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있으면 썩는다" 성소수자부모모임 나가는 73세 전직 순복음교회 장로

엄태빈 2026. 7. 2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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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엔 쉽니다] 예순 넘어 신앙 다시 세운 최정규 씨
"목사 지키는 것이 교회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 후회,
교회가 시대 흐름 외면하지 않고 앞장서 일궈 나갔으면"
주일엔 쉽니다 - 편집자 주

'진격의교인'이 '주일엔 쉽니다'란 이름으로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왜 믿는지, 무엇을 믿는지를 고민하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이들을 살펴봅니다. 쏟아지는 사건 사고와 각종 뉴스 속에서 '안식일' 하루만큼은 순수함과 본질을 기억하며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만들어 봅니다. 편집국 기자들이 매주 1~3주 일요일에 연재합니다.

[뉴스앤조이-엄태빈 기자] 표지가 시뻘건 책. 한 서점 기독교 코너에서 <교회 안의 거짓말>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이단 책인가" 싶었다. 몇 걸음 못 가 되돌아왔다. 도대체 무슨 책인가 싶어 책을 펼쳤다. 나들목교회 김형국 목사가 쓴 이 책에는 교회 안에서 잘못 전달되고 있는 12가지의 생각들이 죽 적혀 있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믿고 기도하면 응답받는다" 등 그동안 믿음으로 '맞겠지' 하며 애써 외면했던 주제들이었다.

최정규 씨(73)는 한때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이후 경기도 고양시로 이사하면서 조용기 목사의 제자 목사가 세운 일산 한 순복음교회의 초대 장로가 됐다. 평탄한 신앙생활을 이어 가나 싶었는데, 하나둘 문제가 터졌다. 당시 출석하던 교회 담임목사의 잘못된 언행으로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가 깨지는 것은 큰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교회를 지키기 위해 '문제 해결'에 나섰다. 목사에게 문제 제기하는 장로들에게 미움을 받으면서도, 목사의 편을 들고 그를 지키는 것이 곧 교회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최정규 씨는 과거 교회 분쟁을 막기 위해 목사 편을 든 것을 두고 "정말 후회된다. 내가 너무 잘못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사태를 수습하고 목사를 지켜 냈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마음이 자꾸 그를 괴롭혔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목사를 찾아가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교회 구조와 시스템을 바꾸자고 했다. 장로의 충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리하게 교회 건축을 하려는 목사와 최정규 씨 사이 불협화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 교인들이 동요할 것이라고 생각해 입을 닫았다.

와중에 하고 있던 사업도 어려워졌다. 사업이 완전히 망그러져 집이 날아갈 판이었다. 더 이상 교회에 나가기 힘들어졌다. 교회에는 일신상의 이유로 장로와 맡았던 직들을 내려놓겠다고 설명하고, 떠났다.

예순 둘, 은퇴를 바라볼 시기였다. 사업도, 교회도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이 모두 문을 닫는 것 같을 때 <교회 안의 거짓말>을 만났다. 책 살 돈 만 원이 없어 서점에서 1시간 넘게 책을 읽다, 며칠 뒤 돈을 마련해 구입했다. 30년 가까이 쌓아 온 신앙이 흔들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예순 넘어 처음부터 다시 쌓은 신앙

책을 단숨에 완독하고 김형국 목사의 설교를 찾아 듣기 시작했다. 아내는 돈을 벌러 나갔고,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 혼자 남은 집에서 하루 종일 중독된 것처럼 설교를 들었다. 창립 예배부터 나들목교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모든 설교를 다 듣고 나서 교회에 방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사는 일산에서 나들목교회가 있는 서울 신설동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1시간 30분이 걸린다. 돌고 돌아 아내와 함께 나들목교회를 찾았다. 나이 든 낯선 사람이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 목사가 찾아와 말을 건다. "혹시 다른 교회 장로님이시냐. 여긴 왜 오셨느냐"고 물었다. 최정규 씨가 말을 얼버무리니, 김형국 목사는 웃으며 "그 교회가 힘들면 거기서 개혁을 해라. 여긴 가끔 힘들 때 놀러 오시라"고 말했다.

아내는 "이런 교회에 왜 와야 하느냐"고 했지만, 최정규 씨는 계속해서 교회로 향했다. 결국 2015년 교인으로 등록 후 신앙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매주 교육을 듣고 성실하게 주어진 과제를 해 갔다. 예순 넘은 장로 출신이 새신자 과정을 밟는다는 건 어색한 것을 넘어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었지만 그의 신앙 전반을 돌아보게 하는 과정이었다. "여태까지 그냥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신앙생활을 한 게 아닌가 싶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나들목교회는 "공부를 많이 시키는 교회"였다. 강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궁금하게 만들어 스스로 따라오게 했다. 매주 주어지는 질문을 가족들과 나누었다. 교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려면 책과 성경을 읽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묻게 됐다. 믿음과 삶에 대해서.

한국교회는 예배에 목숨을 걸라고 가르친다. 주일은 '성수'하는 대상이니까. 하지만 최정규 씨는 예배가 중요하다고 가르치면서도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했다. 예배와 말씀에서 활력을 얻으면 그다음엔 그것이 밖으로 흘러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 고이면 그것은 훈련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한 가르침들은 최정규 씨의 신앙을 다시 세웠고, 예순 넘은 나이에 그는 교회 밖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최정규 씨는 나들목교회가 "공부를 많이 시키는 교회"라고 했다. 사진 제공 최정규

교회에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

최정규 씨는 기후위기기독인연대, 희년함께 등 관심 있는 주제의 기독교 단체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회 여러 문제들이 교회가 나서면 해결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한 활동은 '성소수자부모모임'이다. 2019년, 나들목교회가 다섯 교회로 분립할 때 최정규 씨는 서울 마포구 서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 나가게 됐다. 거기서 20살 어린 한 친구를 만났다. 이주 노동자 관련 활동을 같이하는 친구였다.

우연히 길게 대화할 시간이 있었는데 성소수자부모모임을 소개하며 같이 나가자고 했다. "내가 거길 왜 가느냐"고 했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이의 권유였기에 용기를 냈다. 3년 전 처음 나간 모임 이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그 모임에 가서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신앙을 가진 성소수자들이 가족과의 관계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직접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목사 아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아들이 목회자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했는데, 어머니는 펄쩍 뛰었고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2024년, 손현보 목사(세계로교회)를 위시한 보수 교회 목사들이 광화문에 모여 '동성애 독재'를 막겠다며 10·27 집회를 열었다. 그 바람은 전국 곳곳으로 퍼졌다. 집회 즈음, 목사인 아버지가 강단에서 동성애를 강하게 성토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줄에 앉아 있던 아들은 견디지 못하고 그만 예배당을 나왔다. 

그 청년은 부모모임에서 "엄마, 아빠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건 괜찮은데, 이제 하나님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구나. 그거 하나로 버텼는데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이런 생각이 드니까 살맛이 싹 없어졌다"고 말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한 목사가 대신 그 청년에게 사과했다. 최정규 씨는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친구에게 "야 이게 뭐야.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이런 거야?"라고 말했다.
올해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 성소수자부모모임 부스에 방문했다. 사진 제공 최정규

"맨날 울고 와요. 진짜 울고 와요. 저 사람들이 본인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닌데. 그럼 하나님이 나쁘신 분이에요? 왜 인간을 저렇게 만들어 놓은 건가요. 교회 사람들하고는 이런 얘기 잘 못 해요. 그런데 고등학교 동창들 만나면 오히려 걔네들은 '어, 요즘 (성소수자) 많더라'라면서 포용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이게 참 웃기는 거잖아요."

교회가 바뀌고, 나서면 해결할 수 있다

나들목교회에 등록한 것이 예순두 살, 성소수자부모모임에 처음 나간 것은 일흔 무렵이다. 신앙의 방향을 튼 것도, 낯선 자리에 앉기 시작한 것도 모두 은퇴할 나이에 벌어진 일이다. 그는 아직도 궁금한 것이 많다며 공부 중이다. 대학도 나오지 않았지만, 태생적으로 덮어놓고 받아들이는 걸 싫어하는 탓에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최근에는 양자역학과 신유물론, 침묵 기도와 관상기도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신앙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 갖게 된 것을 '새로운 시작'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지나온 모든 세월과 여정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최정규 씨는 어릴 적부터 쌓아 왔던 신앙과 단절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60년 전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만난 그리스도인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어릴 적 깡촌 마을에 부임한 청년 목사가 자신의 신앙 뿌리라고 했다. 양철 지붕으로 된 가난한 교회 담임자였다. 목사는 키우던 염소의 젖을 짜 아침마다 온 동네에 돌렸고, 교인이 수술을 받으면 병원에 가 자기 피를 뽑았다. 군사훈련으로 연막탄이 터진 길, 탱크 사이 갇힌 젊은이를 구하러 뛰어들었다. 서울로 중학교를 다니며 교회에 발길을 끊은 뒤에도, 방학에 만난 목사는 늘 "잘 있었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교회에 나가는지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는 교회가 말이 아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때 배웠다고 했다.
나들목네트워크 서로교회는 포천이주노동자센터와 이주 노동자들을 초청해 밥상 코이노니아를 주관했다. 최정규 씨가 센터에서 자원 봉사자로 활동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 최정규
성인이 되어 나가기 시작한 순복음교회에서는 3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번영신학, 기복신앙의 대명사처럼 여기기도 하지만, 최정규 씨는 서로를 잘 챙기고 돌봤던 순복음교회 교인들의 마음은 참 귀하다고 했다. 그 시절 순복음교회가 감당했던 시대적 역할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못 먹고 헐벗던 시절, 의지할 곳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교회가 자리를 내어 줬다는 것이다. 조용기 목사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었던 밑바탕도 거기 있다고 봤다. 기복적인 측면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위로였고, 결과적으로 수많은 그리스도인을 만들어 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거기서' 멈춘 것이라고 했다. 교회가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머물렀기 때문이다.

"멈춰 있으면 썩어요. 아무리 진리라도 한곳에 머물러 있으면 결국 썩잖아요. 진리 추구라는 게 딴 게 아니라 계속 역동적으로 변화를 추구해 가는 거예요. 세상은 계속 세속적으로 갈 수밖에 없으니까, 교회는 끊임없이 저항적이어야 돼요. 그래서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을 쓰는 거 아니겠어요. 1970~80년대 사고방식을 그대로 갖고 계신 분들이 아직도 교회를 이끌고 있으니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나도 편안한 게 좋죠. 근데 그러면 안 바뀌어요. 머무는 신앙, 침체된 신앙이 아니라 계속 변혁해 가는 교회 공동체로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시대의 흐름을 외면하지 말고요. 우리가 가진 신앙을 기준으로 삼되 시대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선도적이고 선교적으로 앞장서서 일궈 나갔으면 좋겠어요.

억울한 사람, 소수자와 약자들이 홀대받고 억압받는 사회. 이걸 회복하고 되돌려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외면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한테 외면당합니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죠. 그것도 해야죠. 근데 기도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행동을 바꿔야 돼요."

최정규 씨는 교회가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두려운 게 없느냐고 묻자, 노후가 걱정되고 몸이 늙어 가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그러나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뎌 낼 것인가, 결국 하나님께 부탁할 수밖에 없죠. 제가 알 수도, 감당할 수도 없으니까." 눈도 아프고, 언젠가 요양원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면서도 그의 반짝이는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많은 교회가 '천국행'이라는 티켓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신앙을 가르친다. 천국을 신앙의 유일한 목표로 세우고 봉사와 헌금을 강조한다. 그러나 최정규 씨가 생각하는 천국, 즉 하나님나라는 사후의 장소가 아니다. 불평등이 해소되고 소외된 이들이 함께 행복하게 사는 사회, 예수가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 힘을 주고 회복시키려 했던 그 일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는 교회가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이 땅의 현실 속에서 실천되도록 끊임없이 저항하고 행동해야 함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엄태빈 scent00@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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