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이긴다고 했는데 왜 졌냐’고 묻는 의뢰인들 [세상에 이런 법이]
소송은 싸움이다. 상대방과 싸우고, 때로는 국가와 싸우며,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억울함을 믿어주지 않는 세상과 싸운다. 소송 당사자에게 싸움의 승리는 절실하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찾게 된다. 지금까지 그 수단 가운데 가장 현실적이고 유효한 방법은 내 사건을 맡아 제대로 싸워줄 변호사를 찾는 일이었다.
그런데 AI가 등장하면서 변호사의 자리도 예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요즘 종종 이런 연락을 받는다. “변호사님을 추천받았습니다.” “어디서 추천받으셨어요?”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 비슷하다. “AI가 추천해줬습니다.”
AI를 통해 찾아온 의뢰인은 다시 AI로 나를 검증한다. 법원에 제출할 서면 초안을 보내면 얼마 지나지 않아 AI가 그은 빨간 줄이 담긴 수정안이 돌아온다. “AI가 이런 수정 의견을 줬는데 검토해주시기 바랍니다.” 정중한 부탁이지만, 기분이 묘하다. 상대방과 싸우기도 전에 AI와 먼저 싸우는 느낌이 든다. 변호사의 판단, 사건 기록을 읽어온 시간, 법정에서 느낀 재판부의 태도, 상대방 주장의 약점 같은 것은 AI의 짧은 답변 앞에서 초라해진다.
더 난감한 순간도 있다. 사건 기록을 AI에 넣었더니 이긴다고 했는데 왜 패소 판결이 나왔느냐고 묻는 경우다. AI가 이긴다고 했는데 법원이 졌다고 하니 법원을 믿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소송은 확률 게임이 아니고 법률요건 해석은 단순한 예측의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하는 순간, 의뢰인은 내게 묻는다. “변호사님은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거예요?”
법원도 AI 시대에 맞춰 변하고 있다. 이미 특허법원에서는 당사자 동의를 전제로 상용 AI를 재판 절차에 활용하는 AI 시범재판부가 운영된다. 아직은 제한적으로 활용하지만, 법원이 AI를 완전히 바깥에 둘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음은 분명하다. 법학 교육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올해 주관한 제1회 로스쿨 AI 챌린지에는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에서 322개 팀 907명이 참가했다. 예비 법조인들은 이제 법전과 판례만이 아니라 AI를 어떻게 통제하고 활용할 것인지까지 배워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판결문이 AI를 설득해야 하는 시대
그렇다면 AI 시대의 사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AI는 판결문과 사법 서비스의 품질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AI가 “이 사건은 이길 가능성이 높다”라고 답했는데 법원이 다른 결론을 낸다면, 법원은 단지 “AI가 틀렸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어떤 증거를 더 믿었고, 어떤 법리를 적용했으며, 왜 다른 판단에 이르렀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당사자가 이미 AI를 통해 나름의 법적 기대와 논리를 갖고 법정에 오는 시대라면, 판결문은 그 기대를 넘어설 만큼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AI가 사법을 대신할 수는 없다. AI는 책임지지 않는다. 선고기일 법정에 앉아 당사자의 얼굴을 보지 않으며, 패소한 사람이 법정을 나설 때 무너지는 순간도 보지 못한다. 잘못된 판단으로 한 사람의 삶이 흔들려도 AI는 징계받지 않으며, 사과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AI 시대에도 재판은 결국 사람의 몫이어야 한다. 다만 그 사람의 판단은 더 투명해야 하고, 더 설명될 수 있어야 하며, 더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
AI 시대의 사법이 신뢰받으려면 법원은 더 빨라지거나,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민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이제 당사자도, 시민도, AI도 판결문을 읽고 묻는다. “왜 그렇게 판단했습니까?”
그 질문에 법원이 제대로 답할 때 우리는 여전히 법원을 신뢰할 수 있다. 그 질문 앞에서 침묵하거나, 관행적 판결문 문장 몇 줄로 당사자의 절실한 싸움을 끝내면, 사람들은 법원보다 AI를 먼저 믿게 될 것이다. 예측보다 이유, 속도보다 책임, 기술보다 사람. AI 시대의 사법이 지켜야 할 마지막 자리는 바로 그곳이다.
최정규 (변호사·<얼굴 없는 검사들> 저자) edito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