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36도, 냉방 22도, 예고없는 폭우…도대체 뭘 입어야 하나요

도시의 여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바꾼다. 맑은 하늘 아래 땀을 쏟다가도 갑작스러운 소나기와 폭우를 만난다. 35도의 불볕더위가 달군 아스팔트에서는 숨이 턱 막히지만, 쇼핑몰 자동문을 통과하는 순간 냉기에 몸이 움츠러든다. 같은 지하철 객차 안에서도 누군가는 춥다고 옷깃을 여미고, 누군가는 덥다며 부채질을 한다. 한 도시 안에서도 서로 다른 여름이 공존하는 시대다.
폭염보다 무서운 ‘온도 차’...바뀌는 여름 패션 공식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에어컨을 꺼달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의 글이 논쟁을 불렀다. 찜통 같은 객차에서 냉방을 줄일 수 없다는 의견과 송풍구 아래는 추위로 고통스럽다는 반응이 맞섰다. 같은 공간, 같은 온도에서도 누군가에게는 폭염이고 누군가에게는 한겨울인 셈이다.
온도를 둘러싼 갈등은 회사에서도 반복된다. 한 TV 프로그램에서는 낮은 냉방 온도로 퇴사를 고민하는 직장인의 사연이 소개됐고, 온라인에서는 “28도면 충분하다”는 의견과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실내외 온도 차가 10도 이상 벌어지는 일이 흔해지면서 여름의 적은 더위만이 아니게 됐다. 하루에도 폭염과 강한 냉방을 오가는 것은 물론, 예고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와 폭우까지 대비해야 한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 자체가 새로운 일상이 된 것이다. 이 변화는 옷장 풍경부터 바꾸고 있다. 여름옷은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 변화에 대응하는 장비가 되고 있다.
폭염의 역설...자외선 막는 긴팔이 더 시원하다?

피부 노출이 많다고 반드시 더 시원한 것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폭염 시 몸에 달라붙지 않는 헐렁하고 가벼운 옷을 입고,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도록 피부를 적절히 덮을 것을 권고한다. 중동이나 동남아시아 등 고온 지역에서 긴소매 옷차림이 흔한 것도 같은 이유다. 중요한 것은 노출의 정도가 아니라 소재와 통기성이다.
이 같은 변화는 해외 패션계에서 먼저 감지됐다. 미국에서는 자외선 차단 기능을 갖춘 의류(UPF)와 얇은 후디, 긴팔 셔츠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패션 매거진 하퍼스 바자는 최근 “자외선 차단 기능과 스타일을 모두 갖춘 긴소매 셔츠와 리넨 오버셔츠, 커버업이 올여름 핵심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소개했다. 유럽 패션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영국 보그는 올여름 오버사이즈 셔츠와 성긴 니트 조직으로 공기 순환을 높인 크로셰 셔츠를 대표 아이템으로 꼽으며 “가볍게 걸치는 레이어드가 여름 스타일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여름 패션 ‘폭염·냉방·자외선·소나기’…모두 잡아라

이는 국내 패션업계의 여름 전략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과거에는 반소매 티셔츠와 셔츠가 여름 상품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경량 아우터와 긴소매 아이템이 핵심 카테고리로 떠오르고 있다. 변덕스러운 여름 환경에 대응하려는 소비자가 늘면서다.
실제 판매 데이터도 이를 보여준다. 국내 패션기업 LF에 따르면 올여름 마에스트로의 여름 가디건 매출은 4~6월 기준 전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성글게 짜인 크로셰 조직 덕분에 통풍은 유지하면서도 냉방 바람은 적당히 막아주는 점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닥스역시 간절기 상품으로 여겨졌던 점퍼를 셔츠 수준의 무게로 구현한 초경량 점퍼를 앞세워 오피스룩 수요를 공략했고, 7월 경량 점퍼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세를 기록했다.
디자인뿐 아니라 소재 변화도 뚜렷하다. 린넨 중심이던 여름 소재는 최근 크로셰, 플리츠, 시어서커 등 다양한 질감의 소재로 확장되고 있다. 성긴 조직의 크로셰 니트는 공기 순환을 돕는 동시에 냉방 바람을 막아주고, 플리츠는 피부 접촉 면적을 줄여 땀에도 쾌적함을 유지한다. 시어서커 역시 표면의 요철이 피부와 원단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통기성을 높인다.
패션업계도 이런 변화에 맞춰 기능성을 강화한 여름 소재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헤지스는 여름 특화 라인 ‘헤지스 웨이브’를 통해 플리츠 에디션과 시어서커, 린넨 혼방 제품군을 확대하며 도심과 휴양지를 아우르는 스타일을 제안했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도 올여름 키워드를 ‘날씨’로 잡았다. 빈폴은 영국 웨더웨어 브랜드 헌터와 협업한 ‘애니웨더, 애니웨어’ 컬렉션을 통해 윈드브레이커, 시어서커 셔츠 등을 선보였다. 이외에도 자외선과 비를 동시에 막을 수 있는 양우산, 가볍게 접어 가방에 넣을 수 있는 초경량 아우터 등은 여름철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응하는 대표 아이템이 됐다. 에잇세컨즈 역시 피부 접촉 면적을 줄인 주름 소재의 ‘올데이 크리즈’ 라인을 여름 대표 상품으로 선보이며 출근복과 여행복을 모두 아우르는 활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최현진 LF 홍보팀 매니저는 “예전에는 여름옷의 기준이 ‘얼마나 얇은가’였다면 이제는 강한 자외선과 실내 냉방, 갑작스러운 비까지 변화무쌍한 날씨와 온도 차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며 “가볍게 걸칠 수 있는 경량 아우터와 기능성 소재 제품의 수요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예측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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