협력을 다른 국내 거점으로 넓히는 방안을 논의했고, 오픈AI와는 기존 메모리 공급·서남권 AI 데이터센터 파트너십의 후속 협의를 진행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글로벌 핵심 메모리 공급사가 한정된 상황에서 빅테크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부터 향후 수년간 메모리를 구매하는 것은 어느 정도 ‘예정된 거래’라는 지적도 나온다. SK 관계자는 “원래 엔비디아 등과 반도체, 데이터센터 관련해서 협력이 이어져 온 것은 맞다”면서도 “지금까지 글로벌 기업들과 진행하던 협력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공개된 적이 없어,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건 의미가 있다”고 했다.

최태원 회장은 “AI 계획은 만지면 만질수록 점점 커져 간다”며 “저희가 지금 만들었던 프로젝트라고 해서 발표하신 게 아마도 좀 작은 숫자가 되는 거 혹시 아닌가라는 저는 이런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오늘 이 자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는 것은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 게 그렇게 무모한 발표나 얘기는 아니었다”며 “꽤 현실적인 얘기를 현실에 바탕을 두고 이런 일들을 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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