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만 하면 노랗게 뜬다고?"…K뷰티가 찾은 새 타깃은? [김기자의 알고리즘]
슈렉 떠올렸다면 오해…21호·23호는 옛말
"파데 유목민들 잡아라" 업계는 '언더톤' 주목
클린걸 열풍에 소비자는 '자연스러움' 관심

기존 파운데이션을 바르면 얼굴이 유독 붉거나 노랗게 뜨던 소비자들이 최근 '올리브톤'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뷰티업계도 피부 밝기뿐 아니라 바탕색까지 세분화한 제품을 내놓으며 이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커버력과 지속력 같은 기능만으로는 브랜드 간 차이를 만들기 어려워지자, 그동안 표준 색상에서 비껴나 있던 소비자의 불편을 새로운 수요로 끌어내는 모습이다.
◇ 21호도, 핑크도 안 맞던 유목민들…드디어 정착?
26일 업계에 따르면 에스쁘아는 최근 비벨벳 커버 쿠션에 21.5호 '밀키 올리브'와 23.5호 '페어 올리브'를 추가했다. 기존 포슬린, 아이보리, 베이지 등과 구분되는 올리브톤 전용 색상이다.
올리브톤은 피부가 애니메이션 캐릭터 '슈렉'처럼 초록색이라는 뜻이 아니다. 노란 기를 바탕으로 초록빛이나 회색빛이 은은하게 도는 피부를 가리킨다.
겉으로는 흔한 노란 피부처럼 보여도 옐로 베이스 제품을 바르면 얼굴이 지나치게 노랗거나 주황빛으로 변할 수 있다. 핑크 베이스를 쓰면 이번엔 얼굴만 붉게 뜨거나 목과 색이 따로 논다. 웜톤이나 쿨톤과 대립하는 별도 유형도 아니어서, 피부 바탕색의 방향에 따라 웜 올리브와 뉴트럴 올리브, 쿨 올리브로 다시 나뉜다.
국내 베이스 제품은 오랫동안 21호와 23호 등 밝기를 중심으로 구성돼 왔다. 소비자는 자신의 피부 밝기에 맞는 호수를 고른 뒤 핑크와 옐로, 뉴트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에 익숙했다. 이 기준으로는 맞는 색을 찾기 어려웠던 올리브톤 소비자는 파운데이션 여러 개를 섞거나 초록색, 보라색 등이 들어 있는 피부톤 보정 베이스용 화장품을 따로 사용했다.
VDL도 올리브톤 베이스 출시를 앞두고 "찐 올리브톤 모델" 모집에 나섰다. 기존 파운데이션을 바르면 붉거나 노랗게 뜨는 소비자를 직접 모집해 실제 피부에서 색상을 확인하려는 취지다.

◇ 해외에선 이미 익숙한 '올리브톤'
올리브톤은 해외 뷰티시장에서는 이미 익숙한 카테고리다. 해외에서는 피부 바탕색을 뜻하는 '언더톤'을 기준으로 파운데이션 색상을 나눈다.
표면 밝기가 같아도 아래에 깔린 붉은 기와 노란 기, 초록 기에 따라 발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글로벌 브랜드들은 같은 밝기의 피부도 골든과 피치, 뉴트럴, 로지, 올리브 등으로 세분화한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소속의 화장품 유통채널 세포라는 아예 '올리브 언더톤용 파운데이션'이라는 전용 카테고리 페이지를 별도로 운영하며 해당 언더톤에 맞는 제품을 따로 큐레이션했다.
세포라 PB 브랜드 '하우스랩스'는 같은 밝기의 피부도 골든과 피치, 뉴트럴, 로지, 올리브 등으로 언더톤을 세분화하고, 디올도 일부 파운데이션에 '웜 올리브' 색상을 별도로 출시했다.
쿠션, 파운데이션 등 국내 베이스 메이크업 시장은 그동안 판매량이 많은 21호와 23호 위주로 운영됐다. 색상을 늘리기보다 잘 팔리는 색에 집중하는 편이 생산과 재고 관리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K뷰티'의 판매 무대가 해외로 넓어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다양한 피부톤을 접한 국내 브랜드들이 해외에서 익숙한 색상 세분화 방식을 국내 제품에도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 잘 팔리는 21호 대신…뷰티업계가 '소수'에 주목한 까닭
뷰티업계가 올리브톤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포화된 베이스 메이크업 시장이 있다.
쿠션과 파운데이션 신제품은 매년 쏟아져 나왔다. 브랜드마다 커버력과 밀착력, 지속력, 광택을 앞세우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차이는 갈수록 줄고 있다. 기능을 하나 더 얹는 정도로는 기존 제품을 바꿀 이유를 만들기 어려워진 것이다.
반면 색상이 맞지 않는 것은 다르다. 제품을 바르는 순간 바로 드러난다. 얼굴이 붉거나 노랗게 뜨는 문제를 해결해주면 기존 제품과의 차이도 소비자가 곧바로 느낀다. 기능 경쟁을 이어가기보다 소외된 소비자의 불편을 정확히 겨냥하는 편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셈이다.
올리브톤 소비자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그러나 맞는 제품을 찾기 어렵다는 불만이 뚜렷하고 대체할 제품도 많지 않았다. 한 번 맞는 색을 찾은 소비자는 쉽게 다른 브랜드로 옮기지 않는다. 시장 규모는 작아도 구매 의사와 충성도가 높은 소비자군이 형성될 수 있다는 의미다.

◇ "나만 안 맞는 줄 알았는데"
소셜미디어는 흩어져 있던 올리브톤 소비자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었다.
과거에는 파운데이션 색상이 맞지 않아도 개인의 문제로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온라인에 발색 비교와 사용 후기가 쌓이면서 비슷한 불편을 겪어온 소비자들이 서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옐로 베이스는 너무 노랗고 핑크 베이스는 붉게 뜬다"는 경험이 반복해서 공유되자 올리브톤은 하나의 소비자군으로 떠올랐다.
최근 유행한 '클린 걸' 메이크업도 이런 흐름에 힘을 보탰다. 피부 결을 두껍게 가리거나 본래 피부색보다 밝게 하는 대신 자신의 피부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색으로 맑고 건강한 인상을 연출하려는 수요가 커진 것이다.
올리브톤 제품 역시 정해진 색상표에 피부를 맞추기보다 각자의 바탕색을 살리는 방향으로 출시됐다. 같은 21호라도 붉은 기와 노란 기, 초록 기에 따라 어울리는 색이 다르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소비자도 단순히 밝은 제품보다 '내 얼굴에 자연스럽게 붙는 색'을 찾기 시작했다.

◇ 포화된 시장, 소비자를 더 잘게 나눈다
과거에는 다수 소비자에게 무난하게 맞는 소수 제품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소비자도 자신의 피부를 21호와 23호, 웜톤과 쿨톤 정도로만 설명했다.
요즘은 다르다. 뉴트럴 웜, 여름 뮤트, 웜 올리브처럼 더 세밀한 유형으로 자신을 구분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고, 브랜드가 그 차이를 알아봐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소비자를 대규모로 끌어오기 어려워진 시장 상황도 이런 변화를 앞당겼다. 브랜드들은 기존 제품에 만족하지 못했던 소수 소비자를 찾아 나섰다.
작은 불편에 이름을 붙이고 이를 별도의 시장으로 키우는 전략이다. 올리브톤 전용 쿠션도 색상 몇 개를 추가하는 데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파운데이션과 컨실러, 색상 보정제는 물론 피부 진단 및 제품 추천 콘텐츠로도 확장할 수 있다.
수출 시장 확대 역시 색상 세분화를 재촉하고 있다. K뷰티 기업들이 다양한 국가와 인종의 소비자를 상대하면서 피부 밝기뿐 아니라 바탕색까지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해외에서 먼저 반응을 확인한 뒤 국내 소비자에게 맞는 밝기와 색상으로 다시 선보이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김희선 한경닷컴 기자 gimme_s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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