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인 근로자 年 6조 본국 송금…“단기체류 지역 도움 안돼”
광역지자체 예산과 맞먹는 수준
농어촌·중소기업 인력난 메우지만
국가간 임금격차·무상 주거 영향
지역 내서 돈 안쓰고 해외로 보내
정주여건 개선 등 주민화 작업 필요

고용허가제(E-9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가 지난해 본국 등 해외로 송금한 돈이 약 6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들은 지방 농어촌과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메우며 생산 현장을 떠받치고 있지만 소득의 절반 이상을 해외로 보내 지역 내 소비 효과는 제한적인 만큼 고용허가제가 노동력 제공뿐만 아니라 국내 경제에 지속적으로 기여하는 제도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국가데이터처와 법무부의 ‘2025년 이민자 체류 실태 및 고용조사’에 따르면 고용허가제 외국인 근로자가 총소득 가운데 본국 등 해외로 송금하는 비중은 56.5%로 전체 외국인 평균인 25.5%의 두 배를 웃돌았다. 송금액 대부분은 본국에 거주하는 가족과 친인척에게 보내는 돈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고용허가제 체류 인원은 약 32만 1000명이다. 이들의 월평균 소득 약 273만 원 가운데 56.5%인 154만 원을 매달 해외로 보낸다고 가정하면 연간 송금액은 약 5조 9400억 원에 이른다. 외국인 근로자가 중소기업과 농어촌의 생산에는 기여하면서도 소득의 상당 부분이 본국으로 빠져나가 지역 소비로 이어지는 효과는 제한적인 셈이다.
높은 송금 비중에는 한국과 주요 송출국 간 임금 격차와 낮은 주거비 부담이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월 최저임금 약 209만 원은 캄보디아 등 주요 송출국 평균 임금의 8~10배 수준이며 E-9 근로자의 76.7%는 사업주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거처를 무상 제공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본질이 송금 자체가 아니라 국내 소비와 정착을 유도하기 어려운 제도에 있다고 지적한다. 고용허가제는 원칙적으로 3년간 취업을 허용하고 재고용 절차를 거쳐도 체류 기간을 최대 4년 10개월로 제한한다. 귀국 시점이 정해져 있는 만큼 한국에서 자산을 형성하기보다 본국으로 돈을 보내 생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도 외국인 근로자의 생활 기반이 본국에 머무는 모습이 나타난다. 경기 포천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A 대표는 최근 캄보디아 국적 직원으로부터 “고향에 땅을 사야 한다”며 한 달간 휴가를 요청받았다. 다른 외국인 직원도 본국에서 집을 계약해야 한다며 한 달 넘는 휴가를 요구했다. 체류 기간이 제한되고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장기간 생활하기도 어려운 만큼 자산과 가족 기반을 본국에 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A 대표는 “가족과 생활 기반이 모두 본국에 있다 보니 한국에서 숙련도가 높아져도 결국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한국어와 기술을 익힌 근로자가 체류 기간 만료로 귀국하면서 인력 운용 부담이 커진다고 호소한다. 경기 화성의 제조업체 B 대표는 “제 몫을 할 만하면 고국으로 돌아가는 구조”라며 “성실하게 일한 근로자에게는 가족을 데려와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노동 전문가들은 장기 근속자에게 가족 동반과 체류 연장 기회를 부여하는 등 고용허가제를 단계적으로 정주형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다.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국에 온 근로자의 송금 자체를 문제 삼는 시각은 적절하지 않다”며 “가족과 분리된 단기 체류 구조가 노동생산성과 지역사회 통합 측면에서 바람직한지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체류 기간 연장과 가족 동반 허용만으로 외국인 근로자가 곧바로 지역 주민으로 정착할 수 없는 만큼 언어와 문화 차이에 따른 갈등, 외국인 자녀의 학교 적응, 주거지 분리, 의료·교육·복지 수요 증가 등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커뮤니티 공간과 노동권 교육, 갈등 조정 기구 등을 마련해 외국인 근로자가 지역 주민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종곤 고용노동전문기자 ggm11@sedaily.com신서희 기자 shsh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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