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할인 ‘땡처리’서 금맥 캐는 청년… “1700조원 글로벌 시장 노려”[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재고 판매자와 구매상 단번에 연결… 자율형 AI로 처리 비용-시간 단축
아마존서 물건 팔다 반품으로 고통… 셀러들의 ‘불치병’임을 알고 사업화
미국서 시작해 글로벌로 확대 중… “도매 거래 플랫폼으로 진화시킬 것”

● 반품과 재고품의 거대한 세계
글로벌 무역 생태계에서 반품과 장기 재고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김 대표는 “미국에서만 발생하는 연간 반품액이 소매가로 1450조 원에 달한다”고 했다. 케이존은 세계 최대 상거래 플랫폼 아마존의 반품 처리 공식 파트너(25곳 중 1곳)로 등록해 재판매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아마존뿐만 아니라 월마트, 타겟과 같은 초대형 유통 업체는 물론, 수요 예측에 실패해 창고에 물건이 가득 쌓인 제조기업이나 재고 처리에 골머리를 앓는 제3자 물류 창고업자들로부터도 물품을 공급받는다. 포장만 뜯긴 새 제품부터 약간의 흠집이 있는 제품, 유통기한이 임박한 재고까지 제품의 상태는 천차만별이다.
이렇게 모인 막대한 양의 재고는 저렴하게 사들이길 원하는 세계의 크고 작은 도매상들에게 컨테이너 단위로 팔려나간다. 물론 이는 케이존이 새롭게 개척한 영역은 아니다. 시쳇말로 ‘땡처리’ 비즈니스의 역사는 길다. 케이존의 차별점은 전화와 이메일, 수작업 장부에 의존하던 거대하고 낡은 산업의 작동 방식을 최첨단 AI 기술로 뜯어고쳐 가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런데 기존 시장에서는 재고품을 가진 기업은 구매상 탐색에 어려움이 있고, 반복적인 협상과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할 여력도 적다. 그 사이 재고품의 가치가 하락할 위험도 있다. 반대편의 구매상들은 원하는 가격과 물량, 결제방식의 재고를 탐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판매자가 믿을만한 대상인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았다. 거래 실패율은 95%에 달했다.
케이존이 개발한 글로벌 재판매 자동화 플랫폼 리맥스(REMEX)는 일관성 없이 흩어진 막대한 반품 및 재고품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최적의 구매상을 찾아내 자동으로 매칭한다. 현재 이 플랫폼에는 세계 8500여 사의 구매상들이 등록돼 있다.
리맥스의 AI는 구매상의 과거 거래 이력과 선호도를 분석해 그들이 가장 원할 만한 품목, 지역, 최소 주문 수량에 맞춰 최적으로 연결한다. 평소에는 구매상과의 친밀도 강화를 위해 안부를 묻는 등 대화를 나누고, 바이어의 구체적인 현황이나 욕구도 파악해 둔다. 기존 방식으로는 최대 4주가량 걸리던 소요 기간을 11일로 단축했다. 케이존은 작년까지 미국에서 2300만 개의 물품을 성공적으로 재판매했다.
케이존은 이를 위해 ‘도매 거래 특화 거대 언어 모델’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는 사람의 개입 없이 자율형 AI가 직접 구매상과 가격을 협상하고 물류 배차까지 완료하는, 전체 거래를 자동화할 계획이다. 케이존은 자사의 자율형 AI 솔루션을 서비스형 에이전트(AaaS)로 만들어 구독료(월 129달러)를 받는 수익화 사업도 시작했다. 현재는 미국, 캐나다, 두바이, 폴란드, 파나마 등에서 31개 기업이 사용 중이다.
케이존은 2023년 5월부터 사업을 시작해 올해 4월까지 만 3년간 약 230억원의 누적 매출을 올렸다. 작년에는 1억4000만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 세 번의 좌절과 뚝심의 미국행
김 대표는 미국 버지니아주 리버티 대학교에서 국제무역학을 전공한 뒤 고향 충북 청주의 부모님 사무실 구석 자리에서 창업의 싹을 틔웠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메고 축제장에서 사진을 찍어 주는 길거리 장사를 하는 등 세 번의 사업자 경험이 있다. 성공도 실패도 아닌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성장했다. 네 번째 창업인 케이존의 사업 모델은 그 전에 자신이 직접 아마존에서 판매사업을 하다가 나왔다.
김 대표는 미국 아마존을 통해 창문 블라인드와 비데 등 다양한 상품을 수출했다. 집집마다 창문이 많고, 규격이 다른 미국 시장에서 1인이 구매하는 물량이 많은 블라인드는 제법 쏠쏠한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설치를 해보니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며 반품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문 제작해 보낸 것인데 반품으로 돌아오니 끔찍한 재앙이었다. 비데도 반품 문제가 심각했다. 한 번이라도 물 호스를 연결한 제품은 재판매가 불가능했다. 비싼 배송비를 들여 미국까지 보낸 멀쩡한 제품들이 속수무책으로 폐기되며 회사의 이익을 모조리 갉아먹는 피 말리는 상황이 반복됐다.
벼랑 끝에 몰린 그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미국과 한국의 다른 글로벌 셀러들을 무작정 찾아 나섰다. 놀랍게도 그가 만난 모든 셀러들이 상품 카테고리만 다를 뿐 자신과 똑같이 반품과 악성 재고의 늪에서 끔찍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심지어 대기업조차 해외 반품 재고만을 전담하는 부서나 직원이 없어 창고에 물건을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자신이 겪은 뼈아픈 고통이 세계 모든 판매자가 앓고 있는 거대한 불치병임을 확신한 그는 곧장 짐을 싸서 제3자 물류 창고가 밀집한 미국 텍사스로 건너가 창고를 임대하고 발이 부르트도록 현지 도매상들을 개척하며 재고 처리 사업을 본격화했다.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위협 요소도 적지 않다. 대면 거래와 끈끈한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글로벌 도매상들의 보수적인 성향은 AI 자동화 도입에 있어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자율형 AI가 대규모 컨테이너 단위의 가격 협상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치명적인 환각 현상이나 오작동을 일으킬 경우 막대한 손실로 직결될 리스크도 있다. 케이존은 2027∼8년경 자동화 과정을 실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더 완벽한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 올해 AI 전문 인력들을 대거 보강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 분야에서 거래 자동화를 이루게 되면 글로벌의 모든 거래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며 “케이존을 기업 간 도매 거래의 세계적인 플랫폼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했다.

글·사진 성남=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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