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트레일 백패킹 금지 구간을 걷다 [동서트레일 대전 구간 上]

서현우 2026. 7. 24.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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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구간 르포
21구간 초입 삼정생태공원에서 울창한 벚나무 그늘이 드리운 데크를 따라 대청호를 감상하며 걸음을 옮긴다. 

전국 유일의 백패킹 걷기길이 될 동서트레일에서, 백패킹을 못 하는 구간이 있다. 대전 구간이다. 태안에서 시작해 서산과 당진을 거쳐 홍성으로 내려온 동서트레일은 정동 방향으로 직진하는데 갑자기 대전 구간에 들어서면 장애물에 막힌 듯 남진해서 우회해 다시 동쪽으로 흐른다. 이 장애물이 바로 대청호다.

대청호는 대전 시민들의 귀중한 상수원이기에 전체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철저하게 묶여 있다. 캠핑은커녕 펜션 신규허가도 나지 않고, 음식점 또한 마찬가지다. 현재 영업하는 가게들은 대부분 운영하는 이가 옛 수몰민들이거나 그 후손인 덕에 가능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동서트레일 대전 20~22구간은 현재까지도 백패킹 야영장 부지를 선정하지 못하고 있고, 특별한 반전이 없는 한 내년에 개통돼도 백패킹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새다.

향후 일시종주에 도전하는 백패커들 입장에선 굉장히 난감할 터다. 구간이 길어 한 번에 통과하기도 어렵고, 도중에 시내로 들어가 숙소를 잡자니 일시종주의 의미가 퇴색된다. 전체 개통 전까지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로선 대전 구간은 박배낭 없이 가볍게 걷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갈전동 생태습지공원. 외모는 예쁜데, 하는 일은 궂다. 비감오염 저감시설이다.

동서트레일에 그늘 드리우는 전성기 벚나무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게 대전역에 섰다. 동행은 아웃도어 마니아 윤용만, 이나경씨. 대청호오백리길 모니터링 요원인 이호영씨와 대전 로데오산악회 홍수표 전 회장이 길 안내를 맡아 줬다.

"동서트레일 21구간은 대청호오백리길을 따르다가 계족산 대전 둘레산길로 이어집니다. 힘든 건 없어요. 수변길과 마을길, 임도와 숲길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죠. 시점인 삼정동은 강씨, 이씨, 민씨 3개 성씨가 모여 살던 부락이라 이름이 삼정동입니다."

그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몇 걸음 걷자 곧장 민평기 가옥이 등장한다. 고종 때 승지를 지낸 민후식이 처음 지은 건물로, 대청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건물을 그대로 옮긴 종갓집이다. 지금도 후손들이 살고 있어 조용히 외관만 구경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길은 대청호를 꼭 붙잡고 이어진다. 이따금 차도 변을 따라 걷는 구간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옆으로 따로 낸 데크길을 이용할 수 있어 불편을 최소화했다. 동서트레일로 지정되자 더더욱 차도 이용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에 신규 데크 공사도 현재 진행 중이다.

울창한 벚나무가 남긴 버찌열매가 데크 위에 낭자하다. 이호영씨는 "옆에 보이는 도로는 1970년대 말에 닦은 것인데 그때 심은 벚나무가 지금 전성기의 나이가 되면서 울창해졌다"며 "이 벚나무들이 드리우는 그늘 덕에 대청호오백리길이 한층 쾌적해졌다"고 설명했다.

길 위로 멀리 산등성이에 있는 밤나무가 흩뿌린 꽃향기가 끝자락만 살짝 남기는 정도로 감돈다. 벚나무 터널을 통해 편안한 수변길을 걷다 보니 진도가 빠르게 나간다. 한 굽이를 돌 때마다 예쁘게 조성된 생태공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까이 다가가니 '비감오염 저감시설'이라 적혀 있다.

"예쁘라고 만든 건 줄 아셨죠? 말하자면 정화조입니다. 수자원공사가 만든 습지인데 논밭과 도로에서 나온 각종 오염물질들이 대청호로 직접 흘러들어가기 전에 이곳에서 한 번 여과될 수 있도록 구성을 짰다고 해요."

또 하나 이면의 향토사를 들려 준다. 과거 이런 비감오염 저감시설이 조성돼야 할 공간에 무단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단다. 어떨 때는 당국이 토지를 매입해서 보상해 줬는데 상수원보호구역이라 딱히 땅에 뭐가 들어서는 것도 아니니 노는 땅이라고 또 농사를 지어서 다툼이 있었다. 결국 수자원공사가 칼을 빼들었다. 방법은 대청호 수위를 한껏 올려서 농사지은 땅을 침수시켜 버리는 것. 몇 번 이런 일이 있자 농사짓던 사람들이 사라졌고, 거기에 현재의 생태공원들이 생겨서 대청호가 한층 더 깨끗해질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자기 집은 못 옮겨도 조상 무덤은 옮긴 수몰민들

윤슬에 빛나는 대청호는 농번기라 한껏 말라 있다. 좁아진 호수 탓인지 호숫가까지 잉어가 나와서 뻐끔거린다. 이씨는 "대청호는 낚시가 전면 금지돼 있다. 단, 예로부터 대청호에서 어업을 생계로 했던 사람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조업권이 주어진다. 그게 10명 이하로 알고 있다"고 덧붙인다.

"이렇게 수위가 내려갈 때면 수몰민들이 옛 자기 집터의 주춧돌을 보러 오곤 했답니다. 또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런 얘기도 있었어요. 옛 마을의 모습이 선명한 수몰민들은 예전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던 위치를 기억해 뒀다가 거기서 낚시를 했대요. 물고기들이 기가 막히게 잘 잡힌답니다."

대청호 안에 학교 4개가 담겨 있다. 100년 역사의 학교들이란다. 물론 그 역사가 완전 끊기지는 않았다. 물 밖으로 이전해서 지금도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동명초등학교. 계룡건설 이인구 회장이 이 학교 출신이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무덤이 참 많은 걸 볼 수 있어요. 대청댐이 생기기 전에는 지금 여기가 말하자면 동네 뒷산 중턱이었거든요. 그래서 원래도 좀 있었는데, 수몰이 이를 더 격화시켰죠. 자기네 집은 수몰돼도, 조상 무덤은 지키는 것이 우리들 마음이잖아요? 그래서 무덤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어떤 무덤은 잡초가 바짝 깎이고 깨끗한 형체를 유지하고 있지만, 어떤 건 한참 버려진 듯 방치된 모습이다. 50년이라는 세월이 만들어낸 간극이다.

이현마을은 정겨운 벽화와 조형물들로 골목이 꾸며져 있다.

이제 이현 마을로 들어선다. 망초꽃이 흐드러지게 핀 부지에 호박축제를 열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아쉽게도 이제 축제는 중단됐다고 한다. 뒷산 모양이 둥글고 넓적한 배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현이다. 마을 골목길에는 귀엽고 추억어린 벽화와 전시물들이 한가득 있다. 각 작품마다 자세한 해설이 적혀 있어 그 의미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여기서부터 대전둘레산길로 가기 위해서 길을 틀어야 합니다. 대청호오백리길은 2구간으로 이어지고요."

이제 동서트레일 본연의 길이다. 마을길을 따라 두메마을로 넘어간다. 바로 앞이 호수인데 깊은 산골마을에나 붙는 '두메'란 이름이 생경하다. 수몰이 만든 아이러니다. 이현동 느티나무 보호수가 들어서 있던 곳에서 이제 계족산(424m)으로 올라붙는다. 굉장한 크기를 자랑했던 이 느티나무는 지난해 죽어 올해 봄에 잘랐다. 커다란 밑동에서 옛 영광을 더듬어본다.

동서트레일은 마냥 대청호만 따라 걷지 않는다. 매력적인 숲길과 마을길을 번갈아 걸으며 이어진다.

장동마을로 가는 메타세쿼이아 숲길 하이라이트

이 구간이 개인적인 21구간 하이라이트다. 메타세쿼이아가 가로수처럼 임도 옆으로 도열했는데 그 높이가 수십m에 이른다. 장관이다. 산바람이 맞바람으로 시원하게 불어 내려 맺힌 땀방울 끝을 톡톡 쓸어 담아 떨궈낸다. 고개에 이르자 붉은빛을 띤 토양이 보인다. 계족산 황톳길이다. 하지만 만남은 잠깐, 일단은 장동으로 먼저 내려가야 한다.

​계족산 황톳길 안내판.장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거대한 메타세쿼이아가 양쪽으로 도열해 장관을 이룬다.

"동서트레일은 장동마을을 통해서 장동산림욕장으로 가도록 돼 있더라고요. 그쪽이 황톳길이 가장 잘 있긴 합니다. 늘 관리가 잘돼 있죠."

장동마을은 과거 미군부대 주둔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보안을 위해 마을에서 대전시내로 나가는 길도 단 하나뿐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가을에는 코스모스 천지로 변하고, 봄여름에는 청보리 밭이 마음을 사로잡는 편안한 마을이 됐다.

보리밭을 지나 넓은 주차장과 공원이 조성된 장동산림욕장을 오른다. 평일인데도 주차장에 버스가 줄을 이어 들어와 수십 명씩 사람을 토해 낸다. 등산복, 청바지, 치마, 양복 등 패션이 각양각색인데, 공통된 드레스코드가 하나 있다. 바로 맨발. 대전 계족산 명물 황톳길 14.5km의 시점이다.

계족산 황톳길 안내판.

"2006년 선양소주 조웅래 회장님이 맨발로 걸은 뒤 숙면을 취하고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을 하신 이래로 매년 10억 원을 들여 2,000여 톤의 황토를 구해서 깔고, 뒤집고, 물을 뿌려 길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벌써 20여 년이네요. 지금도 변함없이 지원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매년 100만 명 이상 찾는 맨발걷기 성지가 됐죠."

황톳길만 좋은 것이 아니다. 편의시설도 많다. 계족산 중턱을 한 바퀴 도는 황톳길을 따라서 화장실과 세족장이 줄줄이 들어서 있다. 또 황톳길 입구에는 세족장은 물론 신발을 보관할 수 있는 신발장도 있다. 물론 분실의 염려도 있고 공간이 제한적이라 대부분은 손에 신발을 들고 살금살금 맨발을 즐긴다. 동서트레일을 따라 장거리를 걸었다면 이 황토에서 발을 한 번 쉬어주는 것이 좋겠다.

동서트레일은 마냥 대청호만 따라 걷지 않는다. 매력적인 숲길과 마을길을 번갈아 걸으며 이어진다.

절고개 넘자 달라지는 숲

동서트레일 이정표를 놓쳤다고 해도, 황톳길만 놓치지 않으면 된다. 이제 이 길을 따라서 추동을 향해 나아간다. 굴참나무와 리기다소나무, 낙엽송 군락이 번갈아가며 나오는 숲이 울창하다. 숲은 짙고, 대전 시내는 멀리 가라앉아 있으니 평균 해발고도가 300여 m인데 마치 어디 높은 산의 중산간지대를 걷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황톳길이 다소 지루하다면 바로 머리 위로 계족산성이 있는 능선을 타는 것도 방법. 단 올해는 권하고 싶지 않다. 동서트레일상에서 오르는 길들은 공사 중이라 전부 막혀 있다. 따라서 북쪽 메타세쿼이아가 있던 두메마을 등산로부터 쭉 능선을 따라 걸어오거나 남쪽으로 빙 돌아서 올라갔다가 다시 되짚어 내려오는 방법밖에 없다.

편안한 임도 따라 길게 걷다가 황톳길과 결별하는 지점이 절고개다. 절고개에서 추동으로 내려서는 새로운 임도를 따른다. 산세가 서쪽과 동쪽의 분위기가 완연히 다르다. 서쪽은 완연한 동네 뒷산 느낌으로 사람들로 북적이고, 화장실도 많고, 심지어는 평일에도 아이스크림을 파는 행상인이 있을 정도인데 동쪽은 고즈넉하고, 쓸쓸하고 더 깊다. 머리 위의 나무도 아까시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같은 활엽수가 많았다가 동쪽으로 넘어서니 낙엽송, 소나무 등 침엽수로 달라진다.

절고개를 넘어 추동으로 내려서는 임도에는 멋진 대청호 전망대가 여럿 들어서 있다.

그 쓸쓸해진 만큼의 빈자리를 넘실거리는 대청호가 채워 준다. 대청호를 바라보기 좋은 전망대가 곳곳에 있다. 바로 앞에 조성된 인공섬은 취수장으로 그 너머 멀리 명상정원이 있다. 영화 및 드라마 촬영지로 곧잘 사용되는 곳이라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는 명소다.

성큼성큼 내려설 때마다 대청호의 수위가 눈높이로 차오른다. 곧 임도가 마을길로 연결되며 기나긴 21구간의 끝이다. 가이드를 맡아준 이들에게 직접 걸어본 소감과 당부의 말을 청해 봤다.

"동서트레일이 백패커들을 위한 길이잖아요? 한국 백패킹은 조금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특정장소에서 백패킹을 하려고 가는 문화죠. 그러니 바리바리 싸들고 가고, 많이 먹고, 쓰레기를 버리고, 용변을 아무데나 보죠. 그게 아니라 백패킹은 특정 길을 완주하고 싶은데 잘 곳이 마땅치 않으니 어쩔 수 없이 하는 문화여야 된다고 봐요. 동서트레일이 본연의 백패킹 문화가 정착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전 구간을 만만히 보면 큰 코 다치실 걸요? 상수원보호구역이라 잘 데도, 취사할 데도 마땅치 않고 쉴 펜션도 없어요. 편의점조차 만나기 어렵고요. 그러니 잘 준비해서 오셔야 합니다. 저희는 개통까지 열심히 대청호오백리길을 관리해서 멋진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준비해 둘게요."

하늘에서 본 계족산성. 향후 복원 공사가 완료된다면 동서트레일을 살짝 벗어나 다녀와도 좋은 명소다. 
 21구간 시점인 삼정생태공원. 

산행길잡이

동서트레일 21구간을 기존 걷기길로 개념화하자면 대청호오백리길 1구간 두메마을길을 따라서 가다가 계족산 황톳길을 통해 2, 3구간을 우회해서 4구간으로 내려서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따라서 대청호오백리길과 겹친다고 무턱대고 따라가기만 해선 안 된다. 이현동 생태습지에서 동서트레일 이정표를 따라서 장동으로 잘 넘어서는 게 길 찾기 포인트.

동서트레일 기점마다 세밀하게 붙어 있는 이정표 덕에 전반적으로 크게 길이 헷갈리는 곳은 없다. 단 모든 이정표와 안내판이 21구간 종점을 대청호오백리길 탐방지원센터 혹은 추동 탐방지원센터라고 돼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설치할 때만 해도 추동 경로당 건물에 탐방지원센터가 있었지만, 지금은 북쪽으로 1km 떨어진 건물로 이사 갔다.

교통

대중교통편이 무척 잘돼 있다. 실시간 도착정보도 네이버지도와 연동돼 정확하게 나온다. 먼저 21구간 시점인 삼정생태공원의 경우 달전리를 출발해 신탄진역을 거쳐 대청댐으로 가는 72번 버스가 하루 8회(05:40, 07:20, 09:35, 12:20, 14:25, 17:10, 19:30, 21:35) 운행한다.

종점인 추동 대청호자연생태관에선 60, 61번 버스를 통해 대전역 방면으로 나갈 수 있다. 배차간격은 각 75, 120분. 61번 버스는 판암역에서 한 번 갈아타야 된다.

맛집&숙박(지역번호 042)

플라네178(010-3553-6114)은 요즘 대전에서 가장 핫한 카페다. 동서트레일이 정확하게 이 가게 앞을 지난다. 3,500~7,500원 선의 맛있는 빵과 커피, 음료 등을 즐길 수 있다. 층고가 높고 자리도 많은 편이지만 주말이면 대전 시민들로 꽉꽉 채워진다고 한다. 건물 뒤편 언덕 위에 나무 한 그루와 벤치 한 동은 사진 명소로 각광받는다.

취재진은 미리 사둔 성심당 빵으로 운행 중 끼니를 해결했다. 현지 가이드는 구간 중에 식당에서 매식을 한다면 장동 일대의 보리밥집이 합리적이라고 추천했다. 장동은 청보리밭이 대규모로 들어서 있어 여러 보리밥집이 다수 있다. 계족산산골보리밥(0507-1415-2758), 장동감나무집보리밥 (585-5353) 등이 있다. 이 보리밥집들은 동서트레일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데 발걸음을 늘리고 싶지 않다면 계족산황톳길가든(0507-1473-7791)도 운영 중이다. 플라네178 바로 옆에 있다.

한편 동서트레일 대전구간은 상수원보호구역이라 백패킹 공간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아예 백패킹 금지구간이 될 가능성도 높다. 펜션도 극히 적다. 따라서 대전 시내로 나와 숙박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 그러니 백패킹이 아닌 일반 워킹으로 진행하는 걸 추천한다.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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