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공항 내리자마자 '윙윙'…드론 포위된 폐허도시 베이루트

김동호 2026. 7. 2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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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합의' 한달 맞은 레바논엔 이스라엘의 군사 위협 계속
"다른 중동국엔 사이렌 미리 울리는데 여긴 폭발음 나야 공습 알아"
4월 '영원한 어둠작전' 충격 여전…하루에만 100여차례 공습, 357명 사망
친헤즈볼라 주민들은 외부인 극도로 경계…종파갈등에 내전 우려도
공습 피해 지역 (베이루트=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25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바슈라 지역. 지난 4월 8일 대공습 때 무너진 건물 부지가 공터로 변해 있다. 2026.7.26 photo@yna.co.kr

(베이루트=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25일(현지시간) 낮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라피크 하리리 국제공항. 출국장 밖으로 나서자마자 가까이서 날벌레가 맴돌듯 이스라엘군 무인항공기(UAV·드론)들이 내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도심으로 향하는 길에 만신창이가 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3월 31일 폭격 때 부서진 건물 잔해가 튀면서 한동안 공항 진출입이 멈춰 섰다고 한다.

살풍경한 거리를 두리번거리는 기자에게 "레바논은 제대로 된 방공망을 못 갖춰 미사일이든 뭐든 전혀 막을 수가 없다"는 설명이 따라왔다.

연합뉴스는 지난 수개월간 이스라엘군의 강도 높은 공습 표적이 됐던 베이루트를 찾았다.

양국 정부가 지난달 26일 미국의 중재로 평화 기본 합의안에 서명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레바논을 겨냥한 이스라엘의 산발적인 공격은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 4월 8일 이뤄진 대공습은 현지 주민과 한국인 교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충격을 남겼다. 이스라엘에서는 '영원한 어둠 작전'으로, 레바논은 '검은 수요일'이라고 각각 부르는 날이다.

이스라엘은 사전 대피 경고 없이 100여차례 넘는 맹폭을 가했고, 레바논 당국은 그날 하루에만 357명이 숨졌다고 집계했다.

공습 피해 (베이루트=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25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국제공항 부근 도로변. 지난 3월 31일 공습 때 파손된 건물 상단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2026.7.26 photo@yna.co.kr

당시 타깃 중 하나였던 베이루트 바슈라 지역은 이날까지도 피해를 수습하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마을 한편에 우뚝 섰던 건물은 형체 없이 바스러졌고, 남은 공터에는 이부자리와 책 등 주민들이 썼을 생필품이 어지럽게 나뒹굴었다.

한 교민은 "이란 전쟁 와중에 아랍에미리트(UAE)나 사우디아라비아에 사는 이들은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공포심에 휩싸이게 됐다던데, 여기는 방공체계가 없다 보니 경보 사이렌이 아닌 폭발음으로 공습이 있는지를 알게 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바슈라의 한 공터 근처 골목 건너편 가게 벽에는 전사한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대원들의 얼굴 사진과 이름이 인쇄된 포스터가 여럿 붙어있었다.

가게를 지키던 젊은 현지인 남성들이 갑자기 기자 일행에게 아랍어로 언성을 높이며 시비를 걸어오는 돌발 상황이 벌어져 자리를 황급히 뜰 수밖에 없었다.

이 마을은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시아파 무슬림뿐만 아니라 수니파와 기독교인이 섞여 사는 곳이라 이스라엘군의 주요 표적이 아니었지만, 그날만큼은 예상 밖의 무차별적 공습에 당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는 이유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헤즈볼라 (베이루트=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25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바슈라 지역. 한 가게 벽면에 전사한 헤즈볼라 대원들을 추모하는 포스터들이 붙었다. 2026.7.26 photo@yna.co.kr

이날 기자는 공습 피해가 가장 큰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도 방문하고 싶었지만 그곳까지는 갈 수 없었다. 지난 3월 한국 외교부가 헤즈볼라 근거지인 다히예 일대를 여행경보 4단계, 즉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했기 때문이었다.

운전기사 아메드(가명)는 기자와 만나 "다히예에 집이 있는데, 폭격이 한창이던 때에는 무서워서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며 회사에 양해를 구해 사무실에서 3개월간 숙식을 했다고 토로했다.

성인 남성 친척이 모두 헤즈볼라 대원이라는 20대 여성 파티마(가명)는 와츠앱 메신저를 통해 "4월 폭격은 슬프게도 지난 전쟁 때보다 훨씬 심했다"며 얼마 전 자신과 일가족이 모두 다히예 밖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전했다.

이날 공항 앞 대로변에는 붉은색 바탕에 '레바논이 우선'이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이 불에 그을려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원래 이 자리에는 헤즈볼라가 이란의 이슬람 신정일치 체제를 지지하는 선전물을 걸었는데, 친서방 성향의 정부가 이를 모두 철거하고 통합을 호소하는 현수막을 대신 걸어놨다고 한다. 새 현수막에 누군가가 불만을 품고 방화한 흔적이다.

2023년 10월 발발한 가자전쟁을 기점으로 줄곧 이스라엘의 공습에 노출돼온 레바논 사회는 이번 이란 전쟁의 여파로 심화한 안보 불안과 경제난에 대한 책임론을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내전이 재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불타버린 '통합' 메시지 (베이루트=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25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공항 인근 도로. 정부가 설치한 '레바논이 우선'현수막이 불에 그을려 훼손됐다. 2026.7.26 photo@yna.co.kr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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