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릴 엄두가 안 나네“…한 달째 백화점 마비시킨 ‘이 빵’[이설의 한입 스토리]
우리가 삼키는 모든 것에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식재료의 탄생과 변화, 맛에 얽힌 기억과 감정들을 들여다봅니다.
“사람들이 왜 모여 있어요? 뭐 하는 곳인가요?”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이 매장 주변을 둘러보다 기자에게 물었다. “도넛을 파는 곳”이라고 하니 “줄 서는 도넛이라니 궁금하긴 한데, 기다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라며 발길을 돌렸다.
22일 서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지하 1층 스위트파크. 지난달 30일 문을 연 ‘아임도넛(I’m donut)’ 매장 앞에 70~80명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업 시작 시간인 오전 10시부터 물건이 동나는 오후 4시 전후까지 비슷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전국구 디저트 브랜드가 총집합한 스위트파크에서 대기 줄은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한 달 내내 100여 명에 가까운 인원이 종일 진을 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아임도넛은 일본 후쿠오카에서 2022년 출발한 브랜드다. 일본 스타 셰프인 히라코 료타의 베이커리 브랜드 ‘아맘다코탄’의 스핀오프 격 브랜드로, 일본에 ‘나마도넛(생도넛)’ 열풍을 일으켰다. 국내 매장은 3곳이다. 지난해 9월 성수에 1호점, 올해 5월 홍대에 2호점, 그리고 지난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3호점을 열었다.
아임도넛에는 음료 메뉴가 없다. 오로지 도넛만 판다. 3호점 매장에 들어서니 도넛 30여 종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다. 1시간 넘게 기다려 입장한 고객들은 앞사람 뒤를 따르며 신중히 도넛을 골라 담았다. 형형색색 도넛으로 꽉 찬 쟁반이 차례로 계산대에 올랐다. 가격은 개당 2000원대부터 5000원대까지다. ‘아임도넛 오리지널’, ‘생 프렌치 크룰러’, ‘더블 초컬릿’ 등이 인기 메뉴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한 40대 여성 고객은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라며 “반죽이 가볍고 건강한 맛이라 ‘도파민 폭발용 디저트’와는 다른 느낌이다. 빵 대용으로 먹으려 기본 라인으로 골라 담았다”라고 했다. 일본에서 아임도넛을 맛본 적이 있다고 밝힌 30대 여성 고객은 “국내 3개 지점을 모두 방문했다. 각 매장의 콘셉트와 갖추고 있는 메뉴가 조금씩 달라 오픈런을 하는 편”이라고 했다.

진열대와 연결된 오픈 주방에서는 직원 10여 명이 쉴새없이 반죽을 만들고 도넛을 튀겨내고 있었다. 반죽, 숙성, 발효, 모양 만들기, 굽기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캇에 제조 파트 직원만 20여 명에 달한다. 강준현 아임도넛 이사는 “생도넛은 천연 발효종으로 14시간 이상 저온 숙성해 만든다. 튀길 때도 기름을 과하게 흡수하지 않아 맛이 담백하다”라면서 “생도넛은 기존 도넛과 모양은 같지만카테고리는 다른 셈”이라고 했다.

한국식 도넛의 기원은 1970년대 시장에서 팔던 전통 꽈배기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 이후에는 동네 제과점을 중심으로 찹쌀도넛이 큰 사랑을 받았다. 2000년대 전후로는 미국식 프랜차이즈가 잇따라 상륙하며 서구식 도넛 시대가 열렸다. 1994년 진출한 ‘던킨도너츠(던킨)’는 외환위기 당시 유망 창업 아이템으로 주목받으며 매장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2004년에는 ‘크리스피크림’이 입에서 녹는 ‘오리지널 글레이즈드’를 앞세워 2차 도넛 붐을 주도했다.
2010년대 들어서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웰빙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기름에 튀기고 당분이 많은 도넛의 인기는 다소 시들해졌다. 마카롱, 타르트, 크루아상 등 새로운 디저트가 인기를 끌면서 경쟁도 치열해졌다. 프랜차이즈 위주의 단순한 제품 구성도 한계로 지적됐다.

최근 도넛 열풍은 ‘취향’과 ‘식감’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된다. 장시간 발효한 생도넛부터 모찌 도넛, 이스트 도넛, 전통 앙금 생도넛까지 각자의 입맛에 맞는 도넛을 찾아 즐기는 소비자가 뚜렷하게 늘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한국식과 서구식을 넘어 일본 생도넛까지 가세하며 다채로운 ‘도넛 신(scene)’이 형성됐다”며 “이러한 역동적인 시장 상황 자체가 소비자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디저트 트렌드가 아시아로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에서는 새로운 특징을 가미한 도넛이 시장을 선도할 때마다 도넛 붐이 일었는데, 지난해 5차 붐의 동력은 나마도넛이었다. 일본 내에서 아임도넛, ‘블랭킷도넛’, ‘포테리 베이커리’ 등 수제 생도넛을 내세운 브랜드만 10여 개에 달한다.
이 교수는 “도넛을 비롯한 디저트의 유행과 인기는 국내 디저트 시장의 성장을 보여준다. 특히 잇따른 ‘디저트 오픈런’은 특정 브랜드에 팬덤이 형성되는 일본의 소비 문화를 닮아가는 모습”이라고 짚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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