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여담] 답답한 젠슨황과 불안한 표정의 소버린AI

최진홍 기자 2026. 7. 25. 12:0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픈웨이트 서한에 25곳 서명
빠진 이름이 더 시끄러운 이유

평생 소셜미디어에 글 한 줄 안 쓰던 사람이 갑자기 계정을 만들었습니다.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입니다. 그런데 첫 글이 신제품 자랑도, 실적 예고도, 가죽재킷 사진도 아니었어요. 첫 게시물에서 그는 엔비디아가 서명한 서한을 공유한다고 적었습니다. 

AI가 모든 산업을 바꾸고 모든 기업에 동력을 공급하며 모든 국가가 만들게 될 것이라는 문장, 오픈모델이 안전과 사이버보안을 강화하고 혁신과 확산을 앞당기며 주권을 가능하게 한다는 문장. 나아가 세계에는 최전선의 폐쇄 모델과 오픈 모델이 모두 필요하다는 문장으로 이어집니다.

그 글은 1100만회 넘게 읽혔고 일론 머스크는 인용하며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거들었습니다.

계정 개설의 첫 행동이 정책 캠페인이라니. 급했나 봅니다. 휘리릭 한번 살펴보시죠.

25일 업계 등에 따르면 그가 공개한 서한 제목은 '오픈 웨이트와 미국의 AI 리더십'입니다. 서명한 곳을 보면 엔비디아와 델 같은 칩 기업, 메타·마이크로소프트·미스트랄·허깅페이스 같은 모델 개발사, 퍼플렉시티·리플릿·박스·서비스나우·팔란티어·크라우드스트라이크 같은 응용 기업, 앤드리슨호로위츠와 와이컴비네이터 같은 투자사, 리눅스재단과 모질라, IBM 같은 단체까지 총 25곳입니다. 칩부터 애플리케이션까지 산업 사슬을 한 줄로 세워놓은 모양새예요.

자. 그럼 누가 빠졌을까요? 바로 오픈AI, 앤트로픽, 구글입니다. 폐쇄형 모델을 이끄는 세 곳이고, 규제가 도입되면 가장 크게 이득을 보는 위치이기도 합니다.
사진=갈무리

여기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시다. 사실 명단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요. 이름 올린 쪽보다 안 올린 쪽이 더 많은 걸 말해줍니다. 그리고 이번 서한은 사실상 업계가 공개적으로 편을 갈랐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자. 이 서한에서 "규제 반대" 자체보다 사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 논거입니다. 폐쇄 진영이 오랫동안 써온 안전 논리를 그대로 뒤집어 입었거든요.

폐쇄 쪽 주장을 가장 강한 형태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가중치를 풀면 악용을 막을 수 없다. 중국 기업이 미국 모델을 증류해 성능을 따라잡는다. 개방은 곧 안보 위험이다. 실제로 오픈AI와 앤트로픽은 중국 기업들이 자사 모델의 역량을 빼내 갔다고 주장해 왔고, 중국의 오픈소스 공세가 미국의 우위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해 왔습니다.

서한은 이 전제를 하나씩 건드립니다. 먼저 투명성과 커뮤니티 검증이 폐쇄형보다 나은 방어를 제공한다는 게 첫 번째입니다. 코드를 볼 수 있어야 취약점도 빨리 잡힌다는 오픈소스 시대의 오래된 명제를 모델 가중치로 옮겨온 셈이지요.

두 번째는 증류 문제입니다. 서명 기업들은 증류를 정당한 모델 개선 기법으로 규정하고, 지식재산 침해가 문제라면 침해 자체를 직접 제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기법을 막는 것과 절도를 막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이야기예요. 사실 맞는 말입니다. 칼로 사람을 찔렀다고 칼 제조를 금지하지는 않잖아요.

세 번째는 역사 인용입니다. 1980년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논쟁을 끌어와, 당시의 회의론에도 공개 코드가 인터넷의 토대가 됐던 것처럼 오픈 AI 모델도 성급한 제한 없이 자랄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서한의 결론부에는 이런 문장이 놓입니다. 미국 AI 리더십의 척도는 단일 최전선 모델이 얼마나 강한가가 아니라, 모든 산업에 스며드는 견고한 개방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겁니다. 표준을 쥔 쪽이 이긴다는, 플랫폼 전략의 교과서 첫 장이네요.

며칠 전에는 인터뷰로도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황 CEO는 22일(현지시간) 보도된 악시오스 인터뷰에서 중국 AI 모델이 매우 뛰어나고 우수한 오픈소스 모델은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AI가 오픈AI와 앤트로픽 같은 미국 기업을 시장에서 밀어낼 가능성은 없다는 말도 덧붙였고요. 미국 기업이 중국 모델을 써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당연하다고 답했습니다.

키미 해석 논쟁도 정면으로 건드렸어요. 시장이 2025년 딥시크 등장에 이어 키미의 영향도 잘못 읽고 있다며, 저렴한 오픈소스 모델이 퍼지면 칩과 데이터센터, 컴퓨팅 수요가 오히려 늘어난다고 강조했습니다. 문제의 키미 K3는 최첨단에 근접한 성능과 낮은 가격, 개발자가 내려받아 수정할 수 있는 개방형 가중치를 앞세워 미국의 우위를 흔든다는 우려를 낳았습니다.

딥시크에서 큐원을 거쳐 키미까지. 중국의 저비용 오픈모델이 성능 격차를 수개월 단위로 좁혀오는 동안, 미국은 최전선을 소수 기업의 잠금장치 안에 넣어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중국 모델을 아예 못 쓰게 막을지까지 검토하는 중이고요.

여기서 나옵니다. "그거 GPU 팔려는 거잖아요"라고 하실 텐데. 네. 맞습니다. 계산이 없다고는 못 하지요.

모델이 개방되고 AI가 모든 산업으로 퍼질수록 GPU와 데이터센터는 더 필요해집니다. 칩 파는 회사에게 개방은 시장 확대와 같은 말이에요. 이 정도는 초등학생도 계산합니다.

다만 그 계산이 주장을 무효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같은 결론에 도달한 무리가 훨씬 넓거든요. 200개가 넘는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이 소속된 리틀테크협회는 22일 트럼프 대통령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에게 서한을 보내 중국 오픈웨이트 모델의 미국 내 접근을 유지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중국 모델 다운로드를 금지해도 약해지는 쪽은 미국 스타트업뿐이라는 게 이들의 논리입니다. 실제로 미국 AI 기업의 토큰 비용이 급등하면서 다수 스타트업이 문샷AI와 알리바바, 딥시크의 저렴한 모델로 갈아타는 중이라고 하네요.

GPU 장사꾼 한 명의 목소리가 아니라, 돈 없는 스타트업 200곳의 비명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최근 사례 하나가 더 있습니다. 앤트로픽이 6월 9일 클로드 페이블5와 미토스5를 내놨다가 6월 12일 미 상무부 수출통제를 준수하기 위해 접근을 중단했고, 6월 30일 통제가 풀린 뒤 7월 1일 복원했지요. 최전선 모델의 접근권이 3주 가까이 행정 조치에 묶여 있었던 겁니다. 폐쇄형 최전선이라는 게 정부 개입 앞에서 얼마나 얇은 유리인지 보여준 장면이었어요.

여기까지 읽으시면 "그래서 한국은?"이라는 질문이 나오겠지요. 그리고 일이 좀 복잡해지는 것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자. 미국이 계속 문을 닫는 시나리오에서는 우리 소버린 AI가 명분을 얻습니다. 최전선 모델이 언제든 정치적 판단으로 끊긴다면 자기 모델이 있어야 하니까요. 하정우 전 AI미래기획수석이 최근 언제든 AI가 차단될 수 있다며 AI 주권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페이블5 사례는 그 주장의 물증이 되고요.

문제는 반대 시나리오입니다. 미국이 다시 공격적인 개방과 확산 전략으로 돌아서면 어떻게 될까요? 세계 최고 수준의 오픈웨이트 모델이 무료로 쏟아지는 상황에서 국산 파운데이션 모델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가 꽤 곤란해집니다. 정부가 12월 출시를 예고한 '모두의 AI'는 국산 모델을 국민에게 공짜로 뿌려 수요와 데이터를 국내에 쌓겠다는 설계인데, 상대가 더 좋은 걸 똑같이 공짜로 뿌리면 공짜라는 조건 하나로는 버티기 어렵거든요.

LG G5 이야기를 여기서 꺼내고 싶습니다. 신박했지요. 재밌었고요. 그런데 소비자가 그걸 살 이유를 만들어주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좋은데 당연히 쓰겠지?"라는 함정카드요. 국산 모델도 똑같은 시험대에 올라 있습니다. 좋다고 선택받는 시대가 아니라, 좋으면서 선택할 이유까지 있어야 하는 시대니까요.

여기서 개념 하나는 갈라놓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소버린 AI와 자체 모델 개발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모델 주권은 파라미터를 직접 만든다는 뜻이고, 데이터 주권은 국민과 산업의 데이터가 국내에 남는다는 뜻이며, 인프라 주권은 컴퓨팅과 전력을 국내에 쥔다는 뜻입니다. 세 개가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우리 논의는 자꾸 첫 번째로만 수렴하지요. 그리고 재밌는 대목은 여깁니다. 황 CEO가 첫 글에서 오픈모델이 주권을 가능하게 한다고 쓴 그 문장 말이에요. 두 번째와 세 번째를 정조준한 표현입니다. 공개된 가중치를 가져와 우리 데이터로 미세조정하고 우리 데이터센터에서 돌리면, 그것도 주권이라는 정의니까요. 개방 진영의 확산 전략이 우리에게 위협이면서 동시에 지름길인 이유입니다.

어느 쪽이 이길지는 저도 모릅니다. 숫자로는 개방 진영이 압도적인데, 정책은 숫자보다 안보 논리를 쥔 쪽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지요. 게다가 개방과 반규제라는 수사를 베이징도 똑같이 쓰고 있어서, 미국 산업계의 주장이 경쟁국 프레임과 겹쳐 보이는 묘한 상황까지 겹쳤습니다.

다만 우리가 준비할 건 어느 쪽이 이길지 맞히는 일이 아닌 듯합니다. 미국이 닫으면 국산 모델 값이 오르고, 열면 국산 모델 값은 내려도 국내 데이터와 인프라 값은 그대로 남습니다. 5000만명의 사용 기록, 공장의 공정 데이터, 국내에 세워질 데이터센터. 이건 어느 세상에서도 남의 것이 되지 않으니까요. 자. 우리의 소버린 AI는 모델을 소유하는 전략인가요, 손님을 소유하는 전략인가요? 12월 전에는 답이 나와야 할 텐데 말입니다. 당연히, 나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