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이라던 대형마트…이젠 '불쌍한 놈' 됐다

김아름 2026. 7. 25.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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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유통]정부,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가 움직임
이미 쿠팡이 시장 장악…실제 효과 높지 않을 수
야간·휴일영업 등 2012년판 규제 전부 풀어야
그래픽=비즈워치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편집자]

악의 축

2002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 이란 등 테러 지원국들을 가리켜 '악의 축(axis of evil)'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간단하면서도 의미가 명확한 이 표현은 말 그대로 '유행어'가 됐습니다. 마침 비슷한 시기 국내 유통업계에도 '악의 축'이 나타났습니다. 대형마트입니다.

2000년대 초중반, 대형마트는 유통 시장 내에서 '악의 축'처럼 보였습니다. 어느 지역에 대형마트가 들어선다고 하면 지역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피켓 시위를 했죠. 지역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지역 자본이 유출될 거란 우려도 컸죠. 

정부 역시 이런 생각에 동의했습니다. 시내에서 거리가 있던 대형마트들이 운영하던 셔틀버스를 금지시킨 것을 시작으로 대형마트의 발목을 묶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12월엔 지금까지 대형마트를 옭아매고 있는 법안이 통과됩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온라인/대형마트 연간 매출 증감 추이/그래픽=비즈워치

15년이 지난 지금 '악의 축'들의 현실은 초라합니다. 업계 2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가 간신히 '유예'를 받았습니다. 홈플러스는 이미 수많은 점포의 문을 닫았고 남아있는 점포들 역시 아직 문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경쟁자의 부진을 틈타 '폭풍 성장'을 하고 있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이들의 움직임 역시 '성장'이 아닌 '생존'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커머스에 완전히 주도권을 내준 탓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이제와서 홈플러스와 홈플러스 직원들의 안타까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은 한 방송에서 "전 국민이 나서서 홈플러스 물건을 팔아주자고 운동해야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는데요. 물론 홈플러스의 생존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로 한 말이겠지만, 그간 정치권이 대형마트를 어떻게 대해왔는지 생각하면 머리를 기웃하게 만드는 발언입니다.

병 준 뒤 약 주나

업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산업통상부는 대형마트와 한국체인스토어협회 관계자들을 불러 유통산업 발전 전략을 논의했습니다. 규제 완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업계에선 그간 발이 묶여 있던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현행 법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자정까지로 제한돼 있습니다. 새벽배송을 위한 영업이 원천 차단돼 있는 셈입니다. 이 때문에 대형마트들은 이마트 네오센터 등 온라인 전용 물류 센터를 통해 일부 지역에서만 새벽배송이 가능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전국에 뻗어 있는 대형마트에서 직접 새벽배송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픽=비즈워치

문제는 쿠팡과 컬리, 오아시스 등 이미 이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있다는 겁니다. 연매출 50조원의 쿠팡은 말할 것도 없이 대형마트 최대의 경쟁자입니다. 이미 매출이나 영업이익 면에서 대형마트들을 뛰어넘은 지 오래입니다. 신선식품이 중심인 컬리 역시 연간 거래액이 3조5000억원 이상입니다. 

소비자들도 신선식품이라면 컬리나 쿠팡프레시를, 공산품이라면 쿠팡을 이용해 새벽배송을 받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제와서 이마트나 롯데마트, 홈플러스가 새벽배송을 도입한다 해도 지금까지의 루틴을 바꿀 이유가 많지 않습니다. 결국 대형마트는 새벽배송 시장에서 후발 주자로서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며 불리한 경쟁에 나서야 하는 셈입니다.

그거 말고 저거

사실 대형마트가 진짜로 원하는 소원은 따로 있죠. 바로 '의무휴업일 해제'입니다. 대부분의 대형마트들은 매달 2, 4주 일요일을 쉬고 있습니다. 월 2회를 쉰다면 연간 휴무일은 총 24회. 1년의 6.6%에 달합니다. 특히 일요일은 대형마트 매출이 가장 많은 요일입니다. 대충 계산해도 7~8%의 매출을 휴무일 규제 때문에 날리고 있는 겁니다.

원래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지역 전통 시장과 상권을 살리기 위한 아이디어였습니다. 한 달에 두 번만이라도 대형마트 대신 인근 시장을 찾으라는 의도죠. 하지만 현실은 의도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이커머스의 등장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은 대형마트가 쉬는 날 시장을 찾기보단 스마트폰 앱을 켜 쇼핑을 즐겼습니다. 

그래픽=비즈워치

이 시기 G마켓과 11번가, 옥션 등 이커머스 기업들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쿠팡·티몬·위메프 등 이른바 '소셜커머스 3사'가 일제히 이커머스형 쇼핑몰로 전환한 것도 이맘때입니다. 우연일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 흐름을 통제하려 하니, 시장이 틈새를 노린 겁니다. 

대형마트 업계는 새벽배송 허가와 함께 의무휴업일 규제도 폐지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쿠팡 등과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규제를 풀지 않을 이유도 없습니다. 너무 유리하다고 발에 족쇄를 채운 셈인데, 한참 뒤처진 지금까지 이 족쇄를 풀어주지 않는 건 오히려 불공정한 일입니다.

의무휴업일 규제가 해제된다고 다시 이마트나 롯데마트가 유통 시장의 패권을 되찾아 올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미 시장 흐름은 온라인으로 넘어온 지 오래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정치권은 홈플러스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야 움직이려고 합니다. 대형마트의 골든 타임은 이미 지나갔을까요. 아니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까요. 확실한 사실은 지금이 아니면 그 다음 기회는 없을 거라는 겁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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