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 알고 봐도 3시간 '순삭'… 영화 '오디세이', 원작에서 뭘 바꿨길래
'트로이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 10년 귀향길
영웅 아닌, 성찰·속죄하는 인간의 고뇌 담아
여왕 페넬로페, 미녀 헬레네도 재정의
교차하는 서사, 압도적 비주얼로 몰입감 높여
※이 기사에는 '오디세이'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10년 동안 트로이의 성벽을 뚫지 못했던 그리스군. 이들은 철수하는 척하며 목마를 선물로 남기고, 목마를 성안에 들인 트로이를 함락시킨다.’ 이 유명한 트로이 전쟁 신화의 중심에는 오디세우스가 있다. 그는 트로이 목마 계책을 낸 지략가이자 그리스를 승리로 이끈 영웅이며, 전쟁 후 신들의 갖은 방해에도 고향 이타카에 귀환한 불굴의 왕이다. 우리가 알던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 속 그는 누구보다 지혜롭고 강인한 지도자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오디세이아’를 각색한 영화 ‘오디세이’는 우리가 상상한 적 없던, 오디세우스의 낯선 얼굴을 비춘다.
왕·왕비·미녀, 모든 것을 재정의하다
놀런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오디세이’가 지난 23일 언론시사회에서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 승리 후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10년간의 여정을 담은 이 영화는, 신화의 기본 골격을 유지한다. 귀향길에 오른 오디세우스(맷 데이먼) 일행은 식량을 구하러 간 섬에서 외눈박이 거인, 마녀, 거인족 군단 등을 만나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 거대한 풍랑에 휩쓸리는 등 갖은 고초를 겪는다.


그러나 신화와 달리, 오디세우스는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도 끝내 웃지 못한다. 전쟁이 남긴 폐허를 고통스럽게 직시하기 때문이다. 그는 목마를 선물로 위장한 자신의 계책이 실은 인간 사이의 신뢰를 깨버린 어리석은 속임수였음을 인정한다. 그리스군이 트로이에서 벌인 강간과 살육에 대한 책임, 자신의 명령을 따르다 목숨을 잃은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 역시 외면하지 않는다. 그는 영웅 대신, 부끄러움을 아는 한 명의 인간이 되길 택한다.
오디세우스가 왕좌를 비운 20년 동안 무법천지가 된 이타카에서 남편을 기다려온 페넬로페(앤 해서웨이)도 신화 속 왕비와는 다르다. 새 왕이 필요하다며 재혼을 강요하는 구혼자들에게 시달려 온 페넬로페는 말한다. 오랜 경험과 지식이 있는데도 여성은 왜 왕으로 인정하지 않느냐고.
트로이로 납치된 스파르타 왕비, 원작에서 금발 미녀로 묘사된 헬레네 배역을 흑인 배우 루피타 뇽오가 맡아 개봉 전 캐스팅 논란이 일었지만, 놀런의 오디세이 세계관에서는 조금의 이질감도 없다. 놀런 감독이 신화를, 영웅의 정의를 다시 썼기 때문이다.

전 세계 돌며 실물 크기 세트·소품 촬영

‘오디세이’는 세 시간 가까운(172분) 러닝타임 내내 긴장의 끈을 놓기 어렵다. '어떻게 결말을 아는 이야기에 이토록 몰입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서사적으로는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공간,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놀런 감독 특유의 비선형적 전개가 이야기의 리듬과 밀도를 한껏 끌어올린다. 시각적으로는 신화 속 장소를 환상적으로 재현한 자연 풍광이 관객을 압도한다. 제작진이 그리스와 모로코, 이탈리아, 아이슬란드, 스코틀랜드 등 세계 각지를 돌며 촬영한 공간들이다.
컴퓨터그래픽(CG) 사용을 최소화하고 실제 크기로 구현한 세트장과 소품은 생동감을 극대화한다. 제작진은 고대 그리스 선박을 실물 크기로 제작한 후 지중해 바다에 띄워 촬영하고, 폭풍우 장면은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초대형 수중 특수촬영 수조에서 대형 제트 엔진과 수포 분사기, 펌프를 동원해서 찍었다. 트로이 목마와 이타카 궁전 역시 실제 크기로 만들어서 촬영했다.


‘오디세이’는 아이맥스 70㎜ 필름 카메라로 전 분량을 촬영한 영화 역사상 첫 작품이기도 하다. 아이맥스 필름은 디지털 카메라의 3배가 넘는 해상도(약 18K)를 가진 '현존 최고 화질'이다. 하지만 국내 관객들이 보는 '오디세이'는 디지털 변환 버전이다. 아이맥스 70㎜ 필름 영사 시설을 갖춘 극장은 북미·유럽 등 전 세계 41개뿐으로, 한국에는 영사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해외에선 해당 극장으로 '원정 관람'을 떠나는 관객들도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화면 비율이 직사각형인 일반 상영관(2.39대 1)이 아닌 정사각형에 가까운(1.43대 1)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관람하면 공간의 밀도와 질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북미에서 17일 개봉한 ‘오디세이’는 개봉 첫 주 글로벌 흥행 수입 3억4,600만 달러를 기록하며 놀런 감독 역대 최고 글로벌 실적을 경신했다. 외신에선 “비주얼과 연출의 압도적인 승리”라는 평가가 많고, 영화 비평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선 평론가 지수 94%, 팝콘(관객)지수 97%로 호평받고 있다. 놀런 감독은 다음 달 3일 ‘오디세이’ 홍보를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다음 달 5일 개봉. 15세 관람가.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강남 집 한 채에 200억 공제"… 국세청장, 장특공 개편 촉구-경제ㅣ한국일보
- 유시민, 이 대통령 또 비판... "당대표는 대통령 부하가 아니다"-정치ㅣ한국일보
- 이효리, 요가원 개원 1년 만 돌연 사과… 수강생 향해 일침까지-문화ㅣ한국일보
- 홍준표, 한동훈 저격? "너 때문에 李 정권이 검찰 해체"-정치ㅣ한국일보
- '의원 줄세우기'는 옛말… 김민석·정청래·송영길 '소수 정예' 캠프 승부-정치ㅣ한국일보
- 애국 매수에 '돈쭐난' 모나미… 그래도 마냥 웃기 힘든 이유는?-경제ㅣ한국일보
- "밤마다 무섭다" 자살 유족이 건 전화… 아들 보내고 딸 같은 선생님 왔다-사회ㅣ한국일보
- '신천지 의혹' 꺼낸 김민석에 친청 "사퇴하라"… 거세지는 민주 계파 갈등-정치ㅣ한국일보
- 장동혁 “이재명 정권,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봐야 아는 자들”-정치ㅣ한국일보
- 최태원부터 이재용까지... '재벌가 이혼' 재산분할 사례 보니-사회ㅣ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