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답안지도 AI가 채점…美 100개 대학 뚫은 韓 스타트업 [빛이나는비즈]

류석 기자 2026. 7. 2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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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점 시간 최대 10분의 1로 단축
출시 1년여 만에 300만 건 처리
메이필드 등서 100억 시드 투자
채점 넘어 학습·취업 플랫폼 목표
펜시브 플랫폼 작동 원리와 사용하는 교수들들의 피드백. 사진=펜시브 홈페이지

미국 대학은 시험이 끝난 뒤 교수와 조교들이 며칠씩 답안지를 붙잡고 있는 일이 흔하다. 수학 풀이 과정이나 서술형 답변은 정답만 확인해서는 점수를 줄 수 없어 답을 내는 과정을 모두 살펴봐야 한다. 학생마다 다른 필체와 풀이 방식을 읽고 채점 기준표에 따라 감점 항목까지 일일이 골라야 한다.

25일 벤처 업계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의 한인 창업 스타트업인 ‘펜시브’는 이 같은 대학들의 ‘채점 지옥’을 인공지능(AI)으로 해결하고 있다. 펜시브 플랫폼은 교수나 조교가 학생 답안지를 스캔하고 채점 기준을 설정하면 AI가 답안을 분석해 점수와 감점 사유를 제시한다. 채점 기준표의 2번과 5번 항목을 충족하지 못했다면 단순히 총점만 계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기준에서 몇 점이 깎였는지까지 짚어준다.

펜시브는 지난해 2월 제품을 출시한 뒤 약 1년 4개월 만에 미국 대학 시장에 빠르게 파고들었다. 현재 하버드대와 UC버클리, 컬럼비아대 등 미국 명문대를 중심으로 100개가 넘는 대학에서 교수와 조교 1000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다. 누적 채점 건수는 300만 건을 넘어섰다. 사람이 직접 답안지를 채점할 때보다 시간을 최대 10분의 1로 줄였다.

해당 제품을 대학에 공급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장벽은 정확도였다. 교수들은 AI가 사람만큼 일관되게 점수를 매길 수 있을지 의심했다. 펜시브는 이전 학기에 사람이 채점한 결과를 가린 뒤 AI가 같은 답안지를 평가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성능을 검증했다. 회사가 공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 채점 결과가 교수들이 매겼던 점수와 거의 일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윤석 대표가 지난 7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펜시브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류석 기자

양윤석 펜시브 대표는 “대학 채점은 단순히 최종 점수가 비슷한지가 아니라 어떤 채점 기준을 적용해 몇 점을 깎았는지까지 같아야 한다”며 “많은 노력을 들여 제품을 설계한 결과 특정 영역에서는 사람보다 더 일관된 정확도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펜시브의 경쟁력은 채점에서 끝나지 않는다. 교수가 강의 노트와 숙제, 기출문제 등을 올리면 AI가 해당 수업의 전담 조교처럼 작동한다. 학생은 시험 결과를 빠르게 받아볼 수 있고 틀린 문제와 취약한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제공받는다. 범용 챗봇이 일반적인 답을 내놓는 것과 달리 해당 강의의 자료와 평가 기준을 바탕으로 개인화된 피드백을 주는 것이 장점이다.

펜시브는 빠르게 대학 고객을 확보한 덕분에 올 초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VC) 메이필드가 주도한 약 100억 원 규모 시드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또 세콰이어캐피털과 앤드리슨호로위츠(a16z)의 스카우트 펀드, 국내 VC인 베이스벤처스도 자금을 보탰다. 미국 VC들은 투자에 앞서 펜시브를 실제 사용하고 있는 교수들에게 전화를 돌려 제품의 효용과 지불 의사를 집중적으로 확인했다. 양 대표는 “AI 시대에는 겉으로 보이는 매출보다 고객에게 실제 가치를 주는 매출인지가 중요해졌다”며 “미국 투자자들은 고객 인터뷰를 통해 제품이 대학 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한지 검증했다”고 설명했다.

펜시브는 양 대표와 김민준 최고기술책임자(CTO)가 공동 창업했다. 양 대표는 AI 교육기업 뤼이드(소크라AI)에서 병역특례로 근무한 뒤 장학재단인 관정재단으로부터 전액 장학금을 받아 UC버클리에 진학했다. 대학에서 대형 강의의 비효율을 직접 경험한 것이 창업의 출발점이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펜시브 사무실의 모습. 사진=류석 기자

양 대표가 처음부터 미국 창업을 택한 것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서다. 그는 “역사에 남을 만한 기업을 세우려면 가장 어려운 시장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미국에서 성공한 제품은 글로벌 표준이 될 수 있지만 한국에서 성공한 뒤 미국으로 넘어가는 것은 훨씬 어렵다”고 말했다.

물론 실리콘밸리 창업에는 높은 비용이 뒤따랐다. 두 창업자는 돈을 아끼기 위해 약 1년 반 동안 샌프란시스코의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사무실로 썼다. 작은 거실에 책상 6개를 놓고 직원들에게 아파트 열쇠를 나눠줬다. 시드 투자를 받은 뒤에야 별도의 사무실을 마련했다. 현재 직원은 10명 안팎으로 미국인과 인도인 등 다양한 국적의 인재를 채용하고 있다.

펜시브가 그리는 최종 모습은 단순한 채점 프로그램이 아니다. 대학의 학습과 평가, 피드백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연결하고 장기적으로는 학생들이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익혀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구상이다. 양 대표는 “AI가 주니어 인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과거 주니어가 맡았던 역할을 바꾸고 있다”며 “대학 교육이 산업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간극을 메우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기관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류석 기자 ryupr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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