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우의 개미수다] ‘10일 연속 사이드카’ 도박판 된 국장… 개미들의 슬픈 ‘미장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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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 관련 소식이 매일 쏟아지지만 뉴스에서 '개미'의 목소리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지난 10일부터 24일까지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10거래일 연속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는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지난 24일에도 코스피(-5.72%)와 코스닥(-5.32%)이 동반 폭락하며 오전에만 양 시장에 사이드카가 걸렸다.
더 씁쓸한 대목은 국장을 탈출한 개미들이 도착한 미국 시장에서 보여주는 투자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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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주] 주식시장 관련 소식이 매일 쏟아지지만 뉴스에서 '개미'의 목소리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기사를 쓰는 기자도 개인 투자자고, 매일 손실과 이익 사이에서 울고 웃습니다. 일반 투자자보다 많은 현장을 가고 사람을 만나지만 미처 전하지 못했던 바를 철저하게 '개인'의 시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매일 아침 주식 창을 열 때마다 가슴을 졸여야 하는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24일까지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10거래일 연속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는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매도 사이드카 5번, 매수 사이드카 5번이 번갈아 터지며 주가가 하루가 다르게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지난 24일에도 코스피(-5.72%)와 코스닥(-5.32%)이 동반 폭락하며 오전에만 양 시장에 사이드카가 걸렸다. 블룸버그통신 조차 "올해 코스피 변동성이 가상자산 시장보다 크다"고 짚었다. 종목 토론방에서는 "이게 증시냐, 홀짝 도박판이지"라는 자조가 쏟아졌다.
이 미친 변동성의 주범으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투톱 주가에 베팅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가 지목됐다. 파장이 커지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신속하고 과감한 대응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금융위원회는 역시 당초 다음 달 5일 시행 예정이던 기본예탁금 상향(3000만원) 조치를 오는 31일로 당겨 시행하기로 했다.
위험한 상품을 풀어줄 때는 신속하더니 중동 갈등과 고유가, 미국 금리 급등 등 대외 악재에 맞물려 판이 아수라장이 되고 계좌가 녹아내린 뒤에야 뒷북 대책을 내놓는 모양새다.
국내 증시의 극심한 변동성과 당국의 미흡한 대응에 지친 개인 투자자들은 결국 안방을 버리고 떠나고 있다.
26일 금융투자협회와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증시 예탁금은 104조297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4일 기록한 역대 최고치(139조6948억원) 대비 약 35조원이나 빠져나가며 5개월 만에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반면 지난 1일부터 23일까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25억3026만달러(약 3조7114억원)로 지난달(6억3296만달러)의 4배에 달했다.
더 씁쓸한 대목은 국장을 탈출한 개미들이 도착한 미국 시장에서 보여주는 투자 행태다. 서학개미들은 이달 들어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 3배 레버리지 ETF인 '속슬(SOXL)'을 15억23만달러(약 2조1978억원)어치나 쓸어 담았다. 국장의 변동성에 지쳐 떠났으면서 정작 미국에서는 고위험 상품에 베팅하는 역설을 보인 셈이다.
심지어 지난 10일 나스닥에 상장된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를 지난 23일까지 6억1367만달러(약 9048억원)나 순매수했다. 똑같은 한국 기업의 주식을 수수료와 환리스크, 그리고 최대 51%에 달하는 프리미엄(웃돈)까지 얹어주며 미국 시장에서 사들인 것이다.
이같은 행태에 해외 전문가들도 혀를 찼다. 글로벌 퀀트 헤지펀드 아카디안 자산운용의 오웬 라몬트 수석 부사장은 "한국인들이 국내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본주를 두고 웃돈을 주며 ADR을 매수하는 것은 미친 수준의 가격 오작동이자 자멸적인 행동 패턴"이라고 직격했다.
미 전문가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비이성적 광기로 보이겠지만, 그 바탕에는 "국내 본주는 외인과 기관의 차익거래 먹잇감일 뿐"이라는 K-개미들의 깊은 불신이 깔려있다.
개미들의 이러한 탈출 흐름은 이제 국가적인 현상이 됐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3일(현지시간) 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유지하며, 한국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유출을 원화 약세를 유발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한국 증시에 대한 불신이 개미들의 이탈을 부르고, 이것이 외환시장까지 흔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 셈이다.
증권가에서는 코스피가 금융위기 수준 이하로 떨어져 극단적 저평가 영역에 진입했다며 다음 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나 주요 기업 실적 발표 이후 반등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하지만 판에 대한 신뢰 자체가 무너진 상황에서는 이러한 펀더멘털 분석도 무색해진다.
고위험 상품 허가 이후 변동성이 확대되자 진입 장벽만 높이는 식의 사후약방문 대응이 반복되는 한, 한국 증시는 개인 투자자들의 계좌를 녹이는 '투기 도박판'이라는 오명을 씻기 힘들다.
박진우 기자 pjw19786@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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