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도 가성비 시대… Z세대 덮친 '프렌드플레이션'

정주원 기자 2026. 7. 2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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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 10명 중 9명이 친구를 만나 사용하는 비용이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고물가와 소득 정체가 소비를 넘어 인간관계까지 바꾸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우먼센스] 고물가가 Z세대의 친구 관계까지 바꾸고 있다. 외식비 등 생활물가 부담이 커지면서 친구를 만나는 횟수를 줄이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친구를 뜻하는 '프렌드(friend)'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프렌드플레이션(Friendflation)'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구인·구직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Z세대 10명 중 9명은 식사비와 커피·디저트값, 술값 상승으로 친구를 만나는 비용 자체가 부담된다고 답했다. 지속되는 고물가와 청년층의 소득 정체가 맞물리면서 소비 행태는 물론 관계 맺기 방식까지 변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현상은 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 총무성의 1월 가계조사에 따르면 교제비는 전년 동월 대비 14.7% 감소했다. 특히 34세 이하 1인 근로자 가구의 소득 대비 교제비 비중은 2019년 2.2%에서 2025년 1.3%로 줄었다. 미국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외식 물가가 누적 20~30% 이상 상승했으며, 일부 도시에서는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나 술자리 비용이 1인당 100달러를 넘는 것이 일상화됐다. 일부 사례에서는 150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Z세대 93%가 겪는 '프렌드플레이션'

Z세대는 식사비(78.4%)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고, 생일·기념일비(25.8%)도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0일 알바천국이 Z세대 6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93%가 물가 상승으로 친구와의 만남이나 모임 비용이 부담스러운 적 있다고 답했다.  그들은 식사비(78.4%)를 부담의 큰 이유로 꼽았다. 이어 커피·디저트비(40.1%), 주류비(29.7%), 생일·기념일비(25.8%) 순으로 부담을 느꼈다.  

비용 부담은 만남의 감소로 이어졌다. 부담을 느꼈다고 답한 응답자 중 88.8%는 친구와의 만남을 줄였다고 답했고, 친구와 만남 외 모임 횟수를 줄였다는 응답(83.9%)도 많았다. 

친구와의 만남에서 부담을 느끼는 비용은 얼마일까. 5만원 이상(33.4%)이 가장 많았다. 만남 1회당 지출액이 3만원에서 5만원 구간에 집중된 점을 고려하면 Z세대 상당수는 비용에 부담을 체감하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친구 관계에서 가장 부담되는 유형으로는 비싼 맛집만 찾는 친구(56.4%, 복수응답), 술자리를 선호하는 친구(33.3%), 자주 만나자고 하는 친구(31.3%), 여행을 자주 제안하는 친구(20.8%), 생일이나 기념일을 중요하게 챙기는 친구(19.1%) 순으로 꼽았다. 

직장인 H씨(25)는 "주말에 친구들과 제부도에 가기로 했다. 낮부터 함께 노는 건 지출이 부담돼 '낮엔 다른 약속이 있어 저녁에 합류하겠다'고 했다"며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비용 지출이 걱정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직장인 K씨(25)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혼자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면 한 끼에 2만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쓴다. 친구와 만나면 각자 비용을 부담해도 5만 원은 기본으로 쓴다"며 "돈이 부족할 땐 바쁘다고 둘러대고 약속을 잡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가장 부담되는 친구유형은 '비싼 맛집만 찾는 친구'가 (56.4%)로 1위를 차지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고물가·소득정체로 Z세대 사회적 관계 위축 

Z세대 사이에서 프렌드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이유는 생활물가 상승이 주요 원인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김밥과 떡볶이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1%, 4.0% 상승했다. 짜장면과 짬뽕 가격 역시 3%대 후반 오르며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3.0%)을 웃돌았다. 여가 활동에 필요한 비용 부담도 커졌다. 오락·문화 부문 물가는 4.6%, 교통비는 10.8% 상승했으며 음식·숙박 물가도 2.7% 올랐다. 친구를 만나 식사하고 카페에 가거나 영화를 보고 이동하는 일상적인 모임 비용이 전반적으로 상승한 것이다. 

또 청년층은 취업 시기가 늦어지면서 소득 정체가 일어나는 시기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2년 반 동안 청년층 취업 시장은 여전히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실질임금 증가 폭은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가는 상승하고, 소득은 정체되는 상황에서 주거비와 교육비, 의료비, 통신비 등 필수 지출은 쉽게 줄이기 어렵다. 결국 한정된 소득 안에서 조정할 수 있는 영역은 친구와의 식사, 카페 이용, 술자리, 여행 등 관계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단순한 친목모임보다 운동이나 취미 활동 등 효율적인 활동 중심의 만남을 선호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김승욱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현재 경제 상황은 성장은 정체됐지만 물가는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다"라며 "청년들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부담이 훨씬 크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약 2년 전부터 청년 고용률은 하락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소비를 줄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또 전세 사기, 전세 매물감소 등으로 월세 살이를 하는 청년들이 늘어났다. 즉 주거비 부담도 커졌다는 의미다. 주거비 부담이 커진만큼 다른 소비를 할 여력이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줄이는 지출은 관계재 소비다. 김 교수는 "현재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 드는 소비인 '관계재'는 사치가 됐다"며 "소득은 줄고 월세 부담은 커진 상황에서 식비 같은 필수 지출은 줄일 수 없기 때문에, 관계재 소비는 후순위로 밀려난다"고 말했다. 

프렌드플레이션에 따라 Z세대의 모임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이른바 '핫플'로 불리는 바(Bar)나 레스토랑에서 만났던 과거와 달리 집이나 공원 등 비용 부담이 적은 공간에서 만나는 '홈 모임'이 늘어나는 추세다.

모임의 목적도 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친목을 다지기 위한 만남보다는 운동이나 독서, 취미 활동 등 특정 목적을 가진 모임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런 변화를 전문가들은 비용 효율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Z세대의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관계 유지를 위한 만남보다 목적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관계에 시간과 비용을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프렌드플레이션은 소비 습관의 변화가 아니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비용 계산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물가와 소득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한, Z세대의 '가성비 관계 맺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정주원 기자 simple1@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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