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서는 순간 온 몸을 감싸는 포근함…남양성모성지를 가다

이진구 기자 2026. 7. 26.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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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천주교 첫 성모 마리아 성지
마리오 보타 설계한 대성당 백미
30여년 걸쳐 조성된 묵주기도의 길
9월엔 손열음 공연 등 클래식 공연도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예배당. 설계를 맡은 마리오 보타는 대성당 설계과정을 담은 한 다큐멘터리에서 “물질적인 것을 넘어 인간의 영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건물을 짓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사진 텍스처 온 텍스처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혼자, 호젓하게, 뭔가 내면의 충만함을 느끼며 그냥 걷고 싶은…. 그런데 여행처럼 마음먹고 어딘가를 찾는 것은 좀 번거롭고, 그렇다고 동네 산책처럼 마냥 가벼운 것도 싫다. 가볍지 않은데 무겁지도 않고, 그리 짧지 않은데 또 길지도 않게 걸으며 ‘나’를 채울 수 있는 곳. 해가 참 좋았던 15일 늦은 오후, 현대건축의 거장 마리오 보타(Mario Botta)의 영혼이 담긴 경기 화성 남양성모성지를 찾았다.
남양성모성지 내 성모 상.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남양성모성지는 조선 후기 병인박해(1866~1873) 때 정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등 이름 없는 순교자들이 처형된 곳. 1983년 유해 발굴을 계기로 순교자 현양 대회와 성역화 사업이 시작됐으며, 1991년 한국 천주교 최초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돼 성모 마리아 성지로 선포됐다.
남양성모성지는 둥지 속 알처럼 작은 야산 골짜기 안에 숨어있다. 이 때문에 작은 시가지 안에 있으면서도 정문을 지나는 순간, 세속의 모습이 사라지고 마치 잘 가꿔진 전원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정문을 지나 가지런히 정돈된 잔디 정원을 따라 올라가면 그 끝에 대성당이 있고, 좌우로 명상과 산책 등을 할 수 있는 묵주기도 길, 십자가의 길 등이 나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그는 대성당 설계과정을 담은 한 다큐멘터리에서 “물질적인 것을 넘어 인간의 영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건물을 짓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사진 김용관

이곳의 백미는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대성당. 이탈리아 토리노 산토 볼토(Santo Volto) 성당, 프랑스 파리 근교 에브리(Evry) 대성당,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심발리스타 유대교 회당(Symbalista synagogue) 등이 그의 작품으로 국내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 삼성미술관, 서울 서초구 교보타워 등이 있다.
‘따뜻한 위로와 치유를 건네는 공간’이란 건축 정신처럼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온몸을 감싸는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 천창(天窓)에서 쏟아져 내리는 햇빛이 보타의 시그니처 재료인 붉은 벽돌과 부딪혀 따뜻한 느낌을 공간 전체에 퍼트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그는 대성당 설계과정을 담은 한 다큐멘터리에서 “물질적인 것을 넘어 인간의 영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건물을 짓고 싶었다”라고 말했다.사진 김용관

대성당을 나와 묵주기도 길을 걸었다. 대성당 앞 광장과 둘레 야산 숲길을 따라 지름 70cm 정도의 돌 묵주알 240개가 일정 간격으로 놓인 약 1km의 오솔길인데, 무려 30여 년에 걸쳐 조성됐다. 한알 한알 짚어 가며 묵상하며 걸으면 약 1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천천히 걷고 있는데, 저 앞에 함께 온 중년 여성 3명이 돌 위에 함께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었다. 곧 해 질 녘이라 그런 것일까? 문득 밀레의 ‘만종’이 떠오른다.
남양성모성지는 종교를 떠나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이기도 하다. 매년 성악, 앙상블, 오케스트라 등 클래식 공연이 열리고 있는데 올 9월에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공연(‘손열음의 피아니스트 사전’)이 열린다. 안내문을 보자마자 문의했는데, 이미 매진이었다.
묵주기도 길에 있는 대형 돌묵주. 사진 텍스처 온 텍스처

돌아오는 길. 걷는 것 외에는 딱히 뭘 한 것도 없는데, 마음이 부드럽게 가라앉은 것 같다. 사람을 품고자 한 건축의 힘일까? 종교를 떠나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위로와 치유, 감동을 받길 바라며 풀 하나, 꽃 하나, 벽돌 하나에도 온 정성을 쏟았던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하루였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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