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하청 직고용한 한전KPS에 일감 몰아준다

발전 정비 공기업인 한전KPS가 하청업체 노동자 600여 명 직고용 추진에 나선 가운데, 정부와 노동계가 한전KPS의 일감을 늘려주기 위해 발전 정비 산업계 내 민간 업체들의 일감을 강제로 줄이는 합의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민간 업체들은 “한전KPS가 정부 요구대로 직고용을 떠안자, 정부에서 이들에게 ‘일감 몰아주기’라는 선물을 준 것”이라며 반발했다. 직고용 문제가 민간 업체들과 한전KPS 간 경쟁 체제로 유지돼 온 국내 발전 정비 산업의 구조까지 흔드는 것이다.
발전 정비 업체는 발전사(한국서부발전·한국남동발전 등)가 운영하는 전력 관련 설비를 점검·수리해 전력 생산이 중단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앞서 지난해 6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하청 업체 노동자가 사망하자, 국무조정실, 재정경제부, 기후에너지환경부, 고용노동부와 한국노총 등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며 노정 협의체를 꾸렸다. 협의체는 논의를 통해 한전KPS의 하청 업체 노동자 직고용 방침을 결정한 데 이어, 이번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안까지 확정한 것이다.
본지가 입수한 노정 협의체 합의문에는 ‘기술이 필요한 가스터빈 200MW(메가와트)급 이상을 포함한 고성능 신규 복합 발전 설비의 정비는 정비 공기업(한전KPS)이 수행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발전 정비 시장은 한전KPS가 시장 점유율 50%가량의 1위 사업자이고, 8개 주요 민간 업체 등이 경쟁하는 구도다. 본래는 한전KPS의 독과점 시장이었는데, 파업 사태가 벌어질 경우 전력 불안 문제 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민간 업체도 참여할 수 있도록 2003년 산업 구조가 개편됐던 것이다.

이번 합의문이 현실화되면 민간 업체들의 일감은 크게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석탄 발전이 단계적으로 폐지됨에 따라 대형 LNG 복합 발전 시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 정비를 모두 한전KPS가 맡게 되기 때문이다. 한 민간 업체 관계자는 “350MW급 가스터빈만 설치되는 현재 상황에서, 이번 결정은 민간 업체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라며 “민간 업체들도 200MW급 이상 정비를 해낼 기술력을 갖고 있는데도 이유 없이 배척했다”고 했다. 민간 업체들은 지난달 ‘발전 정비 산업 상생 협의회’라는 단체까지 조직한 뒤 주무 부처인 기후부에 “민간 참여 기회를 보장해달라”고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처럼 공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인위적으로 늘리기로 한 데 대해선 “직고용에 따른 한전KPS 내부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앞서 한전KPS 내부에선 하청 노동자 직고용 방안이 알려진 뒤 거센 반발이 나왔다. 한전KPS 노조는 지난 2월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반대 시위를 열었다. 이들은 “직고용으로 정규직이 늘어나면 1인당 성과급이 줄고 신규 채용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발전 설비 분야 기술 자문 업체(이앤씨코리아) 김병한 대표는 “정부가 노조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직고용의 대가를 사실상 민간이 치르게 한 셈”이라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 발전 정비 분야에서 공기업과 민간의 경쟁이 사라지면, 전기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전KPS의 정비 단가가 민간보다 높은데, 대체재가 줄어들수록 단가는 더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기후부 측은 “200MW 이상을 포함한 고성능 신규 발전 설비는 공기업이 맡게 되지만, 합의문엔 ‘석탄화력발전소 또는 200MW 미만 일반 가스터빈 정비 물량은 단계적으로 민간에 이양한다’고 명시했다”며 “민간 업체도 타격을 받지 않게 하는 조치”라고 했다. 하지만 석탄화력발전소는 폐지되는 추세이고, 200MW 미만 발전 설비는 효율이 떨어지는 탓에 가동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한전KPS와 민간 업체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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