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하늘에서 기록한 장흥, 남도의 역사 지리 [앵+글로 본 남도 세상]

김덕일 2026. 7. 2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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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
드론을 하늘로 띄워 올릴 때마다, 나는 땅에 두 발을 딛고 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거대한 진실과 마주하곤 한다. 장흥의 굽이치는 산세와 너른 들판, 리아스 해안이 만들어낸 지형의 패턴이 모니터 안으로 밀려들어 온다. 사진가의 시선으로 이 땅의 굴곡진 지형이 어떻게 민중의 치열한 역사와 맞물려 있는지 생각하며 기록으로 풀어본다.
 
동학농민혁명기념탑

드론을 띄워 탐진강 변을 따라 장흥 건산리 상공에 도달하면, 시야를 가득 채우는 너른 평야에 순간 숨이 탁 트입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석대들'이 동학농민혁명의 대표 전적지 가운데 하나(국가지정사적 제498호)임을 떠올리면, 이내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진다.

모니터로 내려다본 석대들은 은폐와 엄폐가 불가능한, 너무나도 완벽한 '개활지'이다. 1894년 12월, 동학농민군 장흥 지도자 이방언과 22세의 이소사로 전해지는 여성 지도자가 이끌었던 2~3만 명으로 추정되는 농민군은 바로 이 너른 들판에 집결했다. 하늘에서 보니 고지대를 장악한 관군과 일본군의 신식 무기 앞에 평야의 농민군이 얼마나 무방비하게 노출되었을지 그 뼈아픈 공간적 한계가 한눈에 읽힌다.

드론을 서남해안 쪽으로 돌려본다. 패배한 생존자들이 육상 저항을 포기하고 저 멀리 남해안 일대로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던 그 험난한 피신 길이 짐벌 너머로 펼쳐진다. 평등과 보국안민을 외치던 붉은 함성이 지형적 취약성 앞에 스러져간 그날의 비극이 모니터 위로 겹쳐 흐른다.
정남진 전망대와 앞바다
동경 126도 조형물

#절벽이 품어낸 부활의 요새, 회령진성

석대들에서 서남쪽 바다를 향해 이동하여 회진면에 도착한다. 화각을 높여 회령진성(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44호) 주위를 선회하다 보면, 아찔한 절벽과 급경사를 그대로 등지고 축조된 성벽의 견고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1597년 칠천량 해전에서 배설이 도망쳐 와 12척의 남은 전선을 보전했던 곳이 왜 하필 이곳이었는지,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완벽히 이해된다. 바다 쪽에서는 험준한 자연 지형에 가려 절묘하게 숨겨지는 천혜의 요새이다.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 장군이 8월 18일 이곳에 당도해 운명의 3일을 보냈던 흔적을 상상하며 하늘에서 호버링(제자리비행) 해본다.

장흥 주민들이 난파 직전의 판옥선을 수리하고, 어민들이 자신의 배를 군함처럼 위장하며 합심했던 그 뜨거운 생명력이 이 해안가에 서려 있는 듯하다. 절망의 끝에서 명량의 신화를 잉태한 바다를 드론의 렌즈로 가만히 내려다보며 밀려오는 뭉클한 감동이 있다.
회령진과 성터

마지막으로 관산읍 삼산리 해안가, 서울 광화문의 정남 방향에 있는 정남진 126 전망대로 간다.

화각을 높여 지상 10층(46m) 높이의 타워 주변을 득량만 일대의 다도해를 내려다보니, 한반도 대륙의 기운이 바다와 만나 웅장하게 교차하는 지리적 에너지가 렌즈를 통해 전해지는 듯하다.

화각을 전망대 진입로인 통일광장 쪽으로 부드럽게 낮추면, 바다를 등지고 선 4m 높이의 안중근 의사 동상이 렌즈 안으로 묵직하게 들어온다. 단지된 왼손으로 거대한 남쪽 바다를 향해을 당당하게 가리키는 동상의 모습은 상공에서 바라볼 때 그 비전이 더욱 거시적으로 들어온다.

'정남향'이라는 장소의 물리적 방향성이 동양 평화를 염원했던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정신과 이어져, 장흥이라는 공간이 단순한 땅끝이 아니라 세계를 향한 출발점임을 깨닫게 해주는 듯하다. 또한 수직으로 내려다본 한반도 지형, 126°E 선이 그어져 있다. 오늘 나는 장흥이 품은 역사의 맥박을 나만의 렌즈에 담고 돌아온다.

김덕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덕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