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얇아지자 뒤집힌 車시장…경차·중국차의 역습 

박성수 시사저널e 기자 2026. 7. 2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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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차값 급등에 ‘거거익선’ 접고 가격·유지비 따지는 2030
경차 판매 두 자릿수 증가…BYD 돌풍, 수입차 4위로 질주

(시사저널=박성수 시사저널e 기자)

자동차는 사회적 지위와 부를 대변하는 상징물로 통했다. 이 때문에 국내 자동차 시장은 해마다 덩치를 키운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수입 프리미엄 브랜드 중심으로 가파른 성장을 이어왔다. 도로에서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는 이른바 '하차감'과 넓은 실내 공간을 선호하는 '거거익선(巨巨益善)'은 한국 소비자가 신차를 고를 때 불문율과 같았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던 이 견고한 공식이 최근 급격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멈출 줄 모르는 고물가와 고금리, 고환율이라는 이른바 '3고(高)'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과시와 품위 유지용 소비 대신 철저한 실리와 생존을 택하는 소비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BYD의 전기차 '돌핀 서프' ⓒReuters연합

경차의 부활…'실용성'이 경쟁력으로

소비자의 변심은 고스란히 통계로 증명된다. 한동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경차와 가성비를 내세운 중국산 전기차가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불과 수년 사이에 신차 가격이 평범한 직장인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급등하자, '가격 대비 성능'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합리적 구매 패턴이 시장 전체에 자리 잡은 것이다. 도로에서 체면을 차리기보다 내 주머니 사정을 확실히 지키겠다는 이 지극히 현실적인 움직임은 국내 자동차 시장의 소비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그동안 국내 경차 시장은 끝없이 이어지는 대형화 바람에 밀려 만성적인 위축세를 겪어왔다. 완성차 기업들이 마진율이 높은 중대형 SUV나 고가의 친환경차 위주로 생산 라인업을 재편하면서 경차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다. 소비자 역시 경차는 안전성이 떨어지거나 승차감이 불편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외면해 왔다. 그러나 지갑이 얇아진 경기 침체 국면이 도래하자 반전이 일어났다. 올 상반기 국내 경차 시장은 총 4만4641대 판매되며 지난해보다 11.5% 증가하며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성장을 이끈 것은 기아였다. 국민 경차로 불리는 '모닝'은 상반기에 1만1995대 판매되며 전년 대비 82.1% 늘어났다. 공간 활용성이 뛰어난 '레이' 역시 2만4380대 팔리며 기아 승용차 가운데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경차가 브랜드 대표 판매 모델로 올라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레이는 계약 이후 차량을 받기까지 6~10개월가량 대기해야 할 정도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 현대자동차 캐스퍼 역시 해외 수출 물량이 확대되며 국내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대기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경차의 인기 요인은 단순히 차량 가격만이 아니다. 취득세 감면과 공영주차장 할인,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 등 각종 세제 및 유지비 혜택까지 더해지면서 실질적인 차량 운행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소비자의 선택을 이끌고 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수록 이러한 경제성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아 영업점 관계자는 "경차는 경제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소비층이 꾸준히 존재하고, 세컨드카 수요도 지속되고 있다"며 "최근에는 첫 차를 구매하는 사회초년생뿐 아니라 유지비 절감을 위해 경차를 선택하는 고객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속 소비는 수입차 시장에서도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전기차 브랜드 BYD다. BYD가 국내시장에 진출하기 전만 해도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품질과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고, 중국 브랜드라는 이유만으로 구매를 망설이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가격 경쟁력은 이러한 편견을 빠르게 허물었다. BYD의 해치백 전기차 '돌핀'은 6월에만 2828대 판매되며 수입차 단일 모델 판매 2위에 올랐다.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해치백 차체임에도 2000만원대 구매 가격을 앞세워 흥행에 성공했다. 돌핀 판매 호조에 힘입어 BYD는 지난 6월 총 4652대를 고객에게 인도하며 수입차 브랜드 판매 4위까지 뛰어올랐다. 올해 상반기 누적 판매량은 1만1675대로, 한국 시장 진출 1년 만에 '1만 대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와 비교할 때 판매량이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경차와 저렴한 전기차 강세 속에서 2030 지갑도 다시 열리고 있다.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20대와 30대의 신차 구매는 각각 전년 대비 31.7%, 3.7% 늘어난 반면 50대(-3.3%)와 60대(-15.1%)의 신차 구매는 오히려 감소했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20대의 거래량이 35% 급증하며 청년층의 '실속형 자동차 소비' 경향을 뚜렷하게 반영했다. 소득이 상대적으로 적은 청년층이 신차 대신 실속형 경차나 초가성비 수입 전기차로 대거 눈을 돌렸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산도 괜찮다"…가격이 편견 넘었다

자동차 소비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급격한 가격 상승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국산 신차 평균 가격은 2021년 3320만원에서 2024년 4310만원으로 3년 만에 약 1000만원 가까이 올랐다. 같은 기간 수입차 평균 가격 역시 7200만원에서 8500만원대를 넘어서며 진입 장벽을 높였다. 완성차업체들이 첨단 안전 사양과 고가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기본화하고, 단가가 높은 친환경차와 SUV 위주로 라인업을 개편하면서 발생한 결과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준중형급 이상 신차를 구매할 때 세금과 옵션을 더하면 4000만원이 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소득 증가율이 차량 가격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브랜드의 상징성보다 구매 부담과 유지비 등 실질적인 비용을 우선 고려하는 소비 패턴이 확산하고 있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고가 차량 선호가 강했지만, 최근에는 고물가와 경기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실용성과 가격 경쟁력을 우선하는 소비자가 크게 늘고 있다"며 "대중 시장에서는 결국 합리적인 가격과 상품성을 갖춘 브랜드가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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